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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에 의한 한국 초기 대부흥운동 재평가 본문

선교와 신학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에 의한 한국 초기 대부흥운동 재평가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5 14:54

한국 교회가 회복시켜야 할 선교적 교회 / 박창현 교수(감신대, 선교학) / 2014년 10월 6일 기사

 

레슬리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의 입장에서 한국 교회 초기 대부흥운동을 재평가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박창현 교수(감신대, 선교학)는 지난 9월 12일(2014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국제위원회에서 ‘한국 교회의 국제관계, 그 역사와 변화’를 주제로 개최한 교회협 90주년 기념토론회에 참여해 ‘선교적 교회론’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 초기 대부흥운동(1903~1907년)을 평가했다.
 
우선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에 대해 박 교수의 설명을 간단히 정리했다.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1909년~1998년)은 38년간 인도의 선교사로 사역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 온 후에 자신을 선교사로 보냈던 영국사회가 선교 파송국에서 선교의 대상국이 되어있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잘못된 선교론’과 ‘잘못된 교회론’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즉, 교회의 본질인 선교를 ‘교회가 성장해서 하는 것’ 정도로 ‘여유가 있어서 하는 일’로 그래서 ‘보내는 선교와 가는 선교’, ‘직접 가든지 보내든지’라는 의미로 왜곡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뉴비긴은 ‘선교적 교회론’을 주장하며 영국 교회를 치유하고 세계 교회의 올바른 신학을 위해 선교와 교회를 구분해 생각하는 잘못을 반성하고, 선교는 해외에 가서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은 서구 교회의 위기에서 출발한다. 수적 감소, 목회자 탈진, 젊은 층의 몰락, 교파시대의 종말, 성경의 무지, 전통적인 예배형식의 비현실성, 참된 영성의 상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목적과 복음에 대한 광범위한 혼란 등. 하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구원을 개인의 영역으로 축소하고, 선교를 교회의 한 기능 또는 한 영역으로 축소해 이해하려는 병폐에서 온다.
 
그렇다면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의 핵심은 무엇일까?

첫째, 선교의 경험에서 나타난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다.

둘째, 성서적이고 역사적이며 상황에 맞는 분명한 교회론에 근거한 선교의 본질을 찾는 노력이다.

셋째, 이미 오신 예수와 다시 오실 예수 사이에 존재하는 교회의 의무로서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 세상에 대한 관심이다.

넷째, 불완전한 가시적으로 현실적인 다양한 교회들의 연합에서 완전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종말적인 보편적이며 우주적인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다섯째,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전통의 준수, 그리고 성령의 역동적인 경험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해 드러나는 균형 잡힌 교회론이다.
 
따라서 교회는 국내 선교와 국외 선교를 구분하지 않고, 현재 교회 안에서 안주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현 교회들의 경계를 넘어 교회 밖을 향해 진군하며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삶의 증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본질로서 선교적 교회는 대표를 세상에 파견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참여하고 변혁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 초기 대부흥운동(1903~1907년)을 재평가한 박창현 교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원산 부흥회의 선교적 평가
 
한국 개신교회의 영적 부흥을 불러온 첫 출발점으로 인정되는 원산 부흥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남감리회 여선교사 화이트가 1903년 원산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남감리회 여선교사인 캐롤, 노올즈, 하운셀, 캐나다장로회 여선교사 매컬리 등이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1주일 동안 원산에서 성경공부와 기도 모임을 가진 것을 계기로 시작된 부흥 운동을 말한다.
 
1903년 8월 원산에서 개최된 여선교사들의 이 모임에 남감리회 선교사 하디가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며 성령의 강한 체험을 하게 된다. 하디는 1주일간의 성경공부 모임에서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경험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되고, 이것을 제일 먼저 자기가 선교하던 원산교회 주일예배 때 한국 교인들 앞에 자기의 부도덕함과 부족함을 솔직히 고백하게 됐는데 바로 이것이 조선 교인들의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 사람들은 우리도 ‘선교사처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자신들의 부족한 죄를 드러내고 성령의 은혜를 갈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고, 또 이렇게 성령의 은혜를 체험해 원산 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이는 선교사가 먼저는 자신이 영적으로 구원받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에만 선교지의 사람들과 진정한 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메시지는 단순히 교리의 선포나 설교를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구체적인 문제 속에서 선교사의 삶을 통한 해답을 경험하게 될 때 쉽게 일어나는 것이다.
 
즉, 선교사의 ‘모범적 인간’이라는 정체성이 현지인들에게는 자신들도 ‘선교사처럼 하면 된다’는 신아응로의 쉬운 길을 갈 수 있도록 한다. ‘성육신 선교모델’을 실천하는 선교사의 모습이 선교지의 사람들과의 감성적인 소통이 쉽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선교사가 선교를 영적인 문제로 인식한 것과 선교는 현지인과 하나됨이라는 선교사와 현지인의 관계를 하나님 앞에서 같은 죄인으로 인식하고 자기를 비워 스스로 죄를 고백했다는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선교적 현상은 개성으로, 강원도 동부지방으로 그리고 서울의 배화여학교로, 정동교회로, 평양교회로 이어졌다. 특히 하디로부터 폭발적으로 일어난 원산의 부흥운동은 초교파 운동의 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돼 1905년 9월 조직된 ‘한국 복음주의 연합공의회’에서 사경회 등의 모임을 감리교-장로교회가 연합해 개최하도록 했다.
 
# 평양부흥운동
 
1906년 8월, 1주일간의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들의 연합기도회가 열렸다. 이 기도회도 하디가 인도했다. 이 기도회에 참석한 선교사들은 깊은 감동을 받고 평양 부흥의 준비를 마련했다. 이 모임에는 장로교 선교사인 블레어도 참석했다. 블레어의 보고를 통해 당시 요한일서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하디의 집회는 장로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고, 장대현교회의 길선주 목사에게까지 영향을 주어 장로교 중심의 평양 대부흥의 불씨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1907년 1월 13일 구정을 앞둔 1월 6일에 10일간 평양 남자 사경회가 장대현교회에서 주변에서 찾아 온 500여 명의 교인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한 사람으로 시작된 통회 자복기도는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 전체 교회로 퍼지고 이어 저녁 집회로 이어지는 등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렇게 해서 한국 교회의 초기형태로 시작해 신앙의 중요한 틀로 여겨지는 통회자복과 통성기도의 대표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개인적인 통성기도가 어우러지는 전체 교회의 통성기도 형식, 그리고 개인적인 죄 고백을 위한 통회자복과 공동체 앞에서의 공개적 죄 고백이 밤을 세우면서 수백 명에게 이어져 갔다.
 
특징적인 것은 이러한 공개적 죄 고백이 아주 구체적이었다는 사실과 서로 알만한 가까운 사람 사이의 간음, 미움, 거짓말 심지어 선교비를 횡령한 사실까지도 거침없이 고백했다. 1월 22일까지 이어진 집회는 결국 수천 명의 남녀와 학생들을 성령체험하게 했고, 블레어가 떠난 평양은 길선주에 의해 부흥운동의 중심이 됐다.
 
갈망하던 선교의 어려움 가운데 선교사들의 모임으로 시작된 요한일서의 성경공부는 선교사들의 성경에 근거한 영적 회개와 각성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결국 이것은 한국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교가 외적 관심만을 위해 성과 위주의 형식적 사업에 몰두하지 않고, 선교사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또 같은 차원에서 교인들의 영적인 고갈을 해결하며, 실생활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데 그 주안점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선교가 새로운 교회 안으로 새로운 교인 모으기에 급급하지 않고 선교의 핵심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각성하는 일에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 한국 교회 초기 선교의 현상에 대한 선교학적 평가
 
첫째, 한국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적이었다. 선교가 보내는 자와 직접 가는 자로 나눠지거나 사람으로 못가면 물질로라도 간다거나, 선교는 규모가 있는 교회가 해야 한다는 잘못된 선교적 이해를 한국 교회 대부흥 운동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둘째, 성도의 삶의 변화를 동반했다. 회개와 중생이 성결로 이어지지 않는 교인들이 삶이 비로소 성령의 능력으로 성화돼 변화되는 능력을 경험했다. 교인들의 삶의 변화는 교육의 효과라고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들이 성령을 받자 일상 생활 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불의하고 부정한 일들을 스스로 깨닫고 돌이켜 바로 잡았다.
 
셋째, 토착적 문화와 종교적 전통에서 새로운 종교로 삶을 이동하기에 편안함을 주었다. 초기 부흥회 기간에 나타난 보고서들이 공통적으로 한국 교회 교인들의 신앙형태로 든 것은 통회자복, 통성기도, 공개 죄 고백, 새벽기도의 모습들이었다. 이것들은 당시 한국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와 종교적 세계관들에서 어색하지 않았던 것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선교적 교회론이 강조하는 선교가 이방 문화 속에서 개종해야하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철저히 그들의 문화에 적합한 방식으로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입장을 잘 수행한 결과라고 평가되어진다. 특히 삶의 변화를 통한 선교는 그 문화 속에서 해답을 주는 증인으로 살아갈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선교적 교회론에 입각한 선교의 모델의 최고 결실을 보여준다.
 
넷째, 종말의 긴장을 잊지 않고, 성령 안에서 교회 간의 협력을 중시하는 선교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한국 초기 부흥운동에 드러난 한국 교회의 선교적, 교회론적 특징은 현실의 가시적인 교회와 교인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렇기에 성령을 받아야 함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고,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 하에 서로 연합(에큐메니칼)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론이 주장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핵심은 서로 다른 교회들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신앙이 서로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다양성을 전제하지만 종국적으로 그러한 서로 다른 교회들의 다양성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선교적 교회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지키라고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나가라고 했다. 한국 교회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선교를 교회의 중심에 두는 교회론의 가장 분명한 모델이었던 한국 교회의 처음 출발점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이제는 잊혀져 가는 좋은 전통을 스스로 찾아내 그리고 우리의 몸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에 하나님의 선교를 다시 회복해야 의무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교회의 선교는 선교의 주체들 안에서 성령의 임재를 스스로 경험하고, 또 이것을 그들의 삶의 변화와 함께 공동체가 함께 사모하고, 경험하도록 하는 종교성을 회복하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를 향하 제시해야 할 중요한 선교적 과제는 신앙인들이 그리스도의 영성에 근거한 삶의 방식과 실천을 통해 이룩해야 할 하나님 안에서의 하나의 교회 모습일 것이다.
 
<한국 교회의 세계선교 기여:선교적 교회론의 모델로서 한국 초기 대부흥운동(1903~1907년)> / 박창현 교수(감신대,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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