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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웨슬리의 영성은 칭의와 성결의 영성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5 16:24

김영한 박사(본원 원장, 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 설립원장) / 2014년 10월 24일 기사

 

* 하단의 내용은 기독교학술원이 지난 10월 17일(2014년) 개최한 ‘제40회 월례발표회’에서 발표된 김영한 원장의 '웨슬리의 영성은 칭의와 성결의 영성'이라는 제목의 발표문입니다. 제공 단체(자)와의 협약에 의해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서비스하지만 모든 저작권은 제공 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아울러 무단전제 및 불법적인 도용은 추후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는 만큼 주의를 당부합니다.


웨슬리의 영성은 칭의와 성결의 영성 / 김영한 박사(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 설립원장)
"한국 감리교와 성결교가 쇠퇴해진 구미의 웨슬리의 영성 회복해야 한다 " 


영국 랭커스터대학교(Lancaster University)의 사회학 교수인 린다 우드헤드(Linda Woodhead)는 2014년 9월 발표한 ‘선교 통계’(Statistics for Mission) 보고서에서 “지난 10년 동안 영국 감리교인들의 수는 약 20만 명이나 줄었다. 영국 감리교는 바다로 침몰하는 빙산과 같다”고 했다. 교단지인 메소디스트 레코더(Methodist Recorder)의 모리아 슬레이트(Moria Sleight) 편집국장은 “지난 10년 동안 감리교인 수는 1/3 가량 줄어들었으며,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 역시 비슷한 비율로 감소했다”고 했다. 2009년 미국교회 통계에 의하면 미국침례교회와 미국복음주의 루터교회도 1.82%, 1.58%로 교인 수가 크게 줄었으며 연합감리교회도 0.99% 감소했다. 이는 웨슬리 운동의 고향인 영국성공회가 동성애 논쟁으로 교인이 격감한데 영향을 받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 여파에서는 벗어나 있으나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 웨슬리신학이나 감리교와 성결교가 구미(歐美)의 쇠퇴일로 있는 웨슬리의 영성을 다시 일으키는 세계교회를 향한 선교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1. 루터의 이신칭의 체험에서 출발

웨슬리는 그의 일기에 회심 이전 자신의 내적 불안과 불신앙에 대하여 다음같이 적고 있다 “1738년 1월에 나는 영국으로 돌아 왔다. 나는 죽음의 위험이 임박해 있음을 느꼈으며, 그로 인하여 매우 불안해 하였다. 나는 그 불안의 원인이 불신앙이라는 것을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고, 나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은 바로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임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믿음의 대상을 올바로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오로지 하나님께 대한 믿음만을 생각하였지, 그리스도에 대한 혹은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이러한 믿음이 나에게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다만 그 믿음이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피터 뵐러가 ‘죄에 대한 정복과 사죄의식으로부터 나오는 영원한 평안’이라는 두가지 열매를 안겨 주는 그리스도에 대한 영원한 믿음(오직 하나인)을 나에게 설명했을 때, 나는 매우 놀랐으며 그것을 새로운 복음으로 생각하였다.”

웨슬리는 런던에 있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올더스케이트가(Aldersgate Street)의 모임을 방문하였다. 뒤에 앉아서 머뭇거리는데 어느 신도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듣는 도중 그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체험하였다. 웨슬리는 그의 일기에 다음 같이 적고 있다, “그날 저녁, 나는 매우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올더스케이트가의 어떤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45분 경, 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마음 속에 이루시는 변화에 대하여 묘사하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이 그리스도를,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분께서 나의 죄를 없애주셨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내 마음 속에 가득 찼다.” 이것이 웨슬리의 회심 체험이었다. 회심의 체험이 웨슬리 영성운동의 출발점이다. 웨슬리는 루터의 칭의론이 구원을 가져다 주는 신앙의 기둥이요 토대라고 하였다.
2. 성령 역사에 의존한 목회와 부흥사역

웨슬리는 일기에서 회심체험 이전 믿기는 하지만 행위의 의(work righteousness) 아래 사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다음같이 적고 있다. “10년 이상이나 계속된 본성과 은혜 사이의 갈등 속에서, 특히 어려움 속에 있을 때 나는 여러번 기도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여러번 위안을 받았다. 이 위안은 참된 신앙 생활의 일면을 잠간동안 미리 체험한 것에 불과하였다. 나는 아직도 ‘율법 아래’ 있었지, ‘은혜 아래’(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죽는 데 가장 이상적인 상태)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죄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그것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영에 성령의 증거를 받지 않았으며,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믿음으로써 찾으려 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로써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

이러한 회심 이전 성령의 증거를 받지 않았던 영적 상태에서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본인도 예기치 않게 성령이 주권적인 사역으로 그의 마음 속에 뜨거움을 선사하심으로 극적으로 회심을 체험한 것이다. 이 회심의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으로 성령께서 그가 오랜 기간을 통하여 매어 있었던 내적 고민, 즉 구원의 확신 결여로부터 그의 영을 해방시키는 극적인 사건이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한 회심 체험이후 불신앙의 그림자가 제거되면서 웨슬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비로소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시작된 것이다.

웨슬리는 감리교적 경건한 규칙과 성령에 의한 회심의 체험에서 출발하여 18세기 영국사회와 미국 신대륙에 성령이 주도하는 회심와 중생을 강조하는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다. 이는 18세기 영국에 일어난 새로운 성령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웨슬리는 그의 목회와 부흥 설교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해 ‘우리의 속죄요, 우리의 삶이신 그리스도에게 안식(쉼)하는 것인데,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고, 우리 안에 살아계신다’고 했다. 웨슬리가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 것이 바로 이 때문으로, 성령의 사역 없이 기독교 메시지는 단지 이론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웨슬리의 인식은 “루터의 인식에 대한 논리적 적용으로, 그래서 감리회는 종교개혁의 연장”이다

웨슬리는 죄, 중생, 신앙과 칭의의 교리에 관해서는 칼빈주의의 교리를 수용했다. 예정 교리는 거부했으나 은총의 선택 교리는 받아들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적 사랑, 제한 속죄, 최후의 견인의 교리에 대해서는 당시의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의 입장을 수용하였다. 그는 값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자유스러운 의지의 결단과 책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웨슬리의 의도는 인간의 유기와 멸망의 원인을 인간 자유의지에 돌리고 하나님의 예정에 돌릴 수 없다는 그의 복음전도적 열정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3. 성화의 가능성으로서 선행은총 교리

웨슬리에 있어서 선행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값 없이 골고루 주시는 만인을 위한 은총(Universal Grace)이다. 선행은총은 개인의 응답보다 앞선 하나님 은혜의 주도권이고, 사람들의 후속적 응답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가 ‘불가항력적으로’ 받는 은혜”이다. 노예의지론이 루터의 신학체계에서 갖는 역할과 비슷한 정도로, 웨슬리 신학체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선행은총 교리”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와 성결교회 창시자 존 웨슬리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가능하다는 하나님 중심적 구원론에서 전적으로 일치했으나,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 은혜와 인간 역할의 관계에 대해 각각 달랐다. 루터는 노예의지, 웨슬리는 자유의지라는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이러한 차이를 가져온 핵심 사상인 선행은총 교리는 웨슬리가 자주 펠라기우스주의자로 오해되는 것을 막아준다.

신자의 율법의 행위와 사랑, 선행, 나아가 교회의 복음 전도와 신자의 양육을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요소로 만드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선행은총교리이다. 이것은 바로 루터가 강조한 하나님 은혜에 대한 깊은 신뢰이다. “선행은총 교리는 웨슬리 신학이 펠라기우스주의를 피하고 전통적 원죄 이해를 가지면서도 예정이나 불가항력적 은혜, 유기와 같은 운명론을 피할 수 있게 해 준다.” 선행은총론은 하나님의 은총과 자유의지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복음적 신인 협력설'(Evangelical Synergism)을 이룬다. 그리하여 은총을 자유의지로 선용하여 죄성에서 끊어지는 성화론의 근거를 제시한다. 웨슬리는 선행은총 교리에 의해 인간의 전적타락 교리를 견지하고 펠라기우스주의라는 비난을 피하면서도, 율법과 복음에 반응하는 인간 능력에 대한 “전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극복할 수 있었다.

선행은총 교리는 인간행위 중심적 구원론을 바로잡기 위해 구원을 오직 하나님께로 돌린 종교개혁 신학과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에게 인격적 반응의 책임을 부여한다는 웨슬리 신학 사이의 비교를 위한 중요한 틀을 제공해 준다. 루터는 원죄와 인간의 전적타락 교리로부터 인간이 구원과 선행에 무능하다는 ‘노예의지론’을 끌어내고, 구원과 거룩한 삶 여부를 하나님의 결정으로 돌리는 예정 논리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웨슬리는 원죄와 인간의 전적타락에서 루터와 같지만, 선행은총이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회복시켰으므로 ‘예정론’을 긍정하지 않는다. 웨슬리의 선행은총론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격적 반응과 자유의지의 선용으로써 옛 사람의 죄성을 쳐 복종시키는 성화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4. 성결의 영성

웨슬리는 필연적으로 믿음에 의한 칭의의 강조로부터, 믿음에 의한 성화의 강조로 나아갔다. 웨슬리의 관심사는 루터의 강조에 대한 논리적 속행으로, 칭의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물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객관적’ 구원행위가 우리 삶을 위해 어떠한 ‘주관적’ 결과를 갖는지 탐구했다. 칭의는 관계적 변화를, 거듭남은 본질적 변화를 의미하며, 전자가 죄책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죄의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칭의는 성화로 나아가는 것이라 강조했다. 웨슬리에 의하면 성화는 칭의의 순간에 시작되어 은혜 아래서 성장하는 것이며, 보통 죽기 직전에 이생에서 주어질 수 있다. 완전성화는 점진적인 성화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완전 성화는 순간적으로 주어진다. 완전의 순간에 큰 체험을 하게 된다

루터는 성결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신자가 부분적으로라도 죄를 이길 가능성을 성령께서 외부로부터 신자에게 역사하시는 동안으로 한정했다. 인간 본성의 변화로서 성화의 주장은 바로 공로사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대해 웨슬리는 그 본성 자체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죄에 남겨두심으로써 거룩(겸손)하게 하실 수 없으며, 성령은 성도에게 남아있는 죄의 본성이 소멸되도록 일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성결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죄로 소멸시키는 신자들이 문제다. 하나님 말씀이 참되다면, 사람들이 멸망당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이 멸망의 이유일 수는 없다는 강조점을 웨슬리는 성결에도 동일하게 적용한 것이다. 실천적인 권면과 충고에 있어서 웨슬리는 교만을 경계하며 끊임없이 깨어 기도하라고 우선적으로 강조하였다. 교만에 대한 치유책은 물론 겸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자신이 작고 낮고 천하고 무가치하다고 믿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겸손이다. 성도는 자신의 아무 것도 아님 속에 오직 하나님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순종과 경외, 타인에 대한 존경 속에서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웨슬리 영성의 핵심이다.

맺음말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다음 같이 증언하였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오늘날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유럽교회의 영성을 가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은 성령이다. 오늘날 한국감리교와 성결교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유럽과 미국에서 쇠퇴해진 웨슬리의 영성을 다시 재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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