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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신학

[원문] 성결운동의 역사와 성결교회의 목회구조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5 16:25

박명수 교수 / 서울신대 / 2014년 10월 24일 기사

 

* 하단의 내용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총회장:이신웅 목사)가 지난 10월 20일부터 22일까지(2014년) 강원도 평창 한화피닉스파크에서 진행된 '2014 성결교회 목회자 복음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박명수 교수(서울신대)의 발표문입니다.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기사로 제공하지만 모든 저작권은 제공 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아울러 무단전제 및 불법적인 도용은 추후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는 만큼 주의를 당부합니다.


성결운동의 역사와 성결론, 성결교회의 목회구조 /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한국성결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단어가 있다면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성결일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교단의 이름이 성결교회이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 교단이름은 일제시대에 조선야소교동양선교회 성결교회였다. 사실 이 이름은 일본에서 가져 온 것이다. 일본은 1917년 동양선교회복음전도관에서 동양선교회성결교회라고 이름을 바꾸었고, 이것이 1921년 한국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동양선교회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나까다 주지는 동양선교회는 교파의 이름이요, 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가 강조하는 핵심이 성결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성회가 교파이름이요, 순복음교회는 순복음을 강조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인 것과 같다. 따라서 성결교회의 가장 큰 강조점은 바로 성결에 있었던 것이다.

성결과 가장 가까운 동의어는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다. 필자는 이것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실 기독교의 긴 역사 가운데 교회가 새로워지려고 할 때 항상 강조되었던 것이 바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자는 운동이었다. 지금 한국교회에 수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은 신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온전한 신자가 없어서 이다.

전도가 안되는 것도 온전한 신자가 없어서이며, 타락하는 것도 온전한 신자가 없어서이며, 사회에 영향력이 없는 것도 온전한 신자가 없어서이다. 기독교의 역사에 있어서 진정한 갱신운동은 온전한 신자 운동, 곧 성결운동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필자는 오늘 전국의 성결교회 교역자들이 모인 장소에서 성결운동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고, 한국성결교회가 강조하는 성결론과 이것을 강조하기 위한 성결교회의 목회구조와 그리고 이것이 가지는 현대적 의의를 살펴 보고자 한다.

I.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역사와 한국성결교회

1. 웨슬리의 성결운동, 감리교의 세속화, 그리고 19세기 성결운동


우리 개신교의 역사에서 성결을 가장 많이 강조한 사람은 요한 웨슬리이다. 당시 영국교회는 생동력을 잃어버리고, 교인들 가운데는 명목상의 신자가 많았다.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근본적으로 이같은 영국교회의 갱신운동이다. 또한 18세기 영국은 산업화로 인해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도시는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웨슬리의 성결운동은 바로 이같은 교회갱신운동이며, 동시에 사회개혁운동이었다. 이같은 웨슬리의성결운동은 영국과 미국에서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19세기 초 미국은 소위 제 2차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특별히 케터키 주에서 일어난 케인 릿지 부흥운동은 놀라운 것이었다. 원래 이 운동은 장로교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장로교는 여기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을 받아들인 것은 감리교회였다. 감리교회는 그 특유의 질서를 통해서 과격한 것은 절제시키면서 성령운동을 계승해 나갔다. 그 후 미국 감리교회는 엄청난 부흥을 경험했다. 원래 18세기 말에 미국에 처음 들어온 감리교는 19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 기존의 회중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를 제치고 최대의 교단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19세기를 “감리교의 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감리교의 성공은 오히려 감리교를 타락하게 만들었다. 첫째로 원래 감리교는 학벌이 아니라 신앙을 강조하는 단체였다. 사실 다른 교단에 비해서 본다면 감리교사역자는 학벌이 보잘 것 없어 졌다. 하지만 교단이 성장하면서 감리교목사들은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감리교목사들은 학위를 선호하였다.

둘째, 감리교는 원래 건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야외에서 집회를 하였고, 건물을 가져도 수수한 건물을 가지도록 했다. 그러나 성장한 다음에는 천주교나 성공회와 같은 외형적인 건물을 갖기 시작했고, 감리교는 기존교회를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셋째, 감리교는 원래 가난한 자의 교회였다. 하지만 감리교의 신앙은 가난한 신자를 중산층으로 만들었고, 이것은 감리교를 중산층의 교회로 만들었다. 감리교는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교회가 아니었다.

넷째, 감리교예배는 원래 부흥운동식이었다. 열렬한 기도와 찬양, 그리고 간증이 주된 순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감리교의 예배는 천주교나 성공회를 따라가게 되었고, 따라서 생생한 은혜의 체험은 약화되게 되었다.

이렇게 감리교가 원래의 모습을 잃고 타락하자 감리교 내에서 감리교를 갱신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19세기 성결운동은 감리교 내에서 감리교를 갱신하고자 하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19세기에 창립된 많은 성결단체들은 자신들의 청립목적이 원래 웨슬리가 만든 원래의 감리교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실지로 웨슬리는 감리교가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결의 전파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세속화된 감리교회는 성결의 메시지를 원하지 않았다. 원래 웨슬리는 성결을 “감리교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했는데, 19세기 말 미국 밴더빌트 대학의 볼란드(J. M. Boland)는 성결을 “감리교의 문제거리”라고 말했다. 여기에 19세기의 성결부흥사들은 매우 실망했다. 그래서 만국성결교회를 만든 말틴 은 “과거 감리교는 성결을 전하는 날개였는데, 이제는 감리교라는 교단이 성결을 전하는 날개에 달린 무거운 추”라고 비판하였다. 다시 말하면 웨슬리는 성결을 전하기 위해서 감리교를 세웠지만 현재는 거꾸로 감리교가 성결을 전하는 방해물이라는 것이다.

2. 한국성결교회의 시작과 사명

동양선교회가 한국에 선교를 시작하는 이유를 성결에 두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국 땅에 복음을 전했다. 1907년에는 이미 한국에 장로교 선교부가 4 개, 감리교 선교부가 두개가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다시 한국에 선교를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동양선교회는 아직 한국 땅에 급진적인 성결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1904년 나까다 주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사람들은 재림의 복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결은 모르고 있었다. 1907년 길보른은 한국사람들이 이미 복음을 듣고,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고 있지만 한국사람들은 더 깊은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타작마당에서 쭉정이를 단지 모아 놓는 것이 아니라 쭉정이를 불에 태워버리고, 더 근본적으로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악의 쓴 뿌리를 제거하고, 성령이 내주하도록 하는 성결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울에 성서학원이 처음 생길 때에도 다시 한번 확인된다. 서울에 성서학원을 세울 때 장로교와 감리교선교사들이 힘을 합하여 연합성서학원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동양선교회에도 여기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동양선교회는 이들에게 성서적 성결을 가르칠 수 있도록 보장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여기에 대해서 장로교와 감리교선교사들은 거부했다. 결국 경성성서학원은 독자적으로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서울신학대학의 출발이다. 카우만 부인은 이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우리는 이 교리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언젠가 성결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가장 귀한 말씀으로 간주될 그런 날이 올 것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조상들은 감리교가 성결의 메시지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성결운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얼마 전 미국에서는 “성결운동은 죽었는가?”라는 큰 논쟁이 벌어졌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제도로서의 성결단체는 아직 살아있지만 운동으로서의 성결운동은 이미 죽었다고 대답하였다. 한국교회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직 논의도 하지 않고 있다. 자신이 아직 죽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II. 기독교의 전통과 한국성결교회 성결론의 특징

1. 기독교의 전통과 웨슬리의 성결론


기독교는 크게 두가지 전통을 갖고 있다. 하나는 동방교회의 전통이요, 다른 하나는 서방교회의 전통이다. “기독자의 완전”은 원래 동방교회에서 강조하는 개념이었다. 동방교회의 수도사들은 신자는 세속에 빠지지 말고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특히 카파도키아의 교부들에게서 이것은 강력하게 강조되었다. 하지만 동방교회에는 원죄론이 없다. 따라서 어떻게 원죄를 극복하고 온전한 신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답이 없다. 여기에 비해서 서방교회, 특히 어거스틴의 전통은 인간의 죄성을 강조한 나머지 온전한 성화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이들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강조하면 펠라기안이라고 판단하였다.

웨슬리 신학의 특징은 인간의 죄성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하나님의 형상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웨슬리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총을 통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는 두가지를 다같이 강조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웨슬리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두 전통을 창의적으로 종합했다고 말 할 수 있다. 웨슬리 이후의 웨슬리안 성결운동은 어떻게 죄성을 극복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더욱 분명한 주장을 하였다. 그것은 성결, 곧 온전한 신앙은 성령세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성결교회의 헌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결은 곧 성령세례이다”라는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인안의 죄성을 성령세례를 통하여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 한국성결교회 헌법에 나타난 성결론

필자는 여기에서 한국성결교회의 헌법이 말하는 성결론을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성결교회의 헌법은 “성결이라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신의 세례를 받음이니 곧, 거듭난 후에 신앙으로 순간에 받을 경험이다. 이 은혜는 원죄에서 정결하게 씻음과 그 사람을 성별하여 하나님을 봉사하기에 현저한 능력을 주심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 다섯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성결은 중생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결은 “거듭난 후에”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기독교신앙의 출발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이다. 이것은 칭의와 중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생명이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성결교회는 이것이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출발일 뿐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이것이 성결교회 교리의 핵심이다. 더 높은, 더 깊은, 보다 온전한 새로운 차원이 있다는 것이다. 이 2차적인 단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둘째, 이렇게 2차적인 은혜로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바로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원죄, 곧 부패성이라는 것이다. 웨슬리는 우리가 중생한 다음에도 우리 속에는 죄악의 쓴 뿌리가 남아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같은 죄를 반복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옛 아담”이 문제인 것이다. 이명직목사는 “산중 적 보다는 심중 적이 더 무섭다”고 말씀하셨다. 이 심중 적이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금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셋째, 이 원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은 바로 성령세례이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옛 사람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의 은혜 가운데 온전하게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장로교에서는 중생할 때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믿을 때 우리는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고, 그 다음에 다시 2차적인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우리는 성령충만을 경험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우리는 죄성에서 해방되고 온전한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이같은 성령세례는 순간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성결은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을 우리의 수양으로 이루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순간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웨슬리도 순간적인 체험을 강조했지만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19세기 여성성결운동가 팔머여사이다. 그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단에 우리 자신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로 우리를 온전하게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팔머여사는 성결에 이르는 지름길을 강조하였다.

다섯째,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우리는 새롭게 살수 있는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성령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새롭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어거스틴은 “당신이 명령하시는 것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그 다음은 우리가 능력을 받게 된다고 가르쳐 주셨다.

3. 사중복음과 성결론

우리는 먼저 사중복음이 원래는 순복음, 곧 온전한 복음(Full Gospel)으로 불리워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온전한 복음의 반대는 부분적인 복음으로 기존 교파의 복음이 온전한 복음이 아니라 부분적인 복음이요, 따라서 우리는 성서의 복음을 회복하여 온전히 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온전한 복음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이 온전한 복음과 항상 함께 가는 말이 바로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이다. 1925년에 발표된 성결교회의 조례에는 성결교회의 사명은 “순복음을 전하여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온전한 구원이란 원래 성결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죄책에서 해방되는 칭의를 부분적인 구원이라면 내면의 죄의 세력에서 구원받는 것을 온전한 구원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간 것이 바로 신유이다. 이것은 질병으로부터의 구원이다. 마지막으로 재림의 시점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온전한 구원이다.

그러면 이 사중복음과 성결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칭의와 중생은 구원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출발만 하고, 여기에서 더 발전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우리 속에 여전이 죄성이 남아있고, 죄성으로 인한 죄의 세력이 남아 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결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는 단지 애급에서 탈출시키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다.

19세기 성결운동에서 많은 경우 내면의 부패성에서 해방되는 성결을 체험할 때 동시에 질병에서 해방되는 신유를 경험하였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와 질병은 다같이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이며, 다같이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더 나아가서 건강한 몸이 성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 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오히려 죄악의 도구가 되고 만다. 따라서 신유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말고 성결과 관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성결교회 성결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성결과 재림을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급진성결운동은 전천년설을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해서 흰옷을 입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활천]에 나오는 왓슨의 [백의]에 나오는 내용이다. 신랑 예수를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순결한 신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성결교회가 일제시대 모진 박해를 이길 수 있었던 신앙은 바로 신랑되신 예수를 맞이하기 위해서 거룩한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성결교회는 사중복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사중복음의 핵심에는 성결의 복음이 있다. 중생은 성결로 나아가야 하며, 신유는 죄에서의 해방과 함께 질병의 해방이며, 재림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준비는 바로 성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성결교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내용은 바로 성결인 것이다. 그래서 교단의 이름을 성결교회라고 한 것이다.

4. 성결교회의 성결론과 다른 전통

한국에는 장로교, 감리교, 오순절교회등의 주요 전통이 있다. 먼저 칼빈주의는 이차적인 은혜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들은 성화를 2차적인 은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생에서 영화에 이르는 전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런 점에서 장로교회는 성결을 중생이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분명한 목적으로 보지 않는다. 아울러서 장로교회는 성령세례도 중생을 경험할 때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원래 웨슬리는 인간의 원죄를 강조하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성결론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19세기 미국 감리교회는 인간의 원죄를 부인하고 성결을 도덕적인 치원에서 이해하였다. 여기에 웨슬리의 후예들은 반대하고, 성결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이라고 주장하였다. 감리교가 성결을 도덕적인 차원에서 이해했다면 성결교회는 성결을 성령체험이라는 종교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

오순절운동은 19세기 성결운동에서 나왔다. 원래 성결은 성령세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성결운동은 동시에 성령운동이었고, 여기에서 방언과 같은 은사가 나오게 되었다. 원래 성결운동에서는 성령세례는 성결체험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내적인 죄와 외적인 죄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언이 나타나자 일부 사람들은 방언을 성령세례의 일차적인 증거로 이해했다. 여기서부터 성결운동과 오순절운동이 갈라지게 되었다.

한국성결교회는 한국의 여러 교파들 가운데서 중요한 사명이 있다. 장로교에 대해서는 중생이 전부가 아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과 육의 갈등을 이기는 온전한 신자, 곧 성결의 단계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하고, 감리교에 대해서는 성결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강조해야 하며, 오순절운동에 대해서는 방언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사는 은사보다는 진정한 변화, 곧 성결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III. 한국성결교회의 성결목회

1. 성결체험의 방법

성결을 강조하는 성결교회 목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어떻게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첫째, 성결은 성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기 원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는 모든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보혈의 능력은 단지 죄의 벌에서만이 아니라 죄의 성질에서 우리는 정결케 해 주시는 것이다. 셋째, 성령세례로 성결하게 된다.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육의 사람을 이기는 것은 새로운 성령으로 충만해 지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를 원하시며, 우리는 여기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여기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주의 제단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한다. 팔머는 이것을 제단신학이라고 했다.

첫째,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한다. 우리 성결교회는 오래 동안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 내면의 숨겨진 죄를 하나씩 하나씩 회개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둘째, 죄의 자백과 더불어서 가능한 배상도 해야 한다. 한국성결교회는 입으로 자백하는 동시에 구체적으로 배상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말로 지은 죄는 말로, 물질로 지은 죄는 물질로 배상하였다. 이것은 아름다운 성결의 열매였다. 셋째, 성결운동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에게 이것을 간증할 것을 강조하였다. 입으로 시인할 때 우리의 체험은 보다 구체적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2. 성결을 위한 목회구조

성결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도록 하는 목회구조를 갖고 있다. 성결교회는 헌법, 예식서, 교회행정, 예배, 신학교육, 수양대회, 출판물을 통해서 성결의 복음을 전했다.

첫째, 성결교회는 헌법에 성결의 복음을 강조하는 것이 성결교회의 사명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헌법에 나타난 본교회의 목적에 의하면 “국내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모든 영혼들을 구원하여 일반신자에게 성결의 은혜(성신세례)를 전하여 교회로 하여금 거룩되게 하기를 힘쓴다”고 되어 있다. 초기 성결교회는 불신자에게는 구원의 복음을 신자에게는 성결의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 심지어 타 교파들의 사람들도 성결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는 성결의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성결교회의 예식서는 성결체험을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성결교회는 세례 후보자들에게 “물세례를 받은 후에 성령세례를 받아 온전한 사랑과 거룩함에 이르는 성도가 되기를 계속 노력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이것은 물세례 후에 분명히 성령세례를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성결교회는 목사와 장로, 권사와 안수집사의 문답에서 “성결의 은혜를 체험했는가?” 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이것은 성결체험이 바로 성결교회 직분을 받는 가장 중요한 자격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결교회의 목회는 세례시에 성결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며, 주요 직분자의 임직식에 이것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결교회 목회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셋째, 원래 한국성결교회의 교적부는 중생자와 성결자를 구분해서 보고하도록 했다. 해방 이전의 성결교회의 교적부가 바로 함열교회에 남아 있다. 여기에 의하면 신자들의 입교일, 수세일, 중생일, 성결체험일, 신유일 등을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동양선교회가 성결을 단지 신학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실제적인 신자의 삶에서 구체화하려고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당시 부흥운동의 결과를 보고하는 내용에서도 분명하게 들어난다. 우리는 이성봉목사의 부흥회에 대한 통계에서 중생자 0명, 성결자 0명 등으로 성결체험한 사람을 분명하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해방 이후에 사라졌고, 성결에 대한 강조도 사라지게 되었다.

넷째, 한국성결교회의 예배구조는 성별회를 만들어서 신자들로 하여금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도록 했다. 초기 성결교회는 두 종류의 집회를 가졌다. 하나는 구령회이며, 다른 하나는 성별회였다. 구령회는 전도집회이며, 성별회는 성결집회였다. 동양선교회는 원래 불신자들만이 아니라 신자들도 사역의 대상으로 했다. 바로 그 통로가 성별회였고, 이것은 해방 후에도 지속되었다. 현재 성결인대회는 단지 성결교인이 모이는 대회가 아니라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성별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일제시대 성결교회의 총회에는 항상 성결을 강조하는 집회를 열었으며, 총회의 사무는 그 다음이었다. 동양선교회는 매해 수양대회를 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결부흥사들을 초청하여 새벽, 오전, 저녁을 이용하여 성결집회를 열었다. 이것을 통해서 성결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회무는 주로 오후시간에 하였다. 최근에 한국성결교회도 각종 성결인대회를 열고 있는데, 아쉬운 것은 바로 이런 모임이 성령세례를 받는 일에 집중되지 못하고 행사로 끝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여섯째, 성결교회의 신학교육의 핵심에는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었다. 동경성서학원은 그 입학요강에 우리는 “성령세례로 졸업장을 줍니다.”고 썼다. 예수님의 3년 교육의 졸업장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성령세례로 주신 것이다. 성서학원 시대에 사역을 위한 능력 받는 것은 졸업장 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따라서 서울신학대학의 교육의 핵심은 단지 성결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곱째, 성결교회는 문서를 통해서 성결의 복음을 전했다. 원래 성결운동은 문서운동이었다. 성결운동은 수많은 잡지와 책자를 통해서 성결의 복음을 전했다. 동양선교회는 이 전통을 이어서 성결의 복음을 출판을 통해서 전파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일본에서 왓슨, 우드, 힐스와 같은 많은 성결운동가들의 책을 번역했고 이것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 이런 문서활동은 매우 축소되었다.

IV. 현대사회에서 성결의 의미와 과제

한국성결교회는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성결론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하지만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성결이 가지는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재해석해서 성결교회의 신학적인 유산을 보다 풍요롭게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그 가능성을 몇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성결은 모든 종교의 핵심이다. 유명한 종교학자인 루돌프 오토는 거룩, 즉 Holy는 종교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보통 우리는 인간의 최고의 가치를 진, 선, 미, 그리고 성(聖)으로 나눈다. 진은 철학의 영역이며, 선은 윤리의 영역이고, 미는 예술의 영역이라면 성은 종교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 성의 핵심은 초자연적인 누미노제(Numinose)의 체험이다. 오토는 이것을 이사야의 거룩의 체험으로 설명한다. 성경은 초자연적인 거룩을 체험할 때,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구별된 삶을 강조하는 윤리가 따라오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거룩의 체험은 한편으로는 영적인 체험이면서 동시에 윤리적인 명령으로 나타난다. 한국성결교회의 성결론은 일차적으로 영적 체험이며, 이차적으로 이것은 윤리적인 삶이다. 따라서 성결교회의 성결론은 종교학의 가장 근본적인 차원과 맥을 같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결론을 변두리신학으로 인식하지만 사실은 모든 종교의 가장 근본이 바로 성결인 것이다.

둘째, 성결은 개신교신앙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 기독교는 공로구원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칭의 교리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성서적이다. 하지만 현재 기독교는 윤리를 무시하고, 도덕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칭의의 교리에 기초한 성결교회의 성결론은 도덕을 새롭게 해야 하는 현대 기독교의 근본적인 과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성결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강조한다. 성령의 능력이 없는 행위는 단지 도덕주의로 전락할 염려가 있다.

셋째, 성결은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에 기초하고 있다. 이 욕망을 적절하게 절제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사회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다. 성결운동은 항상 세속주의에 강한 도전을 하였다. 18세기 웨슬리, 19세기 성결운동, 20세기 이명직목사는 다같이 세속주의를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였다. 자본주의사회일수록 인간의 욕망을 자율적으로 절제시키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것이 성결운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필요한 이유이다.

넷째, 성결운동은 현재 기독교가 당면하고 있는 교회 갱신운동의 근본이다. 과거 개신교는 천주교의 타락을 비판하며 종교개혁을 이루었다. 하지만 현재 일부 개신교는 중세 천주교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 성적인 문제, 교권싸움, 물질적인 타락등 심각한 문제들이 많이 있다. 이같은 갱신운동은 근본적으로 성결운동에서 출발해야 한다. 성결운동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신앙의 본질로 돌아갈 때 교회는 갱신할 수 있다.

다섯째, 성결운동은 성령운동이기 때문에 무기력한 교회에 역동성을 가져다준다. 성결운동은 근본적으로 성령운동이다. 왜냐하면 성결은 곧 성령세례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로 강하게 전파되는 것이 오순절운동이다. 오순절운동의 장점은 바로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결운동은 바로 이런 오순절운동의 뿌리이다. 19세기 말의 성결운동가 힐쓰는 [성결과 능력]이라는 책을 썼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적인 도덕주의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도덕이다.

여섯째, 성결운동은 선교의 결과를 튼튼하게 만들어 준다. 오래 전에 서울신대의 카우만 강좌의 강사로 왔던 [개인전도학]의 저자 콜만박사는 선교가 성결과 연결되지 않으면 그 선교는 모레위에 세워진 집과 같다고 말했다. 근대화에 초점을 맞추었던 중국의 주류교단의 선교를 보라. 윤리를 무시한 잘못된 성령운동의 결과를 보라. 한때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한국교회는 오래 동안 성장을 자랑해 왔다. 하지만 현재 매우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신자들의 성결하지 못한 삶이 문제가 되어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상에서 성결교회의 교리와 이것을 실천하기 위한 목회구조와 그리고 성결이 가지는 현대적인 의미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이 실질적인 성결체험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현재 성결교회의 문제는 성결론이 제대로 가르쳐 지지도 않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결의 실재, 곧 성결의 체험이 성결교회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 성결교회의 [활천]에는 수 많은 성결체험 간증이 실려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성결교회의 영적인 힘의 뿌리였다.

한국성결교회에는 많은 영적인 각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1921년 경성성서학원의 성결운동은 당시 지지부진하던 성결교회를 새롭게 만들었다. 1921년 개학을 앞두고 이명직목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성결을 가르쳐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성결의 체험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그의 기도제목은 “성결을 주시든지 아니면 성결교회 목사를 그만두게 하시든지 하옵소서”였다. 목숨을 건 기도였다. 결국 이명직목사는 성결의 은혜를 체험했고,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희열을 맛보았다. 그는 이것을 학생들에게 간증했고, 이 불길은 아현교회로, 그 다음에는 총회로 번져나가서 한국성결교회의 갱신의 기점이 되었고, 이명직목사는 성결교회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성결교회의 헌법은 불신자에게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신자에게는 성결의 은혜를 전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우리는 먼저 성결교회가 말하는 성결의 은혜가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우선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듣는데서 끝나면 안된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 가운데 체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성결론을 가르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것을 간증해서 사람들에게 온전한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성결교회가 이런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바로 성결교회가 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가를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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