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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평화’, 신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② 본문

교회와 통일

[특집] ‘평화’, 신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②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5 16:39

 

“이념과 사상에 치우치지 않는 평화교육이 필요하다" / 2014년 11월 7일 기사

 

최근 한국기독교학회가 ‘평화’를 주제로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회 산하 13개 분과 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경학자, 조직신학자, 실천신학자, 기독교윤리학자, 기독교교육학자, 선교신학자, 여성신학자 등이 ‘평화’와 관련된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평화’에 대한 신학자들의 일부 목소리들을 요약해 싣는다.<편집자 주> 

# 실천신학회, “평화의 영성과 리더십 갖춰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성공회 신자였던 앨런 페이튼(Alan Paton, 1903~1988)은 인으로서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며 “남아프리카 자유당(SALP)을 창시”한 정치가였고,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평화의 영성과 리더십”을 갖춘 저술가였다.

성령으로 인도받은 삶 전체를 일컬어 영성이라 부르고 그 구체적 구현이 리더십이라면 페이튼은 평화의 영에 사로잡힌 영성가요 지도자였다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오늘 나의 눈과 마음을 열어 당신을 위한 평화의 일을 할 수 있게 하소서”라고 늘 기도했던 사람이다.

그는 과격한 저항 대신, 용서와 사랑을 담은 표현으로 행동했다. 평화는 페이튼에게 있어서 삶의 존재이유요 과제였다. 알렉산더는 페이튼이야말로 권력지향적인 것을 미워하고, 지성과 독립정신을 실천했고, 고상함과 인내,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고 회고한다.

깊은 묵상과 정의를 위한 활발한 정치활동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앨런 페이튼의 영성과 리더십은 시대를 뛰어넘어 깊고 넓은 파장을 가진다. 필자가 감히 평가하기에 앨런 페이튼은 지정의가 균형 있게 발달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실천형의 영성(Spirituality of Practice)"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앨런 페이튼은 과거의 갈등이나 탄압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평화를 이루어 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발자국은 그의 저서들과 활동들을 통해 후대의 수혜자들에게 거룩한 추종을 위한 길잡이로 오롯이 남아 있다.

물론 페이튼의 영성과 리더십을 마치 찻잔 속의 태풍처럼 제도권 안에서의 소극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그에게 좀 더 적극적이며 대항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피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앞서 예로 들어 비교한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명상의 깊이와 넓이, 광범위하고도 능동적인 사회참여와 같은 특징은 페이튼에게서 충분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페이튼의 독특한 영성과 리더십의 공헌과 영향력이 퇴색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사회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소망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평화의 도구라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소유했으며, 철저한 소명의식을 저술과 정치의 영역에서 구체적 행동으로 구현한 앨런 페이튼의 영성과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당연히 유효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갈등의 반복, 속절없는 생명의 파괴 앞에서 무기력하게 서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페이튼의 평화의 영성과 리더십은 하나의 실천적 사례를 넘어 바람직한 귀감이자 전형(典型)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앨런 페이튼(1903~1988): 평화의 영성과 리더십 / 안덕원 박사, 횃불트리니티신대>

# 기독교교육학회, “이념과 사상에 치우치지 않는 평화교육 필요”

첫째, 기독교 평화교육은 특정 몇 사람만의 관심이나 연구주제가 아니라 기독교교육자라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평화교육은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든 부분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 평화교육이라는 주제가 2000년대 이전에 비하여 보편적 연구 주제가 되어 가고 있고, 기독교 평화교육에 대한 이해들이 보편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수의 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은 여전히 기독교 평화교육에 대하여 다양한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함을 알 수 있다.

둘째, 기독교 평화교육의 연구주제가 한, 두 개의 주제에 대한 편중에서 다양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기독교 평화교육의 주제는 주로 ‘통일’ 등과 같은 특정 주제에 그 연구가 편중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의 결과가 기독교 평화교육의 활발한 연구를 위한 기초로서 커다란 역할을 해 왔음은 우리가 높이 치하해야 할 결과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몇 가지의 주제에 대한 편식에서 다양성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21세기에는 연구 주제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다양한 부분과 직결되는 모든 부분들이 연구주제가 되어야 한다.

셋째, 기독교 평화교육이 그동안 거대담론으로 국가 간의 갈등, 혹은 다른 나라에서의 종교 간의 갈등 등의 주제에 대하여 주로 연구되어 왔다면 이제는 개인, 가족, 혹은 교회, 국가 내 등 지엽적인 측면에서의 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의 문제, 가족의 문제, 교회 내의 문제,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사회와 같은 지엽적인 영역 내에서의 이념, 세대, 빈부,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해결될 때 사회적 갈등, 국가 간의 갈등 등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를 해치는 지엽적 갈등의 해결에 대한 주제들 역시 필수적인 연구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기독교 평화교육의 연구는 학문으로서의 연구 주제가 아니라 현장에 적용될 수 있는 연구 주제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연구가 주로 통일 등과 같이 지금 현재 가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거대 담론으로서의 주제가 주로 연구되어 왔기 때문에 연구로서는 가치가 있는 작업이었으나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주제들이 주를 이루어 왔다. 그래서 관심도 몇 사람만, 연구 주제도 일부 주제만이 주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다양성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는 학문으로서 만의 주제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기독교 평화교육의 연구는 기독교 평화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적용가능하며,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제안해 줄 수 있는 현장과 밀접한 연구가 요청된다. 그래서 기독교 평화교육이 거대담론으로서 아니라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연구 주제가 되어야 한다. 이럴 때 기독교 평화교육은 학문으로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삶에서 체득하고 경험할 수 있는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평화교육은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기독교교육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들이다. 꼭 기독교 평화교육이 이념에 근거한 거대 담론으로서의 기독교교육 주제이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양보하고, 이해하고, 희생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요청되고 훈련되어야 하는 우리의 관심과 협조가 요청된다. 평화의 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고 책임이기도 하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어느 이념이나 사상에 치우치지 않는 기독교 평화교육에 대한 총체성 회복이 요구된다. <한국의 기독교 평화교육의 연구 경향과 미래적 과제 / 박경순 박사, 서울신대>

# 선교신학회, “남한주민들과 북한주민들의 사회통합이 통일의 완성”

탈북자들이 남한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는 현실인식이 중요하다. 탈북자들은 자신들이 정치적 이유이든 경제적 이유이든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온 것에 대한 사회적 보상과 지원을 기대한다. 동시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남한출신 주민들과 동일한 국민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강한 인식이 있다.

그러면서 탈북자들은 남한정부가 지원을 해 주지만 무엇인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아울러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국민인데 그런 사회적 대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는 스스로를 수동적으로 만들고 의존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불만은 가중되고 남한사회에의 적응은 더 멀어질 개연성이 높다. 살기위해 남한에 온 이상 남한정부가 무엇을 해 주기를 기대하기보다 스스로 적응하려는 마음가짐이 요청된다. 분명한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응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탈북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립하려는 의지이다. 남한사회의 자본주의 체제는 가만히 있는데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 스스로 노력하고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 이런 현실을 인지해야 한다.

탈북자들은 무엇보다 적극적인 생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 스스로 정체성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울러 다양한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부정적인 요인에서 탈피하여 소속감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소속감이 있어야 생활에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탈북자들은 남한사회 적응을 위해 긍정적인 시각과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탈북자들은 남한에 왔을 때 제일 먼저 외로움을 느낀다. 가족을 떠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왔다는 사실이 외로움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심리적, 정서적 문제들은 신체적 질병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탈북자들은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소극적 교류에서 적극적 교류를 통해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긍정적 지지그룹을 형성하여 사회적 교류 확대를 통해 적응유연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여야 할 것이다.

탈북자들의 남한사회 정착을 위해 기초생활을 지원하여 생활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취업알선 등 자립·자활할 수 있게 구체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이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논의와 프로그램 개발이 요청된다.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그들이 남한사회에 잘 정착하는 것이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통합되기 위해서는 남한주민들의 탈북자에 대한 인식변화도 필요하다. 실제적인 통합과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상호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과 포용이 필요하다.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 탈북자들의 상황을 인지해야만 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지 못할 때 탈북자들은 그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 되어버리고 만다. 탈북자들은 남이 아니라 우리 동포이다. 따라서 우리의 관점이나 우리의 잣대로만 이들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그리고 이들이 처한 환경이나 심리적인 상태를 고려하여 이들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관심, 그리고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과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서로의 이질감을 완화시키고 동질감을 갖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사회통합을 위해 그리고 통일을 준비하며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탈북자들이 있다는 것은 부담이 아니라 축복이다. 탈북자들이 있음으로 북한주민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한 현실에서 북한주민들의 실상황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또 이들의 남한사회 적응은 통일 이후 사회통합을 준비하는 귀한 자료가 된다. 이들은 통일 후 남북 주민들이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서로 얼마나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지를 예측하게 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고, 남북한 사회통합의 효과를 미리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소규모 예비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남한의 사회통합은 남한주민들만의 사회통합이 아니다. 또 탈북자들만의 사회통합도 아니다.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통합은 북한주민과 남한주민 사이의 소통과 합의가 핵심임을 기억해야 한다. 남북주민이 함께 하는 사회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일을 위해 먼저 탈북자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과 계몽이 필요하다.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이런 문제를 토의하고, 관련 자료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탈북자들과 남한주민들은 서로 다른 이해의 방식으로 인한 갈등을 예방하고 조화로운 해결을 하기 위해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나 배려가 아닌 서로의 상황에 대한 적응과 포용이 긍정적인 해결책으로 의미를 가질 것이다. 탈북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남한의 문화체계를 배우는 것이라면, 남한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탈북자들의 처지와 문화와 생활방식과 관계맺기의 방식들에 대해 공감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이처럼 서로동질감을 회복하도록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통합에 이르게 될 것이며 그것이 바로 통일에 대한 준비가 될 것이다. 통일은 제도나 체제의 통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한주민들과 북한주민들 사이의 사회 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상생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득한 원망이 사라질 때 가능한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눅15:31-32).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해 탈북자들과도 관계회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공존을 통한 상생으로 진정한 통합이 오리라 생각한다.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통합을 통한 평화 만들기 / 조은식 박사, 숭실대>

# 문화신학회, “기독교인의 주체성과 정체성부터 다시 성찰해야”

냉전기간 동안에 개신교는 남한 사회에서 북한 공산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사상과 담론을 제공해 주었다. 냉전은 말과 이념으로 하는 전쟁이다. 북한은 사상과 이념의 면에서 남한보다 정당하다고 선전해왔다. 이러한 주장 뒤에는 북한체제의 유사 종교적인 면이 존재해 있다.

북한에서는 지도자 김일성과 그의 후계자인 아들 김정일을 신적인 존재처럼 숭배하고 이들 신적인 존재들은 죽어서도 인민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특히 김일성의 역사적 정통성을 내세우고 남한의 정통성을 부정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유사 종교적 체제 담론에 대응할 수 있는 사상적 실체를 남한의 기독교에서 찾은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과 미국은 보수적이며 반공적인 기독교를 앞세워 냉전적인 언어와 이념의 싸움에 임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냉전의 핵심에는 종교-이념적 요소가 있으며, 냉전은 그러한 요소를 조장시킨다. 냉전은 선과 악, 신과 사탄, 우월과 열등, 유신론과 무신론을 확연히 구분하는 이념적, 종교적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확연한 대립과 구분의 논리는 남한의 보수적 기독교인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냉전은 민주주의를 왜곡시켰고, 독재국가(남한)와 전체주의 국가(북한)을 창출했다. 또한 냉전은 남한 내에서 보수와 진보의 분열을 창출시켰다.

냉전기간 초기 동안에 남한에서는 북한의 주체사상처럼 남한주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규범적인 담론이 없었다. 반공주의가 중요한 담론이었지만, 그것이 풍부한 내용을 가지려면 또다른 담론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했다. 이러한 공백을 남한의 개신교가 채워주었다. 개신교는 신생국가인 남한의 정신적 이념적 테두리를 마련해 주어 남한 사회의 통합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생국가인 한국이 출범하는 초기 기간에 미군정과 미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때에 개신교인들이 국가건설에 대거 참여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개신교 장로였고 부통령을 비롯한 장관 등 요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상당수 개신교인이었다. 크리스마스가 국경일이 되었고, 국가의 많은 예식들이 기독교적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의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 기독교와 미국은 지배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적 위치는 한국을 불교와 유교의 영향력으로부터 밀어내어 기독교화(미국화)된 나라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정치 체제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다. 국가적 예식은 미국화 되거나 기독교화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화와 기독교화는 상통하는 것으로 거의 동일시되었다. 195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에서 반공주의, 기독교 신앙, 미국주의는 하나로 통합되었다.

한국 기독교 교회가 반공주의의 입장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였다. 한국에는 1920년대 초부터 소련과 일본으로부터 사회주의가 소개되었다. 사회주의 영향을 받은 무신론자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기독교인 지식인들은 사회주의자들과 대화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기독교 안에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생겼을 정도였다(1920년대 YMCA 이대위 등).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1950년의 한국 전쟁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남쪽으로 피난 내려와서 교회를 세우고 반공의 보루의 역할을 하게 된다. 반공주의적 한국 기독교는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정부와 협조하며 함께 반공운동에 앞장섰다.

한국 교회는 냉전 기간 중에 냉전 체제에 의해서 내적 외적으로 구조화되었다. 외적으로, 개신교회는 여러 교단으로 분열하게 되었다. 냉전이 개신교를 분열로 치닫게 하는데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고 보여진다. 특히 예장의 통합측과 합동측의 분열은 당시 반공노선을 보다 확실히 하자는 입장에서 에큐메니칼운동을 반대하는 보수측(합동측)의 주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많은 교단으로 분열된 개신교회는 개교회주의, 성장주의, 대형화주의로 치닫는다. 많은 교단으로 분열된 한국의 개신교회가 세계의 굴지의 대형교회들을 그렇게 많이 배출하였고, 교인수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와의 대결의 냉전체제와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적으로, 한국의 개신교는 자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이념에 친화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신앙, 즉 구복적이고, 개인적이며, 비사회적이며, 반공주의적인 내면성으로 구조화되었다. 특히 냉전기간 동안에 미국을 지향하고 선망하는 미국주의는 한국 개신교의 내면에 크게 자리 잡았다.

냉전 기간 동안에 한국 기독교인의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subjectivity)은 미국주의와 반공주의에 의해서 구조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전시대에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내면화한 핵심 가치들은 이상화된 미국의 이미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그 이미지는 기독교적이고, 민주적이고, 힘 있고, 부유한 미국의 이미지이다. 냉전기간 동안에 한국 기독교인안에 심어진 주체성은 자기 자신에 근거한 주체성이라기보다 대타자인 이상화된 미국주의가 이식된 주체성이었다. 즉 냉전시대에 한국인들, 특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주체성이 없었다.

냉전 기간 중에 형성된 주체성이 진정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를 대신할 새로운 주체성은 냉전에 의해, 그리고 대타자에 의해서 구조화되고 형성된 주체성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에서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예전의 주체성을 비워내야 한다. 그러한 비움은 새로운 주체성을 획득하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새로운 주체성은 한국의 콘텍스트에서 평화, 정의, 생명을 위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얻어질 수 있다고 본다. 산업선교와 같은 민중운동이나 민중신학과 같은 진보적인 신학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새로운 주체성과 새로운 기독교의 건설을 향한 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단된 국가에서의 교회:냉전체제로 구조화된 한국 개신교에 대한 한 분석 / 권진관 박사, 성공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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