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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신학ㆍ경건의 실천(6) - 조나단 에드워즈 본문

역사와 신학

기도의 신학ㆍ경건의 실천(6) - 조나단 에드워즈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3:55

 

조나단 에드워즈의 젊은 날의 경건 / 양낙흥 교수(고신대 신대원) / 2015년 3월 6일 기사

 

바른교회아카데미가 지난 2월 9일부터 10일까지(2015년) ‘기도의 신학, 경건의 실천’을 주제로 제18회 연구위원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길선주, 이용도, 손양원, 한경직, 문준경, 함석헌, 이현필, 문익환 목사 등을 비롯해 조나단 에드워즈, 웨슬리, 볼룸 하르트, 본회퍼, 루터, 칼뱅, 카타리나 쉬즈 젤, 존 오웬, 슈페너 등 세계 및 국내 개신교 전통에서 기도의 신학과 경건을 실천한 신앙선배들의 신앙과 신학을 조명했다. 이에 본지는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를 중심으로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바라본 과거 신앙위인들의 기도의 신학과 경건의 삶의 모습을 간단히 정리하며, 한국 교회에서의 적용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조나단 에드워즈의 젊은 날의 경건>
양낙흥 교수(고신대 신대원, 역사신학)


대학 시절 에드워즈는 때때로 내적으로 아주 불편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특별히 대학 생활의 후반기에 해당하는 10대 후반에 그러했습니다. 대학 졸업반 때 그는 자기 영혼의 상태에 대해 많이 불안해했습니다.

그 무렵 그는 늑막염에 걸려 거의 죽을 뻔하면서 “지옥의 문턱까지 가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에서 회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과거의 죄악된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마음 편하게 지내도록 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크고 격렬한 내적 투쟁을 겪으면서 사악한 성향들, 거듭되는 결심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맹세들과의 갈등을 거쳐 드디어 과거의 모든 사악한 생활과 모든 알려진 외적 죄들을 버리고 구원의 추구에 착수해서 종교적 의무들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 청년 시절의 경건훈련

10대 후반에 에드워즈는 구도의 길에 들어섰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을 추구하는 것을 생애의 주된 과제로 삼았습니다. 에드워즈는 “애처로운 방식”으로 구원을 추구하면서 자신이 그처럼 가련한 방식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분깃을 얻기 위해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결별하는 영”을 느꼈습니다. 에드워즈는 이 때 이미 세상의 매력 있는 것들에 대한 정욕을 극복하는 단계에 도달했던 것 같습니다. 오직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진입했던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그의 영적 관심은 계속되었고 내적 투쟁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일기를 썼습니다. 일기를 쓰는 것은 청교도들의 전형적 작업이었습니다. 에드워즈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1722년부터였는데 그것은 1725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일기장은 그들에게 마치 “영혼의 엑스레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에드워즈는 20세가 되기 직전 자신의 평생의 지침으로 70가지를 결심하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것이 에드워즈의 저 유명한 「결심문들」(resolutions)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기록해 둔 그 결의들을 잊지 않고 매주 한 번씩 읽기로 다짐했습니다.

에드워즈의 일기와 결심문들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내용들 중 하나는 자신의 구원과 신앙 문제에 대한 언급들입니다. 많은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젊은 에드워즈도 하나님이 정말 자기를 사랑하시는가 하는 기본적 문제를 의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결코 그냥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영적 상태 혹은 구원 여부에 대한 성찰이었습니다. 에드워즈의 내면 성찰의 가장 중요한 목적들 중 하나는 자기 영혼의 구원 여부에 대한 확실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젊은 청년으로서 무서울 만큼의 철저함을 보여줍니다.

“최대한의 엄밀함과 부지런함으로, 그리고 가장 엄격한 정밀성을 동원해서 내 영혼의 상태를 들여다봄으로 내가 정말 그리스도 안에 분깃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로 결심하다. 그리하여 내가 죽을 때 이 점에 대해 후회할 어떤 소홀함도 없게 되도록...”(48번째 결심).

1722년 12월 18일에 작성한 35번째 결의문에는 자기 구원에 대한 에드워즈의 염려가 나타납니다. 19세의 에드워즈는 아직 스스로 만족할만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이유는 1. 신학자들이 말하는 그 준비 작업에 대한 나의 체험을 그렇게 충분히 말할 수 없고, 2. 중생이 일어나는 일반적 방식이라고 신학자들이 말하는 그러한 단계를 꼭 그대로 밟아 중생을 체험했다는 기억이 없으며, 3. 기독교적 은혜, 특히 믿음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듬해 즉 그가 스무살이 되던 1723년 5월 25일에 기록한 일기도 여전히 에드워즈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만일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나는 하나님이 나의 [영혼의 구원] 상태를 알게 해주시도록 더 많이 기도하지 않은 것을 유감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문제를 더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회심에 대한 옛날 우리 신학자들의 견해를 더욱 자세히 그리고 부지런히 들여다보기로 결심한다.”
 

이 무렵 에드워즈는 정말 자신의 구원에 대한 철저하고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7월 5일자 일기를 보겠습니다.


“지난 밤, 나는 만일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내가 어떤 일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내가 죽을 준비가 더 잘되어 있도록 하나님께 보다 간절히 기도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진리로 인도하셔서 내가 나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 스스로 속고 있지 않도록 해 주시기를 보다 열심히 간구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것이라 생각했다.”
 

젊은 에드워즈의 일기와 결심문에는 기도생활에 대한 결의도 두드러집니다. 기도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대단한 결의와 각오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평생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삶을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젊은 시절 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경건을 훈련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마 자주 금식기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건강을 해칠 정도로 한 것이 아닐까 스스로 염려할 정도였습니다.


“육신을 죽이는 일을 너무 계속하고경건의 훈련을 너무 강도높게 하면 건강을 해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그것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을 때까지는 중단하지 않겠다. 건강이 상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얼마나 지치고 피곤한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1723년 1. 12 일기).
 

30대의 나이에 들어선 1734년에도 에드워즈는 식사를 꼬박꼬박 챙기는 것보다는 신령한 일 추구하는 것을 더 중시했습니다. “내가 신령한 명상에 적합한 마음 상태에 있거나 아니면 성경 읽기나 신학적 주제의 연구에 몰두해 있을 때, 나는 저녁 식사하러 가느라고 그 일을 중단하느니 차라리 식사를 거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된다”(1월 22일).

1735년의 일기에 이러한 종교적 결심이 나타납니다. “특별한 주제들을 두고 명상하는 날들을 따로 떼어 두기로 하다. 때로는 하루를 떼어서 내 죄들의 크기를 생각하고, 또 하루는 불경건한 자들이 미래에 당할 비참의 확실성과 무서움을 생각하고, 또 하루는 기독교의 진리와 확실성을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성경에 약속되고 위협된 미래의 큰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날을 가지는 식으로 말이다”(6월 11일).

# 은혜 체험

에드워즈가 처음으로 하나님과 신적 일들에 대한 “내면의 달콤한 기쁨”을 발견했던 것은 1721년 즉 그가 18세 되던 해에 디모데전서 1:17절,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을 읽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아래의 진술은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역 및 그의 종교적 신념들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들 중 하나입니다.


“내가 그 말씀을 읽고 있었을 때 신적 존재의 영광에 대한 감각(sense)이 내 영혼 속으로 들어와 퍼져 나갔다. 그것은 그 전에 내가 경험했던 어떤 것과도 전혀 다른 새로운 감각이었다. 성경의 어떤 말씀도 이 말씀처럼 보였던 것은 없었다. 나는 혼자 그가 얼마나 탁월한 존재이며, 만일 내가 그 하나님을 즐길 수 있다면, 그리고 천국에서 그와 연합할 수 있다면, 그리고 사실상 그 분 안에 삼키운 바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나는 혼자 이 성경 말씀을 계속 중얼거리면서 그것으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는 기도하러 갔다. 기도하는 중에 그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전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즉 새로운 종류의 감정으로 기도했다.”
 

이 무렵부터 에드워즈는 그리스도, 구속 사역, 그리고 그에 의한 영광스러운 구원의 길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이해와 생각”(a new kind of apprehensions and ideas)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그러한 일들에 대한 “내면적이고 달콤한 감각”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그리스도와 그의 인격의 “아름다움과 탁월함” 그리고 그 분 안에 있는 값없는 은혜에 의한 구원의 “사랑스러운” 방법에 대해 읽고 묵상하는 데 시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책들보다 그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책은 없었습니다.

이 당시 에드워즈의 영성에는 흔히들 신비적이라 부를 수 있는 체험들이 분명히 존재했었습니다. 에드워즈는 젊은 시절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남달리 깊고 친밀한 교제를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악 2:1) 같은 말씀이 그에게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달콤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가서 전체가 그에게 큰 즐거움을 주곤 했기 때문에 그는 그 책을 많이도 읽었습니다. 그럴 때면 그는 수시로 “내적 달콤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것은 그를 명상 속으로 이끌어갔습니다. 그는 그것을 “영혼이 이 세상의 모든 근심들을 떠나 고요하고 달콤한 몰아경”에 빠진 것으로 묘사합니다. 혹 그것은 “모든 인간을 떠나 산 속이나 어떤 외로운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달콤한 대화를 나누면서 홀로 있는 그러한 종류의 환상, 혹은 상상”이었습니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 아주 커다란 만족을 느꼈습니다. 구원의 확신, 혹은 그보다 훨씬 더한 것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더 큰 거룩에 대한 영혼의 강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그것들로 가득해 터질 것 같았으며 하나님의 일들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거의 계속적으로 그것들을 묵상했습니다. 그는 당시 몇 년이고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합니다. 에드워즈의 젊은 시절은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의 한 흠모할만한 모범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많은 시간을 홀로 숲 속이나 한적한 장소들을 거닐면서 명상하고 독백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예외 없이 나의 명상들을 노래로 표현하곤 했다 … 기도는 내게 마치 호흡처럼 자연스러웠다. 그것을 통해 나는 불타는 내 마음을 발산할 수 있었다.”
 

# 거룩에 대한 갈망

1722년 석사 논문을 마치기 전 에드워즈는 강도권을 얻어 당시 막 형성되기 시작하던 신도시 뉴욕의 작은 장로교회에서 약 8개월 간(1722년 8월에서 1723년 4월) 설교자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뉴욕에 있는 동안 그는 그 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종교적 감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거룩에 대한 그의 동경은 훨씬 증대되었습니다.

순결하고 겸손하며 거룩하고 천상적인 기독교가 그에게 극히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복된 이미지를 닮으며 모든 일에 복음의 순수하고 달콤하며 축복된 규율들에 따라 살고자 하는 불타는 욕망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영적 갈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강도 높은 경건의 훈련을 쌓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거룩해져서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제자로 더 합당한 모습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당시 그의 “밤낮 끊임없는 질문이요 투쟁”이었습니다.

에드워즈에게 있어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우리가 “봄철에 보는 그 작은 하얀 꽃”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은 낮고 겸손하게 땅에 깔려서 그 꽃망울을 열고 태양의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있는 봄꽃과 같았습니다. 그것은 향기로운 냄새를 사방에 퍼뜨리면서 주위에 있는 다른 꽃들 사이에서 평화스럽고 사랑스럽게 서 있었습니다. 당시 에드워즈는 내면적 영성의 아주 높은 차원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가장 바람직한 내적 영혼의 상태를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살아있는 영성의 증거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사랑입니다. 에드워즈는 당시 모든 책들 중 성경을 읽는 데서 최대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때로 그것을 읽는 중에 모든 단어들이 그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나는 때로 너무 많은 빛이 문장마다 비취는 것을 보았고 또 너무나 시원하고 황홀한 맛의 양식이 전달되는 것처럼 느껴져 계속 읽어내려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어느 한 문장을 묵상하면서 그 안에 포함된 경이들을 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문장들이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습니다.” 말씀을 보는 에드워즈의 영적 눈이 활짝 열려 있었고 성령께서는 그에게 말씀을 이해하는 신령한 빛을 풍성히 던져 주셨던 것입니다.

# 노템프턴에서의 영적 성숙

노탬프턴에 온 후에도 에드워즈의 신령한 은혜 체험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완전과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에 눈이 열릴 때마다 하나님을 마음속으로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의 “거룩하심”으로 인해 영광스럽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에드워즈에게 항상 그의 모든 속성들 중 가장 사랑스러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에드워즈의 영적 만족과 행복은 교리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막연한 감정이나 근거없는 환상에 도취되어 있는 몽상가나 신비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값없는 은혜,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인간의 전적 의존 같은 교리들이 그에게 너무나 달콤하고 영광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러한 교리들이 그의 기쁨의 원천이었습니다.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치 격렬한 연애 감정에 빠진 남녀들처럼 그리스도라는 말만 들어도 감격했습니다.

그는 때로 “구주로서 그리스도의 탁월한 충만성과 적합성”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는 그에게 모든 것 위에 계신 “만인 중의 대장”으로 보였습니다. 그의 보혈과 구속이 달콤하게 느껴졌고 그의 의도 그러했습니다. 뒷날 저술한 『종교적정서』에서 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어떤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은혜의 증거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한 장 전체를 할애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주장이었습니다. 그가 체험한 가장 달콤한 기쁨과 즐거움은 그의 영혼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영광스러운 일들에 대한 직접적인 시각”(view)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 한국 교회의 적용

에드워즈는 어릴 적부터 구원의 확신을 획득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적 분위기나 환경이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발견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시를 위한 사교육에 올인하는 것이 전국적 문화가 되어 있고 청소년들의 최대의 관심과 사명감이 학업 성적을 높이고 석차를 올리는 데 있는 한국사회,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도 그러한 사회의 그것과 대차가 없는 한국 교회에서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영적 거인이 자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물론 세속화된 21세기의 미국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겠지만, 한국에서 에드워즈 같은 그리스도인, 그리고 18세기 미국 청교도 사이에서와 같은 대각성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로부터 세속적 가치관과 교육관으로부터의 완전한 결별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에드워즈의 신학적 바탕은 20대 초반에 이미 터가 닦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명석한 젊은 두뇌로 신학적 주제들을 그처럼 깊이있게 꾸준히 묵상한다는 것은 엄청난 신학적 역량의 축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에드워즈가 지적 이해만으로 이루어지는 신앙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너무나 실재적이고 체험적인 신앙, 즉 마음으로 느끼고 누리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드워즈의 경건과 체험의 원천은 하나님과의 조용한 만남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한 데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그의 종교적 체험들은 모두 에드워즈가 20세가 채 되기 전에 일어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체험들을 통해 에드워즈는 참 은혜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종교적 정서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발견들은 훗날 그의 주저인 『종교적 정서』에서 상술됩니다. 그러므로 에드워즈의 신학은 그것이 저서로 출판되기 이삼십 년 전에 이미 개인적으로 체험했던 내용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철학적 신학자들의 경우처럼 사변이나 관념, 그리고 단순한 지성의 산물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들에 대한 개인적 체험의 결과였습니다.

오랜 묵상과 명상을 통해 경험적으로 확인한 사실들의 진술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도 이런 실제적 경건의 훈련을 통해 확신하게 된 복음의 진리들을 전하고 가르치는 교사들이 가장 절실히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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