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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신학

영적전쟁, 귀신과의 싸움으로 국한시켜서는 안돼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4:20

 

영적 전쟁에 관한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평가 / 배춘섭 박사 / 2015년 3월 16일 기사

 

 
 
“영적전쟁, 제3의 물결 운동 등과 같은 성령운동은 성령의 은사를 수반한 기적활동과 사단과의 능력대결을 통한 승리주의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지향한다. 하지만 능력대결은 이원론적 세계관, 왜곡된 구원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은사의 불균형성 등 신학적 위험성 때문에 선교학적 측면에서 재고해야 할 신학적 쟁점들이 있다.”

현재 한국 교회를 비롯해 세계 교회는 오순절과 은사주의 운동을 계승한 ‘제3의 물결’이라 칭하는 성령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교회성장학파가 제기한 영적 전쟁의 주제는 오늘날 신사도운동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교파를 초월해 전 세계 일부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령운동과 관련해 한국 교회 내에서는 신학적으로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입장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흔히 기적, 환상, 계시, 방언, 신유 등으로 나타나는 성령운동은 ‘은사지속론’과 ‘은사중지론’ 중 어떤 주장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초대 교회에 나타났던 다양한 성령운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타난다는 것에 동의하는 이들은 성령운동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성령운동을 비판적 시각에서 평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성령운동, 특히 사단과의 싸움인 ‘영적 전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배춘섭 박사(서울성경대)는 한국개혁신학회(회장:주도홍 박사, 백석대)가 지난 14일 신반포중앙교회에서 개최한 ‘제115차 정기학술발표회’에 발제자로 나서 ‘영적 전쟁에 관한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평가:전략적 차원의 영적전쟁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 배춘섭 박사는 "진정한 선교는 능력대결로써 지역귀신과 싸우거나 중보자의 위치에서 신비적인 전쟁에 참여하는 개인의 전쟁이나 이 땅에서의 전쟁으로 국한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춘섭 박사는 “제3의 물결에서 주장되는 ‘전략적 차원에서의 영적 전쟁’(Strategic-level Spiritual warfare, 이하 SLSW)에서 언급되는 사단의 정체, 귀신들림, 땅밟기, 귀신축사 등의 개념은 의심할 바 없이 성경의 관점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며 “SLSW로서의 능력대결에 참여할 것을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배 박사는 “SLSW의 긍정적인 요소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선교학적 측면에서 성경해석이 너무 상황적이라는 점, 지나친 개인적 능력대결에 치중한 나머지 선포된 복음의 능력을 축소시킨다는 점, 비기독교적 세계관의 요소들이 다분하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단과의 영적 대결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다고 하더라도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선교 사역들의 유일한 주권자가 되신다는 ‘하나님의 선교’를 강조하는 것이 보다 성경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김대웅 박사(총신대)도 '요한계시록 인자 기독론의 고대 유대교적 기원:70인경 다니엘서의 메시아 사상'을 주제로 발표했다.

다음은 배춘섭 박사가 발표한 ‘영적 전쟁에 관한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평가:전략적 차원의 영적 전쟁을 중심으로’의 연구논문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영적 전쟁에 대한 다양한 의견

20세기 후반부터 흥미롭게 갱신된 영적 존재에 대한 관심을 신사도운동가들은 사도직의 부활을 경종으로 은사주의 운동을 계승해 인간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사단의 존재와 마귀의 능력을 강조했고, 교회는 그 영향을 받아 선교를 위해 악한 영적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주장은 1970년대 이후 관심이 증폭돼 1990년 존 윔버(John Wimver)의 ‘제3의 물결운동’으로 크게 확산됐다. 이로부터 영적 전쟁론에 동조하거나 지지하는 이들이 나타났는데, 대표적 인물로는 피터 와그너, 톰 화이트, 존 도슨, 프랭크 페레티, 조지 오티스, 찰스 크패프트, 신디 제이콥스 등과 같은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영적 전쟁에 관한 내용은 다소 성경적 가르침이나 세계관과 충돌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소위 능력대결로서의 영적 전쟁 사상은 구약성경에서 고대 근동지역이나 오늘날에도 애니미즘으로 현저히 나타나는 지역에서 이교적 세계관으로서 각 지역의 전통신앙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영적 전쟁은 많은 학자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윌터 윙크(Walter Wink)는 세상은 제도화된 장소이고, 사단은 세상 안에 존재하는 악의 상징적 보고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영적 전쟁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지배적으로 잠식하고 있는 악한 배우세력을 찾아 그 사회 제도 안에 거주하는 악을 쫓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월터 윙크의 선교방법론은 악한 세력과 인간이 직접 대적하는 싸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그리스도인이 순종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주권역사로 구원을 나타난다는 것을 강조한다.

데이빗 폴리슨(David Powlioson)은 사단을 실제적 존재로 인정하고 평가한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영적 전쟁에 종사해야 하며, 복음을 듣고 회개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사단의 세력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인간중심적인 열광주의적 선교방법론을 취하지 않는다.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행위를 정경이 완성되기 전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한시적으로 부여된 임시적 은사라고 말한다.

폴리슨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인한 구원의 과정을 믿고, 복음으로 인해 사단의 역사가 약화되고,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된다는 전통적인 선교방법론을 지향한다.

그레고르 보이드(A. Gregory Boyd)는 사단을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있어서 실제적인 존재로서 개인적 대리자 정도로 인식한다. 그는 영적전쟁을 인간적인 폭력적 방법으로 행사해서는 안되며, 사랑과 평화적 수단으로 악한 세력들을 대항하고, 이를 위해 기도와 상담과 같은 실제적 방법들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보이드는 영적전쟁은 단순히 귀신을 쫓는 사역으로 치부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성한 사역, 즉 기도를 포함해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고, 구제하며, 악과 혼란에 대항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레베카 그린우드(Rebecca Greenwood)는 하나님 나라의대표자로서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들에게 능력을 휘두를 수 있는 법적인 권리를 지녔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의 어떤 영역에서도 예수의 권위를 대표하고 악한 세력들을 쫓아낼 수 있는 그리스도의 대사임을 강조한다.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는 영적 전쟁을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한다. 첫째는 지상적 차원에서의 영적전쟁, 둘째는 주술적 차원에서의 영적전쟁, 셋째는 전략적 차원에서의 영적전쟁이다.

특히 와그너가 가장 관심을 지닌 영적전쟁은 전략적 차원이었다. 이는 사단과 귀신들과 같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한 세력이 지역을 장악했을 때, 영적전쟁을 치러야 하는 수준 높은 전쟁이다.

와그너는 전략적 차원에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역 귀신’을 인정하고, 전략적 중보기도를 통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사단의 세력을 결박하고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지역 귀신은 ‘영적 도해도’, ‘동일시 회개’, ‘땅 밟기 기도’ 등과 같은 방법들을 통해 지역 안에서 거주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귀신들을 쫓아내고 패배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 제3의 물결과 신학적 논쟁

와그너는 1983년 공식적으로 ‘제3의 물결’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다. 그 후 제3의 물결이라는 용어는 복음주의 교회의 다양한 초자연적 경험을 강조하는 사건들을 언급하는데 광범위하게 사용되곤 했다.

이 용어는 20세기에 있었던 두 물결의 영적인 회복운동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영적인 운동으로서 20세기의 첫째 물결은 1900년대 발생한 오순절 운동이었고, 두 번째 물결은 1960년대 발생한 은사주의 운동이다.

다시 말해 제3의 물결은 성령과 오늘날의 영적 행위나 계시 등을 강조하는 오순절과 은사운동처럼 또 다른 유형의 성령운동의 표현임을 인식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제3의 물결에 대한 신학적 논쟁점들은 보통 다섯 가지 정도다. 첫째, 인간은 자신의 동의 없이도 얼마든지 악령에 지배되거나 귀신들릴 수 있다. 둘째,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귀신을 식별하고 쫓아낼 수 있는 특별한 은사를 지니고 있다. 셋째, 소위 ‘지역 귀신’은 지역, 도시, 국가와 같은 특별한 영역을 관장하고 있다. 넷째,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귀신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들의 통제에 도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다섯째, 물체나 장소는 귀신들림을 위한 통로로 사용될 수 있고, 악한 영향력을 투과할 수 있다 등이다.

이러한 신학적 논쟁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제3의 물결 운동을 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이에 대한 답변을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영적전쟁에 관한 일관된 견해를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 제3의 물결의 ‘능력 대결’의 신학적 위험성

영적전쟁에 관한 그들의 이해에도 불구하고, 제3의 물결의 가장 특징적인 성격 중의 하나는 ‘능력 대결’이다. 하지만 능력 대결은 신학적인 중대한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과 사단의 전쟁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의 위험성이다. 능력 대결은 하나님과 사단의 대결을 공개적으로 제시하며 집중한다. 이 경우 개혁신학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라는 성경의 대 진리와 충돌하게 된다.

둘째, 가시적이고 초월적 능력만을 강조함으로써 왜곡된 구원론의 능력으로 인식될 위험성이다. 능력 대결로서의 영적전쟁 개념은 자칫 하나님의 구원과 관계없는 인간이 치러내는 전쟁이 될 뿐만 아니라 복음의 본질적인 능력에서 벗어난 하나님의 섭리와 관계 없이 악의 세력과의 전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선교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복음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전제는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이 복음을 통해 드러남으로써 죄인이 복음을 믿고 회개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음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진리는 오직 능력 대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능력은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과 겸손, 고난 등 가시적 능력보다 더욱 큰 기독교의 고귀한 가치가 담겨 있다. 따라서 만약 이런 기독교의 가치가 무시된 채, 대결 구도의 능력만 강조된다면 성경에서 강조되는 모든 정적인 가치는 훼손되고 타종교처럼 종교적 이원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

넷째, 은사의 불균형으로 인해 은사의 다양성을 오해할 수 있다. 교회를 위한 은사를 다루는 성경본문은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이다. 전자는 주로 가시적인 은사를, 후자는 불가시적 은사를 다룬다. 따라서 만일 능력 대결만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만 크게 부각될 위험성이 있다.

# 영적전쟁, 왜 따르거나 옹호할까?

스캇 모로우(Scott Moreau)는 ‘전략적 차원의 영적 전쟁’(SLSW)을 지역 귀신과 대항해 기도하고, 전략적 차원에서 영적인 지도를 만드는 것으로 묘사한다. 또한 지역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구별하고, 그 귀신들이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복음을 믿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가를 밝히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런 과정의 한 단면은 ‘영적 도해도’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SLSW는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적지 않은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기여를 한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피터 와그너의 SLSW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첫째,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신들로 하여금 마태복음 28장의 그리스도의 지상 대명령에 순종하기를 기대한다고 믿는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둘째, 복음전파와 선교 사역에 있어서 지역과 문화와 관련된 선행연구가 매우 중요함을 인식한다. 선행연구로서 마귀의 강력한 진을 파악하기 위해 SLSW 선교사들은 주로 ‘도시의 문제’, ‘도시문제의 원인과 근원’,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 등에 괴를 기울인다. 이런 연구는 어떤 측면에서 선교전략을 위해 적절하고 유익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셋째, 그들은 영적전쟁과 마귀들의 실존을 가장하고 표적과 이적을 위한 은사주의를 추구한다. SLSW 지지자들은 가시적 세계 뒤에 숨어 있는 초월적 존재인 불가시적 배후세력에 대해 아주 진중하게 제시하면서 능력 있는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도록 가르쳤다.

때문에 귀신의 실존을 믿으려 하지 않는 서구인들은 영적 존재에 관해 더 지식을 충족하려는 욕구를 채워준 SLSW에 관해 상당히 호의적이 되었다. 즉, 계몽주의 이후 인식론과 경험론을 바탕으로 한 서구의 실증주의와 현대 과학주의 앞에서 영적 존재의 실제성을 부각시켰다.

넷째, 중보기도의 필요성과 효율성을 강조한다. SLSW 옹호자들은 중보기도가 방법론적 기도 이상의 효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섯째, SLSW를 변호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사명을 완수하려 할 때 교회 안에서 일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분열은 하나님의 군대를 약화시킨다는 이해 때문에 그들은 경쟁보다는 상호협력을 추구한다. 그래서 공동의 적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힘을 합해 전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 영적전쟁의 약점

이런 긍정적 혹은 강점들 때문에 SLSW는 지지자들과 옹호자들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SLSW는 많은 논란과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첫째, SLSW은 성경해석을 너무 상황적으로 한다. 성경은 SLSW의 상황중심의 본문해석과 같은 성경해석의 방법의 정당성과 정확성을 명확하게 제공하지 않는다. SLSW을 주장하기 위해 제시된 성경본문을 보면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용납하기 힘든 오류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즉, 텍스트를 통해 도출된 신학적 원리를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SLSW의 옹호자들의 성경해석학은 미리 상황적 틀을 전제하고, 성경을 해석함으로써 독자가 원하는 결과를 유추하는 오류가 발견된다.

현재 SLSW의 성경해석학이 성경의 역사적 본문보다 문화적 상황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주장은 SLSW 일부 신학자들의 자의적 해석으로 인해 더욱 지지를 받고 있다.

둘째, 개인의 능력 대결에 치중한 나머지 선포된 복음의 능력을 축소시킨다. 즉, 하나님의 전적 주권에 의해 선포되는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SLSW의 핵심은 지역 귀신과의 능력대결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그 이면에 귀신들을 쫓아내야만 그 지역에서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해지고, 능력이 나타난다는 세계관을 견지한다.

이렇게 귀신 쫓기에 몰두하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윤리적 책임과 행동을 회피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어둠의 권세에 열중하는 것은 온 관심을 능력대결을 하는 사람에게 집중시킴으로써 그리스도를 축소시키고, 사단의 위치를 격상시킬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

성경은 세상과 육체라는 용어를 반복적으로 강조해 강한 윤리적 가르침을 제공한다. 성경은 자기 경험에서 빗댄 영성이나 영적전쟁의 방법론이 아닌 오히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만 죄로부터 치유와 회복과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능력 대결의 종교, 그 이상을 의미한다. 즉, 성경은 능력 대결로 귀신을 결박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계획을 강조한다.

셋째, SLSW는 비기독교적 세계관이 내포돼 있다. SLSW의 배경에는 창조 전부터 하나님과 반역자 사단 사이에는 사전에 우주적인 갈등과 전쟁이 있었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사단의 존재는 인간에 대한 반대세력으로서 지구에 남겨지게 됐는데, 이런 상황은 결국 인간이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성취해야 한다는 필연적인 전제조건을 성사시킨다.

사실 SLSW가 주장하는 ‘인간은 영적 전쟁을 위해 실존하는 존재’라는 가르침은 메소포타미아의 비기독교적 세계관과 유사하다. 이런 논리는 결국 절대자가 인간으로 하여금 주권적인 존재의 전사로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게 하고, 완수하도록 창조한다는 고대 근동의 이교적 세계관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원론적 세계관은 오직 승리를 목적으로 한다. 선이 이기면 의와 화평과 사랑이 다스리고, 악이 승리하면 악한 권세가 통치하는 세상이 도래한다. 힘의 대결에서 도덕성과 정의는 차후의 문제가 될 뿐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전쟁의 핵심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전쟁에서의 승패는 인간의 능력보다도 하나님을 위한 충성과 믿음이었다. 성경은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의존하는 관계와 믿음에서부터의 영적전쟁을 찾는다.

또한 SLSW는 애니미즘과 샤머니즘과 같은 전통 종교의 신앙관과 혼합된 세계관의 미신적 요소를 갖고 있다. 와그너는 SLSW를 계급화되어 있는 귀신들의 존재를 고도로 체계적인 철학적 사상으로 설명한다. 그는 사단이 전능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권력을 다른 악령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영들의 지위체제에 따라 ‘지상적, 주술적, 그리고 전략적 차원의 영적전쟁 이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사상의 배후에는 다분히 우주가 셀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들로 채워져 있고, 악한 귀신들은 하나님이 설계한 세계와 인간을 파괴한다는 이념이 내포돼 있다. 그리고 마귀의 존재는 인간에게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가시적 자연만물을 이용해 인간의 삶을 고통스럽게 조작한다는 세계관이 잠정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 SLSW의 개혁신학적 쟁점과 평가

SLSW가 인식하는 사단은 하나님의 주권까지 침해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과 사건의 배후에는 사단과 귀신들의 활동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악령에 관한 인식론은 결국 인간의 비윤리적 책임소재를 불식시켜 버린다.

결국 능력대결로서 사단과의 현상학적 전쟁에 관한 지나친 집착은 신앙생활의 본질을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한 순종보다 신비적이며 미신적으로 변질시켜 버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영적전쟁의 대상을 사단으로만 오해해서는 안된다.

SLSW가 주장하듯이 사단은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나 비슷한 권능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싸워야 할 대상은 인간의 내면적 죄이며, 그 죄를 부추기는 사단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SLSW의 지역 귀신들과의 전쟁보다도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죄의 문제임을 깨닫는 것이다. 사단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미혹하는 존재일 뿐이다.

또한 SLSW 지지자들은 귀신들림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유전, 접촉 행위와 저주 등을 통해서도 귀신들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 입장이기보다는 주술적 지역들에서 정령숭배적인 현상학적 접근을 통해 얻어진 경험론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정령숭배자들의 존통적 신앙관과 아주 흡사하다.

그러나 성경은 능력전달이나 귀신들림을 접촉이나 전이와 같은 주술적 행위에 두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이 허용케 하시는 주권 아래에 있을 뿐이다.

김남준은 그리스도인도 귀신들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죄와 사단이 아무리 그리스도인을 유혹한다고 할지라도 마음의 주인의 동의 없이는 그를 지배하거나 귀신들리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단이 인간의 마음에 죄악된 생각인아 그릇된 유혹을 넣어 줌으로써 그를 상대적으로 죄의 지배 아래 둔다면 죄는 무서운 속도로 마음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안착하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귀신들릴 수 있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비기독교적 세계관의 소치일 뿐이다. 영적전쟁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마음 속의 도덕적 선택권과 주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주권을 빼앗긴 채로 죄의 지배를 당하는 순간 인간은 하나님의 진리, 용서, 사랑과는 멀어진 파괴적 인생을 살아가는 죄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땅 밟기와 귀신축사도 비성경적이다. 능력 대결을 위한 이런 의식이나 행위들을 무절제하게 활용하면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전인격적인 신앙성장을 방해한다. 뿐만 아니라 복음 전파를 토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전통적인 선교방법론과도 상당한 마찰을 빚게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선교는 능력대결로서 지역 귀신과 싸우거나, 중보자의 위치에서 신비적인 전쟁에 참여하는 개인의 전쟁이나 이 땅에서의 전쟁으로 국한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 선교는 오직 성경의 권위를 기저라 하여 하나님이 선교의 주권자가 돼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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