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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윤리

본회퍼에게 듣는다① “교회는 타자를 위해 존재한다”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5:24

 

세월호 이후의 신학과 윤리 / 한국기독교윤리학회, 본회퍼 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 개최 / 2015년 4월 15일

 

한국기독교윤리학회(회장:유경동 교수, 감신대)가 지난 4월 11일 ‘세월호 이후의 신학과 윤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디트리히 본회퍼 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한편,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한국 교회의 신학과 윤리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세월호 이후 한국 교회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는 10여 편의 연구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발표된 연구논문의 일부를 '본회퍼에게 듣는다' 시리즈로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주>

“오늘날 한국 교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교회는 다른 사람을 위해 거기 있을 때만 교회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신앙과 행동의 통일성을 통한 제자도의 회복과 타자를 위한 삶의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다.”

본회퍼의 윤리를 이해하려면 그의 저작인 ‘나를 따르라’와 ‘윤리학’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1933년 1월 히틀러는 정권을 잡았다.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는 집권 초창기부터 교회와 국가의 동일시화, 즉 독일민족과 교회를 히틀러화(나치화) 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교회는 히틀러 정권에 대해 거부하든지 받아들이든지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했다. 당시 본회퍼는 우상화 되어가고 있는 지도자의 개념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도자의 퇴진을 요구한다. 이때부터 나치에 대한 본회퍼의 교회투쟁이 본격화된다. ‘나를 따르라’는 이와 같은 투쟁 속에서 1937년에 나오게 됐다.

‘윤리학’은 1939년부터 1943년 4월에 본회퍼가 감옥에 가기까지의 기간동안 기록됐다. 본회퍼는 정치적인 공모활동을 하면서 그의 삶의 과제인 ‘윤리학’을 쓰기 시작했다. 결국 1942/1943년 본회퍼 사상에서 많은 비판과 토론을 야기하는 히틀러 암살공모에 동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게스타포에 의해 본회퍼는 체포돼 감옥에 간다.

따라서 본회퍼의 윤리적 사고들은 그가 행하고 있는 저항적인 공모활동이라는 역사적인 상황과 긴밀한 연결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교회와 국가의 관계 이해

본회퍼에게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중요한 요소이다. 교회투쟁 시기와 저항의 시기에 교화와 국가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그는 분명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속주의적이거나 세상을 등지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와 국가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군다나 1933년 4월에 발표한 논문 ‘유대인 질문 앞에 직면한 교회’에서 국가와 교회에 대한 관계를 3가지로 서술한다. 첫째, 교회는 국가의 합법적인 행동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둘째, 교회는 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셋째, 희생자들을 돌볼뿐만 아니라 그런 수레바퀴 자체를 멈추게 해야 한다.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에서는 “세상이 교회의 형제를 멸시할 때, 그리스도인은 그를 사랑하고 섬길 것이다. 세상이 그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그는 도와주고 고통을 덜어줄 것이다. 세상이 그를 멸시하고, 모독할 때, 그는 형제의 치욕을 가리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줄 것이다…” 등으로 언급하면서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를 서로 적대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마주 대하고 있고, 밀접한 연관 속에 있는 관계로 설정한다.

이런 생각은 ‘윤리학’에서도 드러나는데, 교회와 국가는 서로 마주 대하면서 각각의 위임에 서로 제한돼 있음을 보여주고, 서로를 위하며 함께 하는 관계로 본다.

# 하나님의 현실성과 세계의 현실성의 관계

‘나를 따르라’와 ‘윤리학’에서는 하나님의 현실성과 세계의 현실성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계속성을 갖고 있다.

‘나를 따르라’에서 주로 제자도가 신앙인들에게 제한돼 있고, 즉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현실적 이해보다는 그리스도 제자도의 공동체가 세상과 다른 모습이어야 함을 강조한다면, ‘윤리학’에서는 신적 현실성과 세계 현실성의 개념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통해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현실 이해로 확장됐다.

더욱이 ‘위임이론’을 통해 신앙인들을 전체 현실성 앞에 직면하게 하고, 책임의 장소로서 직업이라는 개념을 통해 한계를 넘어서게 하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다스림의 영역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는 현실 개념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 제자도 윤리와 책임의 윤리 사이의 관계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에서 제자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묶이는 것으로 정의한다. 제자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인 고난에의 참여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한 공동참여를 포함한다.

‘윤리학’에서는 책임의 윤리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삶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현실성에 대한 전체성과 통일성의 대답으로 정의한다.

제자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묶임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에의 참여를 의미하면서 그것은 대리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그의 제자들의 삶에서 계속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에서와 동일하게 ‘윤리학’에서도 이런 묶임을 대리사상과 책임적인 삶의 근본적인 구조로서 책임윤리의 컨텍스트 안에서 강조한다.

하지만 본회퍼의 책임의 윤리는 제자도의 윤리에 비해 힘께하는 사람들과 행동의 영역을 함께하는 세계와 모든 삶의 존재들의 자기목적의 보존을 위해 새로운 방법으로 이해하는 것, 구성적이고 긴장감 있는 묶임과 자유의 연관성의 토대 위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자신의 결정의 모험을 하는 것을 통해 확장되며 구체화하고 있다.

# 본회퍼가 관심을 가진 윤리는 무엇?

본회퍼의 윤리적 관심은 무엇일까? ‘나를 따르라’는 서문에서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부르심은 노동자, 상인, 농부, 군인들을 위해 오늘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윤리학’에서는 “그리스도은 오늘, 그리고 여기 우리 가운데서 어떤 형상을 취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을 근거로 본회퍼의 윤리적 관심을 파악하기 위한 첫 번재 출발점은 ‘오늘 그리고 여기’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본회퍼에서 결단과 만남의 영역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본회퍼에게 교회투쟁 안에서 결단의 영역은 외부적으로는 히틀러의 권력장악으로 인한 교회의 위협, 국가와 함께 교회의 위협적인 동일화 작업에 직면하는 것이며, 내부적으로는 루터로부터 강조된 칭의의 교리가 후기 루터주의로부터 오용되고 있는 위협 앞에 서는 것이다. ‘윤리학’ 안에서도 결단의 영역은 독일사회주의와 히틀러 정권에 반대해 독일의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본회퍼의 윤리적 관심은 직접적으로 그의 삶의 역사와 시대 상황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각각의 상황에 대해 상대적인 순응의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회퍼의 윤리적 관심은 당연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회퍼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은 ‘언제나 다름아닌 오늘의 하나님’이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참인 원리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참인 계명들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회퍼에게 의하면 언제나 참인 것이 오늘 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에게 신앙은 언제나 특정한 구체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은 ‘나를 따르라’로부터 ‘윤리학’의 길을 가셨다.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이 스스로 가신 길이며, 우리가 그와 함께 가야하는 길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가보지 않고, 먼저 가시지 않는 길로는 우리를 초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가신 길은 하나님께서 여신 길이요, 보호된 길이다. 그래서 그것은 실제적으로 그의 길이다.”

‘나를 따르와’와 ‘윤리학’을 통해 본회퍼는 바로 하나님의 길을 따라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통일적인 계속성과 계속적 발전성의 관점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늘, 그리고 여기서’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본회퍼가 이해하는 윤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교회투쟁 시기에 쓰여진 ‘나를 따르라’에서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역사적 조치들과 상황 앞에서, 신학적으로는 값싼 은혜로 인한 교회공동체로서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독일교회 앞에서 유대인들과 교회공동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리고 1939년 저항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기 위해 독일의 운명에 참여하기를 시도한다. 이런 배경 하에서 ‘윤리학’을 저술한다. 1942년까지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 천 명을 살해하는 상황 앞에서 본회퍼는 연악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위해 ‘자연적인 것’을 복음으로부터, 그리고 나치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쟁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기를 시도한다.

# 한국 교회, 본회퍼 윤리를 어떻게 적용할까?

본회퍼의 윤리적 관심은 확고한 추상적인 원리나 단순한 상황분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현재적 상황과 깊게 연대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으로부터라는 사실이다.

이런 두 가지 연관성은 교회투쟁 시기나 공모 시기에 본회퍼가 전체적인 삶의 영역 안에서 함께 사는 법을 실천할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저항과 복종’ 안에서도 “오늘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는 실제적인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며 계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회퍼의 윤리에 기초해 한국 교회에 필요한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오늘 그리고 여기, 한국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을 취하고 계실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학자들은 다양한 답변을 할 것이다.

나는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와 ‘윤리학’에서 강조했던 부분들이 모두 한국 교회 안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 한국적 상황은 ‘나를 따르라’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배경과는 다르지만 신학적인 상황에서는 거의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값싼 은혜가 판을 치고, 교회의 세속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치 제국 앞에서 가장 무력하게 있었던 독일교회처럼 한국 교회도 어느 때보다 무력한 상태에 있다. 따라서 ‘오늘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을 취할까’라는 질문에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로서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값비싼 제자도의 신앙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값비싼 제자도는 구체적으로 신앙과 복종(순종), 칭의와 제자도, 은혜와 행동(삶)의 밀접한 통일성이다.

그리고 본회퍼가 ‘윤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른 ‘책임’이라는 사상을 다시 한국 교회는 붙잡아야 한다. 본회퍼의 책임은 오늘 여기서 모습을 취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 앞에 응답하는 것이다.

이 책임(책임의 윤리)는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과 책임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나 민중을 위해 알량한 동정심을 베푸는 정도의 교회가 아니라 타자를 위한 교회의 본질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형상을 통해 구체화 한 책임의 사상을 배워야 한다.

교회는 다른 사람을 위해 거기에 있을 때만 교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우리에게, 신앙과 행동의 통일성을 통한 제자도의 회복과 타자를 위한 삶의 책임은 오늘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취하신 모습일 것이다.

* ‘나를 따르라’에서 ‘윤리학’까지:본회퍼에게 있어서 윤리적 사고의 발전에 대한 소고 / 강안일(성락성결교회, 서울신대)

   
▲ 한국기독교윤리학회가 본회퍼 순교 7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4월 11일 '세월호 이후의 신학과 윤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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