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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신학

[원문]20세기 틸리케의 교회개혁과 성령론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5:50

 

안계정 박사(대신대) / 2015년 5월 3일 기사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 박사)이 지난 5월 1일(2015년)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교회개혁과 성령’을 주제로 제23회 영성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이날 발표된 세 편의 연구논문을 주최 측의 제공으로 데오스앤로고스에서 원문으로 제공합니다. 자료에 대한 모든 법적 권리는 제공자 측에 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20세기 틸리케의 교회개혁과 성령론:귀신들린 세상과 성령의 신학
/ 안계정 박사(대신대)


I. 문제제기

1. 틸리케는 칼뱅과 웨슬리와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는가?

20세기의 개혁을 논함에 있어 우리가 특별히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 1908-1986)의 신학과 삶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개혁적인 사건’을 이루었는가? 단적으로 말해서 개혁을 생각하는 이 모임에서 틸리케는 16세기의 칼뱅(Jean Calvin), 18세기의 웨슬리(John Wesley)와 같은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는가? 다음의 말을 주목해보자.

틸리케의 죽음 이후 독일의 개신교 교회에서 그의 빈자리는 결코 다시 메워지지 못했다. 수많은 대중을 예배로 끌어들였던 신학적으로 수사학적으로 탁월했던 신학자이자 설교가의 빈자리 말이다.
 

지난 2008년 헬무트 틸리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독일의 한 언론사가 했던 논평이다. 이미 세속화된 독일사회가 한 신학자이자 설교가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하고 그의 삶과 죽음을 공론장으로 올려놓는 것은 분명 흔하지는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 사회적 애도와 안타까움만으로 틸리케를 20세기의 대표적 ‘개혁가’로 규정할 수 있는가? 혹 ‘20세기의 교부’라 불리는 바르트(Karl Barth)가 더 적합하지는 않을까?

어쩌면 ‘사실’(fact)보다 ‘해석’(interpretation)이 더 절박할 수 있다. 틸리케 자신의 말처럼 ‘무엇이 일어났느냐’보다 ‘그것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가 솔직히 우리에겐 더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hic et nunc) 우리가 갖는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헬무트 틸리케라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시도는 아전인수(我田引水)의 ‘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필요충분조건이다.

2. 연구목적과 과제

본 연구는 ‘20세기의 개혁’이라는 다소 거대한 관심을 가지고 틸리케의 신학과 실천에서 특별히 ‘개혁적’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있는가를 검토하기 위함이다. 바르트도 아니고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도 아니고 벌코프(Louis Berkhof)도 아닌 틸리케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취사선택에 이미 본질적인 의도와 목적이 있는 것이다.

첫째, 먼저 틸리케의 대작 가운데 하나인 “신학적 윤리”(Theologische Ethik)를 통해 윤리적인 분야에서 그가 근본적으로 어떤 시도를 했고, 거기에서 특별히 개혁적인 것이 있는지를 연구할 것이다. 물론 윤리는 근본적으로 실천을 포괄한다.

둘째, 틸리케의 교의학 저서 “개신교 신앙”(Der evangelische Glaube)을 통해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영역에서 그가 어떤 노력을 경주했고 거기서 특별히 개혁적인 것이 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특별히 그가 주창하는 “성령의 신학”(Theologie des Geistes)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대체 그가 주창하는 이 신학의 정체는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연구를 검토하고 나서 틸리케가 과연 20세기를 대표할만한 개혁적인 일을 남겼는가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시도할 것이다.

II. 윤리적인 분야에서 틸리케의 개혁

주지하다시피 틸리케의 평생의 역작은 4권으로 된 윤리학 작품 “신학적 윤리”와 3권으로 된 교의학 작품 “개신교 신앙”이다. 색인까지 합하면 권당 평균 600페이지에 달하는 실로 방대한 분량이다. 조직신학자로서 틸리케는 먼저 기독교윤리에서 왕성한 신학적 사고를 전개한다.

1. 계몽의 기획과 “귀신들린 세상”

1951년, 우리민족에게는 한국전쟁이 한창 일 때, 틸리케는 “신학적 윤리” 제1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귀신들린 세상을 통한 기독교윤리의 불확실성”(Die Infragestellung der Christlichen Ethik durch die Dämonisierung der Welt), 이것이 시작하는 제목이다. 2차세계대전의 참상과 참화 이후, 핵무기로 서로를 위협하는 동서냉전의 위기 속에서 틸리케는 “귀신들린 세상”을 본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저 무시무시한 묵시적 비전이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그는 호소한다.

이 두렵고 떨리는 귀신들린 세상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틸리케에 의하면 세상의 악마화는 세속화(Säkularisation)가 만들어낸 것이다. 세속화는 무엇인가? 세속화는 근본적으로 계몽시대의 기획으로서 데카르트적 ‘코기토’(cogito)와 칸트적 이념인 인간의 자율성(Autonomie)을 극대화시키려는 시도였다. 그 결과 서구사회는 탈-기독교(Ent-Christentum) 또는 부분적으로 반-기독교(Anti-Christentum)의 길을 걷는다. 그 결과 유럽은 형식적으로는 기독교와 동거하고 있으나 실제에서는 이미 이혼한 상태가 되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식과 행위의 주체로서 자아를 발견하고, 그렇게 발견된 자아가 비판적 이성을 통하여 스스로에게 부여한 준칙을 통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계몽의 근대성 자체가 특별히 악마적이지는 않다고 틸리케는 본다. 오히려 자아와 자율성은 철학적 논거 이전에 이미 기독교 신앙 자체가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독재자의 타율적 율법(tyranischer heteros nomos)으로서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결단코 종의 순종(oboedientia servilis)을 원하지 않으시며 아들의 순종(oboedientia filialis), 곧 우리의 자발적인 결단을 원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복음의 요구에 정복당할 때, 곧 복음에 설득될 때 일어난다.
 


기독교신앙은 본질상 자율적이다. 외부의 어떤 강요나 압력으로 믿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믿음은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freie Zuwendung des Geistes)의 열매이다. 따라서 어떤 외부적인 강제력을 동원해 기독교로 개종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유와 성령의 현재화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현재화(Gegenwärtigung des Geistes)에 주목하는 그의 신학적 입장을 틸리케는 “성령의 신학”(Theologie des Geistes)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계몽의 기획과 세속화 시도가 왜 세상의 악마화로 귀결되었는가? 인간은 대체 불가능한 존엄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외쳤던 칸트(Immanuel Kant)의 조국에서 왜 나치라는 ‘악마’와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이 나타났는가? 틸리케에 의하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서구가 하나님에게서 떠났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나 칸트는 물론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의심으로 충만했던 데카르트는 존재론적인 사유를 통해 신의 존재를 긍정했으며, 비판의 대가 칸트 또한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영역에서 신의 존재가 요청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조심스럽게 신의 존재를 긍정하려고 애썼어도 결국 “신의 죽음”이라는 악마성의 단초를 열어놓은 것이다. 마침내 무신성의 선지자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신이 죽고 떠난 자리에 들어온 것은 나치와 스탈린주의라는 악마였다.

2. “세계 안의 존재”로서 그리스도인의 실존

그렇다면 서구가 하나님의 죽음을 선언하고 그의 품을 떠났기에 화간 난 하나님이 나치와 스탈린을 통해 세상을 심판했다는 것이 틸리케의 생각인가? 이러한 종류의 설교는 신학적 교육상태가 심히 의심스러운 소위 ‘부흥강사’에게서 종종 듣게 되는데, 20세기 개신교 진영의 최고 신학자라는 틸리케가 이런 값싼 설교를 할 리는 없다.

세상이 악마화된 것에, 나치가 독일의 지성과 양심을 황폐화시킨 것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단지 유대인 부모를 두었다는 우연한 이유로 가스실에서 떼죽음을 당하는 지옥의 도래에 교회 역시 책임이 있다. 우리 기독교인은 아무 잘못이 없고 오로지 히틀러와 스탈린만 마귀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마귀의 궤변이다. 틸리케에 의하면 교회는 너무나 빨리, 너무나 무력하게 세상에서 후퇴했다.

신학이 세계성(Weltlichkeit)을 포기하고 문화와 제도라는 객관성(Objektivität)과 경건과 감정이라는 주관성(Subjektivität)에 겨우 안전한 둥지를 틀고자 했을 때 세상은 마귀가 판을 치고 악마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치라는 악마가 우는 사자와 같이 세상을 삼키고 있을 때 교회는 스스로를 게토에 가두고 말았다. “하나님 없는 세상과 세상없는 하나님”(die gottlose Welt und der weltlose Gott), 곧 세상의 악마화와 교회의 게토화, 이것이 20세기를 바라보는 틸리케의 시대진단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윤리의 과제는 그리스도인의 “세계 안에서 존재”(In-der-Welt-Sein)를 해명하고 탐구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틸리케는 주장한다. 세상의 악마화와 교회의 게토화가 오로지 절망과 좌절만을 준 것이 아니다. 교회와 신학에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었다고 틸리케는 강조한다. “신약성서가 말하는 ‘세상 안에 그러나 세상으로부터가 아닌 존재, 곧 육체 안에 있으나 육체로부터가 아닌 존재’는 우리에게 윤리의 급박한 문제로서 주어졌다.”

이렇게 틸리케는 전통적인 기독교윤리의 혁신을 시도한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윤리는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관점에서 도덕적 규범을 규정하고, 그 기초위에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윤리적 조언을 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즉,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과 관련된다. 그러나 틸리케는 비록 규범을 정립한다는 윤리의 기초적 책무를 방기하지는 않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나치가 만들어낸 아우슈비츠라는 지옥 앞에서 이성과 양심, 자유와 의무라는 서구정신이 자랑하던 가치들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윤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명하는 일을 자신의 과제로 삼아야한다. “우리가 그 안에서 행동해만 하는 현실성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가?”

3. “옛 에온과 새 에온” 사이의 긴장영역

틸리케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은 “옛 에온과 새 에온 사이의 긴장영역”(Spannungsfeld zwischen dem alten und dem neuen Äon) 가운데 존재하며 특히 개혁신학의 윤리는 이 긴장영역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해명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에온’이라는 개념은 신학의 전통적인 개념인 ‘도성’(civitas) - ‘신의 도성’과 ‘땅의 도성’ - 혹은 ‘왕국’(Reich) - ‘그리스도의 왕국’과 ‘지상의 왕국’ -을 대체하는 틸리케의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개념이다. 물론 그가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종말론을 통해 윤리적 개념으로 확장시킨다. 이런 면에서, 곧 틸리케가 ‘시대 적합한’(zeitgemäß) 개념을 통하여 새로운 윤리적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개혁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틸리케에게 에온은 사회구조를 포착하려는 사회학적 개념이 아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과 그들의 공동체로서 교회가 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설명하려는 관계적 개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에온이 동텄다. 그러나 이 새 에온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던 이 세계, 어둠의 주관자들이 지배하는 ‘옛 에온’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역사신학적으로 말한다면 구원사(Heilsgeschichte)는 세계사(Weltgeschichte) 한 복판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옛 에온에서 새 에온으로 불려진(aus dem alten Äon herausgerufen) 존재이다. “이러한 불려짐은 우리가 이 에온의 규정하는 힘들에서 뛰쳐나와 완전히 새롭고 다른 주인의 지배 아래로 던져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동시에’(simul) 여전히 옛 에온의 지배 아래 놓여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옛 에온과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관계 아래 서있다.” 연속성이란 나는 여전히 나를 객관적으로 지배하는 사회법칙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비연속성이란 그럼에도 나는 그 객관적 규정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데 있다. 틸리케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갖는 옛 에온과의 이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예수의 산상수훈에서 대표적으로 발견한다.

예수가 제시한 산상수훈의 요구는 슈바이처(Albrt Schweitzer)가 생각한 것처럼 종말의 때까지만 효력이 있는 “중간윤리”(Interimsethik)가 아니다. 또 자유주의자 헤르만(W. Herrmann)이 제안한 것처럼 실현 불가능한 비유에 지나지도 않는다. 산상수훈의 요구는 마치 우리가 실현된 종말의 때에 살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것이 우리가 옛 에온과 갖는 비연속성이다. 이런 면에서 예수의 요구는 철저하게 종말론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산상수훈의 종말론적 요구를 일반적으로 실천할 수 없다.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실제에서 원수를 미워하고 증오한다. 그래서 틸리케는 ‘너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너는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Du kannst, denn du sollst)는 칸트의 명제를 이렇게 바꾼다. 나는 해야만 하지만, 나는 할 수 없다!(Ich soll, aber ich kann nicht). 옛 에온은 새 에온의 등장으로 결정적 패배를 당했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그 힘을 다 상실한 것은 아니다. 옛 에온의 법칙들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옛 에온과 맺는 연속성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세계 안에서의 실존은 옛 에온과 새 에온 사이의 긴장영역 가운데 있기에 늘 갈등상황(Konfliktsituation) 속에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삶 가운데서 한계상황에 빠지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약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죄를 지어서도 아니다. 갈등상황은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실존의 본질이다. 틸리케는 이러한 갈등상황에서 규범을 제시하고 어떤 구체적 답을 주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기독교윤리는 모든 갈등상황에 어떤 답을 주려는 민법 같은 결의론(Kasuistik)이 아니다. 대신 틸리케는 매우 중요한 윤리적 개념과 모델을 제시한다. 바로 ‘타협의 윤리’이다.

4. 민주주의 사회에서 타협의 윤리

틸리케에게 타협(Kompromiss)이란 “타락한 세상에서 거두어야만 하는 일종의 조공”(ein Tribut, der an die gefallene Welt zu entrissen ist)이다. 타협은 하나님의 자신의 속성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고 길이 참으시며 범죄한 인간에게 눈높이를 맞춘다. 그것이 성육신이다. 갈등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이러한 눈높이를 맞추는 타협을 요구한다고 틸리케는 강조한다.

틸리케는 갈등상황 속에서 타협을 윤리적으로 기초함으로써 2차대전 후 독일에서 민주주의가 성숙되는 데 일조했다. 갈등상황을 푸는 길은 비타협적 고집이 아니라 대립되는 당사자가 서로 눈을 맞추고 대화함으로써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틸리케는 이론적으로만 타협의 윤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노사가 갈등하는 상황에 직접 참여해서 상반된 두 입장을 조정하려는 시도를 적극 벌였다. 틸리케는 이러한 일을 기독교윤리학자의 의무라고 의식했다. 즉 신학자는 그저 책상에서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갈등상황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고 그 속에서 가능한 타협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틸리케는 교회가 ‘원리적인 중립’을 견지해야한다고 말한다. 물론 실제에서는 중립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힘들지만 교회는 갈등상황 속의 중재자로서 대립하고 있는 양측의 견해를 청취하고 문제점을 파악한 후 가능한 타협점을 도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틸리케는 무엇보다 ‘인간성’(humanity)의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어떤 요구도 인간성의 문제보다 앞설 수 없다는 신념이다. 이렇게 틸리케가 목사로서, 신학자로서 사회적 갈등상황에 뚜렷한 원칙을 가지고 적극 개입하는 활동을 벌였다는 사실은 한국교회에 매우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타협의 윤리는 특히 ‘비타협적 투쟁’을 지조와 생명처럼 여기는 한국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서 갈등상황에는 꼭 이런 현수막이 등장한다. ‘죽을 수는 있어도 멀러설 수는 없다!’ 우리사회에서 ‘타협’이란 말은 일단 부정적이다. 타협하면 연상되는 말이 배신자이다. 그러나 타협이 반드시 배신은 아니다. 우리사회가 좀 더 성숙하고 인간다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틸리케가 강조하는 타협의 윤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점에 틸리케의 윤리와 그의 실제활동은 개혁을 생각하는 지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방향을 던지고 있다.

III. 신학적인 분야에서 틸리케의 개혁

20세기의 개혁에 대해 생각할 때 틸리케가 우리의 특별한 주목을 끄는 이유는 그가 20세기 신학의 ‘슈퍼스타’들과 격렬한 신학적 투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틸리케의 교의학 작품 “개신교 신앙”의 제1권은 불트만(R. Bultmann), 틸리히(P. Tillich), 바르트(K. Barth) 같은 당대 최고의 신학자들과의 투쟁의 기록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철두철미하게 ‘종교개혁신학’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이 투쟁을 전개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틸리케의 이 외로운 투쟁에 개혁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붙일 수 있을 것이다.

1. 신학적 ‘청소작업’

1968년 틸리케의 교의학 작품 “개신교 신앙” 제1권이 세상에 나왔다. 이 해는 ‘20세기의 교부’ 바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였는데,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이 소위 ‘혁명적 학생운동’으로 들끓었다. 독일 곳곳에서 시가전을 방불하게 하는 시위가 발생했고, 함부르크대학의 총장이었던 틸리케는 학생운동의 폭력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시위대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 와중에서 나온 “개신교 신앙” 제1권은 다음과 같은 비장한 ‘출사표’로 시작한다.

한 신학적 시스템의 이 첫 권은 미쳐버린 상황 속에서 창소작업(Aufräumarbeit)을 수행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다. 그것은 작금의 논쟁 속에서 정밀한 입장으로부터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것이고 종종 담대하게 유행하는 “신화”(Mythos) 혹은 “신의 죽음”(Tode Gottes) 같은 개념들을 체포해서 이것의 참된 정체를 심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우리의 신학적 현재를 극복하고 우리가 세우고자 하는 기초를 먼저 다지려는 것이다.
 


틸리케가 제시한 신학적 목표는 분명하다. 첫째는 지금의 신학적 현재를 극복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를 통해 자신이 세우고자하는 신학적 시스템의 기초를 놓으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창조를 위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틸리케는 자신이 세우고자 하는 신학적 시스템을 후에 “성령의 신학”이라고 부른다. 대체 이 성령의 신학은 무엇인가? 그의 시도는 성공했는가?

독일에 개발해서 전 세계에 수출하는 가장 성공적인 상품으로 자동차와 신학이라는 말이 있다. 과히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다. 독일의 신학이 곧 세계의 신학이다. 슐라이어마허, 바르트, 본회퍼, 불트만, 틸리히 등의 신학이 곧 세계의 신학이다.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는 19세기 사람이고, 본회퍼는 20세기의 첫 십년에 태어났으나 신학적 꽃을 피워보기 전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20세기 신학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바르트, 불트만, 틸리히는 19세기의 마지막 십년에 태어나서 20세기 중반에 전성기를 보냈다. 틸리케는 이들보다 한 세대 후로 개인적으로는 이들에게 강의를 듣기도 했고 사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틸리케는 “개신교신앙” 제1부에서 슐라이어마허, 틸리히, 불트만의 신학 중 청소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이는 개념들을 정밀하게 골라낸다. 체포 대상은 감정, 존재, 비신화화 같은 것들이다. 다음으로 제2부에서는 “신의 죽음”이라는 당시 매우 세인들의 관심을 끌던 개념을 청소하는데 모든 지성을 쏟아 붓는다. 여기서 틸리케는 ‘신의 죽음’이라는 관념이 어떻게 발생했는가를 철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정밀하게 추적한다. 칸트, 헤겔, 니체, 하이데거 등 그 이름만으로도 시대정신인 지성들을 불러내 비판적인 대화를 시도하는데, 한 마디로 ‘숨 막히는’ 지식의 향연이다.

이렇게 틸리케가 당시 시대를 주도하는 지성들을 불러내 비판적인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전통적인 기독교 진리와 신앙을 보존하려했다는 점에서 틸리케의 청소작업은 변증학(apologetics)이다. 기독교 변증학은 그 시대의 언어와 개념을 사용해서 그 시대의 지성과 대화를 해야 한다. 틸리케가 신학자로서, 교회의 대표자로서 시대의 지성과 공론장에서 대화하고 기독교신앙의 본질을 보호했다는 점과 또 공론장은 틸리케의 이 목소리를 경청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틸리히와 불트만 역시 그 시대의 주도적인 개념과 언어를 가지고 기독교신앙에 대해 기술했지만 과연 여기서 기독교신앙의 본질이 유지되었는가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기 때문이다.

틸리케는 틸리히와 꽤 깊은 개인적 친분관계가 있었지만 틸리히가 주장하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거부한다. “우리는 존재의 근거에 대해 명상은 할 수 있지만 존재의 근거를 경배하고 그에게 기도할 수는 없다.” 이 말에 틸리케가 평생의 과업으로 여겼던 ‘청소작업’과 ‘기초 놓기’가 무엇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2. 데카르트적 신학과 비-데카르트적 신학

틸리케는 슐라이어마허, 틸리히, 불트만을 대표로 하는 신학적 경향을 “데카르트적 신학”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그 어떤 학자도 이런 이름을 붙인 적이 없다. 데카르트적 신학이란 한마디로 신학적 사고의 출발을 ‘자아’라는 주관성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틸리케는 바르트를 데카르트적 신학의 범주에 넣는 것에 대해 주저한다. 왜냐하면 바르트 신학의 출발점은 데카르트적 자아가 아니라 객관적인 계시로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틸리케에 의하면 데카르트적 신학의 극단적 예는 틸리히이다. 틸리케에 의하면 틸리히의 신학은 사실상 존재철학이다. 왜 그런가? 틸리히의 신학적 사고는 “존재론적 충격”(ontologiscehr Schock)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인간이 자각하는 유한성(Endlichkeit)이다. 나는 결국 언제가 비존재(Nichts)로 돌아가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유한하지 않은 것, 곧 무한한 것(das Unednliche)은 무엇인가? 틸리히에게 그것이 바로 신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유한하지 않은 무한한 것, 곧 존재의 근거(Grund des Seins)가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말하는 계시, 죄, 구원은 무엇인가? 틸리히에 의하면 그것은 상징(symbol)이다. 인간의 실존이 존재의 심연과 맺는 다양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계시는 나를 무조건적으로 관여하는 것(das mich unbedingt Angehende)에 대한 인간실존의 관계이며, 죄는 비존재의 충격 속에서 유한자가 갖는 불안(Angst)이고, 구원이란 이 불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틸리케는 데카르트적 신학의 한 극단적인 형태를 발견한다. 신학적 사고가 내가 느끼는 존재론적 충격, 곧 나의 실존과 상황(meine Existenz und Situation)에서 출발한다. 틸리히가 이러한 유한자의 존재론적 충격을 비록 20세기의 세련된 실존철학의 용어로 서술하고 있지만 그 본질적인 의미내용에 있어서는 19세기 슐라이어마허가 설파한 절대의존감정(das schlechthinnige Abhängigkeitsgefühl)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신학적 사고가 먼저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이 아닌 자아의 느낌이나 실존에서 출발한다. 데카르트적 신학의 이러한 시도, 즉 자아의 실존과 상황에서 하나님과 그의 계시를 투영하는 시도는 모든 면에서 실패한다고 틸리케는 단정한다. 참된 신학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계시와 성경을 통해 우리 인간의 상황이 무엇인지를 살펴야하는 것이다.

틸리케는 일반적으로 ‘보수신학’이라 불리는 신학적 경향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못한다. 물론 ‘보수적인 것’(das Konservierende)은 전승된 진리내용을 진실하고 충실히 보존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태도는 종종 경직된 독단으로 흐르기 쉽다. 우리에게 전승된 진리내용이 지금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묻지 않고, 다시 말해 현재화시키지 않고 오로지 과거에로만 집착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극단이다. 틸리케는 이러한 입장을 ‘사이비 보수’라고 꼬집는데, 겉으로는 과거의 전통과 교리에 대한 충성을 부르짖지만 실제에서는 세상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스스로를 게토에 가두는 것이다.

3. 바르트 비판: 헤겔적 신학?

틸리케의 신학적 ‘청소작업’ 중 가장 인상적이면서 논란이 되는 것은 바르트에 대한 비판이다. 바르트에 대한 틸리케의 비판은 그의 주요 작품 곳곳에 퍼져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가장 우리의 눈길을 끄는 곳은 바르트를 ‘헤겔적 신학’이라고 비판하는 대목이다. 틸리케는 세 가지 측면에서 바르트의 신학을 조심스럽게 헤겔적 신학이라고 분석한다.

첫째, 바르트의 신론은 헤겔의 “절대정신의 자기외화”(Entäußerung des absoluten Geistes) 라는 철학의 강한 영향을 보여준다. 바르트에게서 하나님의 본질은 자유와 독립성이다. 그런데 바르트에게 이 하나님의 자유는 필연성(Notwendigkeit)에 종속된다고 틸리케는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러한 ‘그 자신이 그의 자유 안에 존재함’(Er-Selbst-in-seiner-Freiheit-Sein)은 세계창설 이전에 하나님 자신을 자비로운 자와 은혜언약(Gnadenbund)의 창설자로 규정하게 한다. 이 은혜언약에 내포된 것은 - 필연성이라는 헤겔의 개념에서 제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 결국 헤겔의 자기전개이념(Selbstentfaltungsidee)과 놀랍도록 비슷해진다.
 


참으로 바르트에게 하나님의 자유는 필연성에 종속되는가? 만일 하나님의 창조행위가 하나님 본질의 필연적 자개전개과정이라면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헤겔의 절대정신 철학을 신학에 도용한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한 틸리케의 비판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둘째, 악(das Böse)에 대한 바르트의 가르침은 다분히 헤겔적이라고 틸리케는 비판한다. 왜냐하면 바르트에게서 악은 실체가 아니라 “그저 단순한 과정”(als ein blpßer Durchgang)이다. 악은 “무”(das Nichtige)이다. 무는 그 자신의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고 하나님이 무시하면서 지나쳐버린, 다시 말해 “하나님이 원하지 않은 것”(Nicht-Wollen-Gottes)이 된다. 그래서 틸리케는 이렇게 단정한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악에 대해 하나의 실체적 차원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악과 그 실체적 형태로 죄를 무로, 즉 ‘하나님이 원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바르트의 입장은 헤겔적 사고구조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틸리케의 비판은 설득력이 있다.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하나님에게서 또는 절대 선으로 표상되는 절대정신에게서 어떻게 악이 발생하는가는 바르트와 헤겔 모두에게 난제였음이 분명하다. 특히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자가’(Saga)로 간주하는 바르트에게서 악의 기원은 그 실체성이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셋째, 틸리케는 바르트의 신학이 보편화해(Allversöhnung)로 귀결된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비판적 입장은 오직 틸리케만 취하는 태도는 아니다. 틸리케에게서 독특한 면은 바르트의 보편화해 신학이 헤겔적 사고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나온다고 지적한다는 점이다. 그 핵심 고리는 바르트의 예정론이다. 틸리케는 바르트의 예정론이 성경의 가르침과 특히 칼빈주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본다. 바르트에게서 “선택과 유기는 엄밀히 말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드라마가 아니며 내재적 삼위일체의 현상(ein innertrinitarisches Geschehen)이자 하나님 안에서의 드라마(Dram in Gott)이다.” 이것은 “정신 단일성에서의 자기전개”라는 헤겔적 철학과 유사하다.

물론 바르트가 믿고 기술하는 하나님은 헤겔처럼 절대적 정신으로서 변증법적으로 필연적인 과정에서 스스로를 전개하고 실현시키는 추상적 원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바르트에게 하나님은 사랑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로서 하나님은 단순한 철학적 이념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이다. 틸리케도 이 점은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바르트를 “헤겔적 동일성사변의 대변자”(Vertreter einer Hegelschen Identitätsspekulation)로 보는 고가르텐(Friedrich Gogarten)의 입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바르트의 신학을 ‘헤겔적 신학’ 또는 ‘헤겔에 영향을 받은 신학’으로 보는 틸리케의 입장은 우리에게 열린 토론과 연구과제를 제시해준다. 틸리케가 학문적으로 제기하는 쟁점들은 분명한 논거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바르트 전문가들과의 토론은 필요한 것이다.

4. 성령의 신학

틸리케는 자신의 신학을 “성령의 신학”이라고 명명한다. 대체 이것은 무슨 뜻일까? 독일산 오순절 신학인가? 틸리케에게 성령의 신학이란 근본적으로 신앙과 설교가 이성과 반성에 우선하는 신학적 체계를 의미한다. 틸리케는 성령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근거로서”(als Grund des Glaubens, der Liebe und der Hoffnung) 파악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틸리케는 “20세기의 스펄전”이라 불릴 정도로 탁월한 설교자였다. 그가 함부르크의 유서 깊은 미카엘교회(St. Michael Kirche)에서 설교할 때면 수천의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함부르크 경찰이 교통정리 하느라고 골머리를 앓았다. 이를 보고 독일의 대표적인 시사주간지 “슈피겔”(Spigel)은 설교의 시대가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며 놀라워했다. 말씀의 선포가 신학적 반성에 우선하다는 것이 틸리케가 말하는 성령의 신학의 근본입장이다. 즉 말씀이 선포를 불러일으키고, 선포는 신앙을 일으킨다. 따라서 말씀과 선포가 없는 신앙이란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 틸리케는 칼뱅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말씀을 빼버리면 신앙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틸리케는 ‘신앙은 지성을 요구한다’(fides quaerens intellectum)는 안셀름(Anselm)의 테제가 불충분하다고 본다. 오히려 “지성은 신앙을 요구한다.”(intellectus quaerens fidem) 다시 말해 믿음에서 신학이 나오는 것이지, 신학에서 믿음이 나오지는 않는다. 신앙 없이 단순히 직업적으로 혹은 실용적으로 신학을 한다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틸리케의 언급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핵심적으로 그가 세우려는 성령의 신학의 방법과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해준다.

신학은 우리의 선포의 근거(Grund unserer Verkündigung)에 대해 질문한다. 그러기에 복음의 소식은 텍스트가 해석에 선행하듯이 항상 신학에 앞선다. 이러한 이유로 신학은 자신의 원천(Ursprung)으로 돌아가고 거기에서 기준을 받아들일 때만 건강하다.
 


IV. 결론

이상에 우리는 20세기의 개혁을 논함에 있어 틸리케가 과연 그 합당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그의 신학의 주저인 “신학적 윤리”와 “개신교 신앙”을 포괄적으로 조명했다. 틸리케가 과연 16세시의 칼뱅, 17세기의 웨슬리와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틸리케에 대한 연구와 연구자는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몇 가지 의미 있는 사실을 확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첫째, 틸리케는 왜 아우슈비츠와 같은 참혹한 대재앙이 왔는가에 대해 분명한 신학적 답변을 제시했다. 그것은 귀신들린 세상의 극단적 단초이다. 그렇다면 이 귀신들린 세상은 어디서, 어떻게 왔는가? 그것은 계몽의 기획과 그 결과로서 신의 죽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럽은 다시 자신의 근거인 기독교 선포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유럽의 지성이 한 때 추구하던 계몽의 기획과 신의 죽음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세속화된 유럽을 향해 틸리케는 다시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외롭게 외쳤다. 저 유명한 설교 “기다리는 아버지”에서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바로 유럽 자신의 모습이며 결국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둘째 아들의 모습에서 유럽의 회복을 희망한다.

둘째, 틸리케는 20세기 교회와 신학 가운데서 “미쳐버린 상태”를 직감했다. 신학 스스로가 성숙한 현대인과의 대화를 명분으로 신화, 전설, 상징, 신의 죽음 같은 불분명하고 대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개념들을 생산해냈다. 여기에 대해 틸리케는 신학은 인간의 시도가 아닌 하나님의 시도로서 성령께서 선포하는 것에 근거해야함을 역설했다. 동시에 그는 한 사람의 설교자로서 힘을 다해 말씀을 전했고, 거기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반응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성령의 역사에 집중하려는 신학이 성령의 신학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내용의 원활한 게재를 위해 각주와 참고문헌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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