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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선교신학, ‘복음에 성실한 좋은 교회 되는 것’이 핵심 본문

선교와 신학

아시아 선교신학, ‘복음에 성실한 좋은 교회 되는 것’이 핵심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5:59

 

장신대, ‘21세기 아시아 태평양 신학과 실천’ 국제학술대회 개최 / 2015년 5월 13일 기사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김명용 박사)가 지난 5월 12일~13일 양일 간에 걸쳐 학교 내 세계교회협력센터에서 ‘21세기 아시아 태평양 신학과 실천:아시아 선교신학의 모색과 나눔’을 주제로 제16회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김명용 총장은 “과거에는 유럽과 대서양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21세기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신학이 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교회들이 21세기 바른 역사적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아시아의 토양 속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지, 아시아 선교적 과제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협력을 이루어내야 하는지 논하는 등 새로운 신학을 발전시키고 바른 실천을 위한 방향에 대한 지침도 발전시켜야 한다”며 이번 행사의 취지와 목적을 설명했다. 이번 학술대회 취지에 따라 발제자로 참여했던 신학자들의 주장들을 일부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주>

   
 
# 아시아 선교신학의 모색과 나눔
/ 서정운 박사(장신대 명예총장)

모든 신학은 하나님의 성품과 구원의 목표와 의도, 차원 등을 실천하는 열정과 용기를 뿜어내는 역동성(생명)이 있어야 한다. 그 같은 요소가 없는 신학은 살아있는 신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교가 신학의 어머니’라는 말이 옳다. 선교신학은 모든 신학의 중심인 선교를 탐구하고, 실천으로 체득한 바를 나누고, 선교를 바로 하게 할 뿐 아니라 기독교신학을 정립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교는 동역이다. 일방적인 구조는 없다.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으로 나누어 역사하신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명을 나누어주신다.

우리의 나눔을 위해 나눌 것이 있어야 한다. 우선 우리 모두가 우리의 현실 속에서 모범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가 교회를 초월해 사역하지만 역사적으로 가시적인 선교의 실현과 지속을 하게 하는 기본적인 기구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아시아 교회들이 복음에 성실한 좋은 교회들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자체가 건실한 신학을 나누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좋은 교회의 이야기와 깨달음과 희망을 나누며 함께 성숙하고 전진해야 할 것이다.

선교신학의 나눔은 동지적 우애감이 없이는 서로 교류하고 성숙하기 어렵다. 최근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한국 교회의 단기선교 형태는 대개 일방적이고, 피상적인 운행으로서 지속적인 동지적 우애형성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근본적인 반성과 탈바꿈이 필요하다.

글, 책, 학술대회나 행사를 통해 발표하고 나눈다고 하지만 그 효과와 영향은 매우 한정돼 있다. 극소수의 학자들, 목사나 선교사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은 관심 있는 신학생과 평신도들에게 국한돼 있다.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종과 계층과 지역을 초월한 그리스도인들과의 인격적 접촉을 통한 동지적 우애 형성에 힘써야 한다. 연결되거나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지속적인 관계유지나 동지적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유량’해야 한다. 교회는 정착해 축적하고 고정되는 고질병이 있다. 이는 교회가 쇠퇴하는 공식이다. 교회는 유량해야 한다. 교회는 항상 안정과 정착, 현상유지와 자원의 축적에 몰두하기 쉬운 세속적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유동하는 유랑자의 기질과 존재양식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설교, 기도, 교육의 내용이 사도적이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모든 교인들이 흩어져사는 그들의 자리에서 그 내용을 말과 인격과 삶으로 실천해 증거해야 한다. 교회마다 돈과 자원을 적극적으로, 대외사역에 나누는 자기비움으로 하나님과 세상에 자신을 열어가는 무욕한 순례공동체의 고행을 감행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현실적으로 세계 도처에 산재한 디아스포라 교회들이 중요하다. 그들의 자리에서 선교사역을 수행할 뿐 아니라 본국 교회와 현지 교회의 연결고리로 함께 나누고 협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선교사들의 사역은 더욱 중대하다. 현장에서 각기 맡은 사역으로 현지 교회와 협력하되, 하나님의 종으로, 교회의 종으로 섬겨야 한다. “내가 너희 중에 섬기는 종으로 있다”(눅 22:27)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자기를 나누고 남을 섬기는 선교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한다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고, 복음적인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선교는 자기가 살면 죽고, 자기가 죽으면 사는 오묘한 역설의 길을 가는 거룩한 순례다.

# 아시아의 빈곤과 지역사회 개발 선교 
/ 데스나오 야마모리 박사(국제기아대책기구 명예회장)


아시아의 빈곤 속에서 교회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빈곤을 완화시키기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아시아에서 교회의 전략적 역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성경적 통전성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도록 아시아의 회중들을 촉구하는 것이다.

통전적 사역이라는 아이디어는 예언자들의 삶과 가르침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와 서로 간의 수평적 연결 모두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남자들과 여자들을 지도했다.

신약성경 또한 통전적 사역 개념을 주장한다. 복음전도와 사회활동의 결합이라는 개념은 예수의 사역에서 구현됐다. 사도바울의 가르침과 초대교회의 삶은 이 주제를 지속시켰다.

따라서 아시아의 목회현장에서 대명령을 완수하기 위한 핵심은 성경적 통전성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아시아 기독교인들은 그 개념을 수용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많은 아시아인들은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빈곤하기 때문에 아시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지역사회 개발 분야에서 기독교 구호 및 개발 조직들은 다양한 수단들과 여러 단계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교회도 다양한 사업을 통해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사업’은 빈곤을 완화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도구다. 우리는 재해 및 난민 위기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작업은 식량, 물, 쉼터, 의복, 담요, 위생, 의료 등과 같은 기본적 요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이전 수준의 농업경제자원과 건강보건자원으로 복구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노력할 것이다. 개발과 지속단계에서는 다양한 다른 수단들이 효율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사업은 이전 수준 이상으로 진전함으로써 빈곤을 퇴치, 자급자족을 확보하기 위한 좋은 영향을 미치려고 활용되는 하나의 프로그램이다.

조직신학자인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은 사업과 빈곤완화를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 세계 빈곤에의 유일한 장기적 해결책은 사업이라고 믿는다. 즉, 기업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기업들이 일자리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매년 계속 제품들을 생산하고 계속해서 일자리를 제공하고, 매년 임금을 지불한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세계 빈곤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원한다면, 나는 생산적이고 수익성이 있는 사업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것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오늘날 선교의 도전은 전세계 7억의 사람들 중 약 1억6천만 명이 복음을 듣지 못했고, 들을 기회가 아예 없었거나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아직 복음화되지 않은 지역에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데, 선교사들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정부정책 뿐 아니라 인종, 문화, 언어, 종교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업의 전략적 활용을 검토해야 한다. 아시아와 세계선교에 사업을 활용하는 것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고, 이른바 ‘킹덤 비즈니스’의 개념이 오늘날 선교 단체들 안에서 빠르게 탄력을 얻고 있다. 킹덤 비즈니스는 복음선포와 사회책임, 말과 행동을 통합함으로써 사업과 기업가적 모험을 통해 화해라는 성경적 목회를 실행하는 것이다. 즉, 다문화 상황에서 말과 행동을 통합함으로써 사업으로 복음을 나누는 것이다.

아시아의 빈곤과 싸우기 위해, 그리고 지역개발 과업을 진척시키기 위해 킹덤 비즈니스를 구현하고 있는 킹덤 사업가들이야말로 21세 교회의 비밀병기다.

#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아시아 교회들의 협력
/ 구나완 하디안토 목사(독또르 찝도교회, 인도네시아 스마랑)


세계 곳곳에서 선교를 위한 교회협력을 구축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등하고 상호협력적이며 진정한 파트너십을 실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식민주의와 가부장적 냄새를 풍기는 파트너십의 예전 형태들은 교회 간 관계에서 늘상 있었는데, 특히 북쪽과 남쪽 사이에서 그랬다.

반스(Jonathan S. Barnes)는 유럽국가들이 ‘스스로 서지 못하는 민족’을 지도하며 교육했듯이, 선교사 공동체도 우월의식과 가부장적 자세를 넘어서지 못해 파트너십과 협력이라는 미사여구가 무색해졌다고 주장했다.

서구 교회의 전 선교지였던 아시아는 지역 교회가 빠르게 성장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서구 교회는 출석자 수가 감소했다. 그 결과, 기독교의 중심은 서구에서 남쪽으로 옮겨 갔고, 아시아 교회도 하나의 중심지가 되었다.

새로운 선교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시아 교회에서 새롭고 훌륭한 선교동력이 점차 자라고 있다. 세계기독교지도의 자료를 인용하자면 1910년 아시아 출신 선교사는 300명이었다. 2010년에 와서는 47,100명의 선교사가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는 대한민국(2만 명), 인도(1만 명, 주로 인도 내 다문화 선교사들), 중국(5,600명), 필리핀(6천 명, 주로 이민 노동자들)이다. 아시아 선교사들의 압도적인 수가 아시아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협력적으로 선교활동을 하려면 돈과 권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선교현장에서 정책을 주도하려는 성향은 모든 협력에 방해가 된다. 따라서 아시아 교회들은 과거, 즉 서구의 교회들이 새로 탄생하는 어린 교회들의 파트너가 되려는 과정에서 겪은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

선교사들이 선교사역을 수행함에 있어 지나친 재정적 지원은 안하는 것이 더 낫다. 선교사들이 받는 도전은 현지 기독교인들과 순수한 동반자,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겸손해야 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현지 기독교인들과 대등한 파트너다. 현지 기독교인들이 외국의 재정적 지원에 의지하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재정을 사용하도록 용기와 힘을 복돋아주어야 한다.

협력이 선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신학적으로 협력의 개념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에서 연유된다. 그러나 실제로 선교역사 속에서 특히 서구 교회와 신생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협력은 가부장적 식민주의와 힘의 남용으로 얼룩져 왔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협력자로 부르셨고, 그들에게 세계선교의 사명을 맡기셨다. 신학적 배경이나 사회적 신분이 전혀 다른 제자들을 같은 한 그룹에 협력자로 선택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파트너십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동역의 기본적 실천은 상대를 상호 존중하는 것이다. 대화는 더 이상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교회가 서로 주고 받을 재능을 각자 갖고 있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각자 갖고 있는 재능의 차이는 그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가 서로 다른 지역의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동역에 있어 각 교회는 자기 지역의 주책임자다.

세계선교협의회 문서는 “하나님이 모든 창조물의 주권자시라고 단언하는 것은 모든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모든 생명에게 속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그룹의 사람이나 어느 조직도 지구상의 재물에 대해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착취하거나 파괴하거나 혹은 제물로 삼을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화해케 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진리 역시 묵시적으로 선교를 이렇게 이해하도록 한다.

아시아 교회들이 선교의 중대한 세력으로 성장해오고 상황 속에서 아시아 교회들은 하나님의 선교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동등한 상호 관계 가운데 협력해야 한다. 그럴 때 아시아 교회들이 아시아인들의 삶에 크나큰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 아시아의 종교ㆍ문화ㆍ영성, 그리고 교회의 역할
/ 김영동 박사(장신대 교수)


지구촌 모든 지역에서 종교는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시아는 세계 종교의 발상지로서 종교가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아시아인의 삶과 사고와 태도는 종교에 의해 깊이 각인되어 있다. 아시아에서 발원한 힌두교, 불교, 도교, 유교 등은 대개 인간의 운명을 규정하는 신념의 틀로 작용하고 있으며 그 운명에 순복하게 하거나 해방하게 하는 힘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피에리스에 의하면, 아시아 종교는 심리적, 사회적으로 해방하는 힘과 예속화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심리적인 예속 면에서 종교는 미신, 의식주의(ritualism), 교조주의, 혹은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가 되고, 사회적인 면에서는 억압적인 현상의 유지를 정당화한다. 반면에 종교는 심리적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죄(맘몬, tanha, antigod, 착취 본능 등)로부터 내적해방을 가져오고, 사회적인 해방의 힘은 급진적인 사회변화의 잠재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아시아 선교신학과 교회는 아시아에 유유히 흐르는 종교의 예속하는 면에 대해서는 복음의 증거를, 해방하는 힘과는 대화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복음은 고난과 투쟁이 일어나는 실제 삶의 정황에 참여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선교신학과 교회의 역할을 부여한다. 아울러 복음은 가난한 사람과 고난 받은 사람에게 제사장적 사명과 동시에 불의와 억압과 불평등의 사회에 예언자적 사명을 부과한다.

전도와 삶의 일치로서의 증거가 아시아 교회에 시급히 요청된다. 서구 식민제국주의의 부정적인 유산이 여전히 아시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의심하게 하고 불신과 반감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증거는 회심과 교제와 봉사와 교회 공동체 형성과 더불어 온 세상에 화해, 치유, 평화, 정의와 해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요,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그리스도의 법 아래에 두려는 하나님의 목적에 관여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복음의 표상으로서 기독교인 개인과 공동체는 신뢰할 만한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역 교회는 “복음의 해석학”이다.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곳은 복음이 진실로 살아있는 지역 공동체에서 일어난다. “유일한 복음의 성서적 해석은 그것을 믿고 그것에 의해 산 사람들의 모임이다(빌 2:15~16).”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는 세상에서 “이방인 거주자”(resident aliens) 공동체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 속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 “대응 공동체,” 그리고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공동체로 존재해야 한다.

아시아에서 복음의 증거는 특히 가난과 종교에 기쁜 소식이 되는 기독교 개인과 교회 공동체적 삶이 되어야 한다. 특히 아시아에서 선교는 공동의 증거를 구현해애 한다. 세상 어디에서나, 특히 아시아에서, 증거에 심각한 장애물은 교회의 수치스러운 분리, 경쟁, 적대감, 그리고 “기독교 사랑의 정신과 모순되고, 인간자유를 침해하고, 교회의 기독교적 증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교인을 호객하는 행위이다. 공동의 증거양식은 다양할 수 있다.

아시아신학의 범위 내에서 종교간의 대화는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그 중 하나는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한 고전적 시도로 나일스(D. T. Niles)를 들 수 있다. 아시아 에큐메니칼 신학자로서 나일스는 아시아신학과 교회의 책임성 있는 자주(the responsible 'selfhood')에 대해 천명했다.

나일스는 지역 상황의 마이크로 콘텍스트와 아시아라는 매크로 콘텍스트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아시아신학의 자주성을 강조한다. 책임성 있는 자주성이란 교회가 처해 있는 구체적인 현실태로서의 지역 상황에 책임성 있게 응답하는 것과 아울러 전통 종교 문화와 기독교 메시지의 만남과 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후자의 작업으로 불교와 기독교의 조우이다.

타종교와의 만남 혹은 대화에 대한 나일스의 특별한 관점은 이론이나 체계의 만남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지금 여기에서의 인간과의 만남과 대화, 즉 ‘삶의 대화’이다. 그는 타종교와의 만남과 대화란 도서관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살아 호흡하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한 특정 종교에 대해 중립적으로 연구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완전하다거나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과 대화에 어떤 일반적인 이론을 산출할 수는 없다. 아울러 불교가 아니라 불교 신자들을 이해하는 것이 타종교와의 만남과 대화에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된다는 말인가? 그는 불교라는 종교 체계가 아니라 불교 신자들의 용어로 기독교신앙을 진술하는 것이 기독교신앙의 성장을 촉진하게 된다고 한다.

21세기 선교는 더 이상 선교사나 후원교회 중심으로 선교를 보거나 역사를 기록해서는 안 되며, 동시에 현지 사역자와 동역자의 이름과 사역에 대해 침묵해서도 안 된다. 오래된 교회전통이나 체계화된 신학이 미비하다 할지라도 주변인들이 예언자적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정의, 연대, 포용성의 선교에 도전한다.

아시아 선교신학과 교회의 역할은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창조적 긴장 속에서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온전한 교회, 아시아 종교에 증거와 대화를 병행하는 온전한 교회, 아시아 문화에 상황화와 변혁을 이루는 온전한 교회, 아시아의 압도적인 가난에 수행과 행동을 겸비하는 온전한 교회, 주변부와 중심부의 상호 배움, 상호 나눔, 상호 축제하는 온전한 교회다.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하는 선교는 온전한 선교, ‘온 신학’적 선교여야 하며, 그에 따른 나눔이란 영적인 자원의 나눔, 신앙의 나눔, 힘의 나눔, 물질적 자원의 나눔을 말한다.

‘온 신학’의 대화적 신학은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상호적인 배움과 나눔과 축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나눔과 섬김, 증거와 대화, 상황화와 변혁, 수행과 행동이 융합되고 통섭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선교의 본질과 방법이다.

오늘 아시아 교회가 시급히 본받아 마땅한 선교 이해요 실천이다. 특히 가난과 고난과 식민주의의 상처와 후유증 및 내란과 혼돈의 질곡에 빠져있는 아시아 선교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의 방법인 성육신적인 태도로 이루어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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