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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사회

기독교 영성, “시대의 아픔 폭로하고, 악에 저항하라”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6:00

 

박영식 박사, 서울신대 기독교영성연구소 학술세미나서 발표 / 2015년 5월 14일 기사

 

 
 
“하나님은 고난의 반대편에 계신 것이 아니라 고난의 상황 안에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 안에서 이 세상의 부조리한 폭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모든 자들의 아픔과 슬픔에 동참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

“기독교는 침묵과 경청의 영성, 기억과 공감의 영성, 저항과 실천의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이기도 하다. 예수는 우리를 향해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고 묻는다.”

세월호 참사라는 렌즈를 통해 하나님의 전능성과 인간의 고통의 문제를 다루며, 사회적 고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 ‘그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새물결플러스)의 저자인 박영식 교수(서울신대)의 말이다.

서울신대 기독교영성연구소(소장:조성호 교수)가 지난 5월 14일 오후 3시 성결인의 전당 존 토마스홀에서 개최한 ‘제6회 학술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여한 박영식 교수는 ‘시대의 아픔과 기독교 영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 부조리한 고통을 넘어서

   
▲ 박영식 교수(서울신대)
박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부조리한 고통에 대해서 언급했다. 특히 지난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언급한 그는 “세월호 참사가 남긴 상처는 ‘국가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며 “국민을 걱정하고 보호해야 할 국가를 도리어 국민이 걱정해야 하는 시점에서 국가의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인간의 삶이란 ‘원래 그런 것’. 즉, 복불복이니 재수가 없어 그럴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원래 부조리하다는 운명론적 색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부조리, 이러한 고통, 이러한 악에 대해 무덤덤하게 용인하거나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저 ‘신의 뜻’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인가?

박 교수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와 더불어 자리매김하고 있는 부조리한 인간의 삶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삶의 부조리를 극복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인간의 유한성 아래 놓여 있는 인간의 삶을 보다 구조적으로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악인데, 우리는 이를 ‘사회적 악’, ‘구조적 악’이라고 부른다”며 “예컨대 세월호 사건 등과 같은 아픔은 부조리한 인간실존의 문제이면서도 부정과 부패로 점철된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일어난 악으로써 모든 인간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마땅히 떨치고 일어나야 하는 사건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재앙과 참사, 그리고 우리 시대의 아픔은 기독교인에게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며 “오래 전부터 던졌던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질문인 악의 본질과 기원에 대한 물음 뿐 아니라 보다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질문으로 기독교인은 고통 중에 있는 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의 아픔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질문에 눈을 뜨게 만든다”고 피력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악에 대해 답변해주는 ‘신정론’에서 언급되는 여러 입장들을 설명한 그는 십자가 사건을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이해한 물트만의 주장을 근거로 “하나님이 아들의 죽음 안에서 죽음을 경험하신다는 생각은 온 인류의 부조리한 고난 안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만든다”며 “하나님은 고난의 반대편에 계신 것이 아니라 고난의 상황 안에 계신다”고 주장했다.

사실 물트만은 “성부 하나님은 죽을 수 없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지 성부 하나님은 아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을 목도한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보다 더 깊은 의미에서 죽음의 고통을 맛보며 죽음을 경험하신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사랑이신 하나님은 세상의 아픔에 참여하신다”며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옴짝달짝 못하게 결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세상을 끝까지 사랑하기로 결심하신 분”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결정 안에서 세상은 하나님과 상호적 관계 속에 놓여 있다. 하나님은 세상에 자율성을 부여하시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의 자율성을 극대화하여 심지어 창조주에게 대립각을 세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세상은 버리지 않으시고 품으신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하고 결정적으로 드러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예정이다.

박 교수는 “하나님은 세상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스스로 아파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신에게 대항한 세상에 대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심으로써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신다”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 안에서 이 세상의 부조리한 폭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모든 자들의 아픔과 슬픔에 동참하신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임은 신앙의 희망한다”고 역설했다.

# 우리 시대의 아픔, 그리고 기독교 영성의 방향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영성은 무엇일까? 박 교수는 침묵과 경청의 영성, 기억과 공감의 영성, 저항과 실천의 영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학자는 분명히 말해야 하고, 설교자는 강단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며 “하지만 고통당하는 자들 앞에서 신학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깊은 고통의 신음을 앓고 있는 자는 누군가로부터 듣기보다는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자신의 신음소리를 들어주길 바랄 뿐”이라며 침묵과 경청의 영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욥의 고난과 그에 대한 친구들의 답변 속에서 배가 되는 고통을 경험한 욥의 이야기를 근거로 고통당하는 자 앞에서 침묵하는 것, 그들의 말이 허공을 떠돌지 않도록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박 교수는 “여기서의 침묵은 고통당하는 자의 신음을 침묵으로 돌리거나 고통당하는 자의 부르짖음에 대해 무덤덤하게 묵묵부답으로 응대하는 과묵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침묵의 영성은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수고와 회개를 동반한다. 동시에 자신이 내뱉은 말로 인해 더 깊이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던 고통의 당사자들 앞에서의 회개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기억과 공감의 영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악은 자신의 흔적을 재빨리 지워 망각하게 함으로써 다시금 악에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기억의 영성은 악의 이러한 교묘한 술책을 간파하고 자신을 증인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악의 망각에 대항해 증인으로 자신을 세우는 일은 분명 위험한 일이지만 예수의 수난전승도 바로 이러한 ‘기억’의 증인들로 인해 전해질 수 있었다”며 “예수의 삶과 그의 죽음에 대한 ‘위험한 기억’은 결국 예수의 부활로 이어졌고, 오늘날 곳곳에서 예수의 생명으로 악에 저항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가 되고 있다”고 피력했다.

또한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복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슬픔의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눈물 흘리는 자들과 본질적으로 우리가 ‘하나’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라며 “여기서 기억의 영성은 곧 공감의 영성으로 이어진다. 아파하는 자를 향한 기억은 아파하는 자와의 공감에 이르고, 보다 인간적인 세상을 향한 도약을 가능케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 ‘가만히 있으라’, ‘그만 울어라’, ‘그만 슬퍼하라’, ‘희생자들이 원하는 가족의 모습으로 돌아가라’ 등 위로가 아닌 폭력의 말을 하게 만드는 악에 대해서도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경은 “선으로 악을 이겨라”(롬 12:21)는 말씀처럼 악에 직면해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대항해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저항은 그만큼 행동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며, 그 아픔을 기억하는 것에서 악을 폭로하고 악에 대항하는 저항의 영성에 주어진 분명한 지침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이다.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뜻하지 않는다. 거대하고 교묘한 악에 맞서 분명하고 단호하게 행동해야 함을 뜻할 뿐 아니라 악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지 않도록 선에 깊이 뿌리박는 철저함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침묵과 경청의 영성, 기억과 공감의 영성, 저항과 실천의 영성은 예수의 영성으로 요약된다. 예수는 당대의 버림받은 이방의 땅 갈릴리에서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으로 버림받은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메시지를 선포했다. 그리고 고통당하는 자들이 부르짖는 소리, 탄식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버림받은 자들의 편이 되어줄 뿐 아니라 그들의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는 버림받은 무리들과 함께 했고, 그들과 함께 종교와 정치의 모순이 점철된 예루살렘으로 돌진했는데,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지만 비굴하지 않았고, 도망치지 않았고, 도리어 당당하게 앞장 서 걸어갔다”며 “끝내 십자가에서 버림받음을 통해 모든 버림받은 자들과 같이 됐고, 악의 잔인함을 폭로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예수의 시대나 우리 시대나 여전히 부조리한 시대적 아픔이 존재한다”며 “우리는 형이상학적인 사변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해명하거나 고통당하는 자의 잘못들을 들춰내 그들을 질책하려는 태도를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모든 질문의 방향은 이제 자기 자신에게도 향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서 ‘내가 그들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며 “예수는 우리에게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묻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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