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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흐름에 비춰 본 한국교회 미래 본문

교회와 사회

한국사회의 흐름에 비춰 본 한국교회 미래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7:49

임성빈 교수 / 장신대, 기독교와 문화

데오스앤로고스  |  thelogos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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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24  17: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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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김경원 목사, 이하 한목협)가 지난 6월 23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해방ㆍ분단70년, 선교 130년 이후, 한국 교회의 미래를 모색한다’를 주제로 개최한 제17회 전국수련회를 개최했다. 주최측의 원문 제공으로 이날 주제강연자로 참여해 발표했던 임성빈 교수(장신대)의 발표문을 일부 발췌해 싣는다. <편집자 주>

<한국사회의 흐름에 비춰 본 한국 교회 미래:후기 세속화시대의 공공신학적 관점에서>
임성빈 교수(장신대, 기독교와 문화)


1. 위기의 원인과 의미에 대한 기독교윤리학적 반성

1) 신앙/신학의 위기

   
▲ 임성빈 교수(장신대) / theosnlogos DB
한국 교회의 신앙왜곡과 불신앙, 그로 인한 한국 교회의 위기는 사회적 영향력을 저하시킴으로써 결국 한국사회에 닥친 비극을 예방하지 못하였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청지기이다. 그러므로 청지기로서의 일차적 사명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다(요 10:10).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세상의 어떤 것보다 우선시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신앙인이라 함은 바로 이러한 생명 중심의 세계관과 가치를 믿고,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뜻한다. 신앙이 좋다는 것, 신앙이 성숙하여 간다는 것은 하나님 주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의 영역이 더욱 넓어지고, 그 실천이 더욱 구체화 되어 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에 저항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시대 기독교 윤리의 우선적 과제는 물신 숭배에 맞서는 일이다. 물신숭배는 오늘의 비극적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다. 생명보다는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기에 원칙보다는 변칙을, 준법보다는 편법을 사용했다. 돈을 위해서 생명과 안전을 거래했다. 우리는 이 세계가 얼마나 물신숭배로 만연되어 있는가를 밝혀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보다는 물질의 힘을 크게 여겼던 문화로부터 돌아서야 한다. 즉 회개를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예수 생명 중심의 가치를 뿌리로 삼고, 하나님의 의로 올곧은 삶을 살아내어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열매 맺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신앙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인자가 다시 올 때 믿음을 다시 보겠느냐”(눅 18:8) 하신 경고의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을 향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 제대로 된 믿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었다면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발생케 한 가치관과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어내도록 허용하였을까를 반성케 된다. 전 인구의 1/5에 달하는 기독신앙인들이 있는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가 물신숭배와 향락주의적 소비문화로 가득하다면 과연 우리가 신앙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직면한 한국 교회 위기의 근본원인은 한국 교회의 현실과 문화가 복음적 정체성에 확고한 토대를 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십자가-부활 신학의 부재로 인하여 복음의 핵심적 담론이 실천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히려 기복적 번영신학이 범람하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값비싼 은혜 대신 천민자본주의와 야합한 값싼 은혜의 오염이 주된 요인이다. 이러한 신앙의 왜곡과 불신앙이 곧 오늘 한국 교회 위기의 핵심에 자리한다.

2) 맥락(context) 해석의 위기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력의 부재도 오늘의 위기의 주된 원인이다. 21세기 문화가 세계화, 포스트모더니즘, 소비문화, 정보화라는 사회 문화적 바탕위에 서 있는 반면, 오늘날 교회는 사회 문화 변동에 대한 문화 지체(cultural lagging)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회맥락 이해의 부재 및 문화지체현상은 대사회적 소통의 문제를 야기했을 뿐 아니라, 교회가 교회의 시대적 소임을 오판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 교회는 다음과 같은 사회문화의 변동현실 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함으로써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1) 교육: 사회발전과 함께 피교육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사람들은 피동적으로 이끌림을 받는 것보다는 능동적인 참여를 열망한다. 교육의 정도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동역자(collaborators)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은 신뢰도를 높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경험과 지혜와 통찰을 모으고 다듬는 데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교역자와 소수의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예배와 교회의 각종 기획과 행사들은 다양한 능력을 구비한 회중 구성원들의 참여를 충분히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현실은 결국 신앙공동체의 역량을 떨어뜨리며 따라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도 치명적 한계를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2) 정보: 지식정보화 시대의 성숙과 함께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더욱 다른 사람들과의 의존관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와 지도자는 더욱 다양한 관계망과 소통기술들을 필요로 한다. 동시에 너무도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적절하게 취사선택하고 또한 가공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어야 함을 뜻한다. 오늘 한국 교회는 이러한 지식정보화시대의 도래에 적절하게 응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는 힘든 현실이다.

(3) 여성: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과 전문직 여성의 놀랄만한 증가는 오늘날 신앙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비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여성들의 이탈이 영국 교회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는 연구를 매우 주의 깊게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전문직 여성들이 함께 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여성 리더십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다. 남성적인 리더십이 결과 중심적인 경향성을 보이는 데에 비하여 여성적인 리더십은 과정 중심적이다.

이러한 여성 리더십의 특징은 전통적인 리더십에 비하여 오늘날 지향하여야 할 목회리더십이 더욱 통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말해 준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가 여성안수를 거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안수를 받은 여성 지도자를 배출한 교회조차 그에 걸맞는 지도력의 자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교회구성원들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여성 교인들에게 가부장적 문화에서 행해오던 일들만 고집하는 것이 현실이다.

(4) 민주화: 현 시대 문화의 특징은 모두가 집단의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결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교육의 강화와 정보의 홍수와 함께 더욱 강화되고 있다. 여전히 전통적인 위계적 질서에 익숙한 교회는 변화하는 사회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게토(ghetto)화 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다른 한 편으로 민주화라는 미명하에 복음의 정체성과 진리의 불변성을 타협하는 선동정치(demagogue)의 풍조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교회는 민주화라는 사회문화 흐름을 긍정적으로 수용함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오히려 전통적인 위계적 권위에 대한 급격한 도전으로 여기며 혼란 상황을 도출하는 경우도 많다고 볼 수 있다.

(5) 조직의 복합화와 파편화되는 충성심: 세계화와 정보화의 가속화에 따라 많은 조직들이 점점 복잡화, 대형화되고 있다. 작은 조직들과 기업들도 심화되는 경쟁상황에 놓여 있다. 정태적이고 단순하던 시대에서 날로 복잡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이러한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지식을 모두 갖추기는 어렵다. 이에 교회는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고 차별화할 과제를 가진다.

21세기 들어 정보화의 심화에 따른 새로운 기술을 따라가야 하고 가속화되는 세계화가 동반하는 심화된 경쟁 상황에서 사람들은 전례 없이 많은 기회와 함께 도전과 스트레스도 크게 받고 있다. 그들은 모바일(mobile)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서로 연계되어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기 원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성원 각자들에게 구체적인 의미와 유익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 주고,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섬김의 리더십을 요청받게 된다. 그러나 교회성장론 중심의 교회문화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충분한 존중을 기울이지 못함으로써 결국 오늘날 많은 교회는 예전만큼의 응집력과 헌신도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3) 행위자(agents) 동원과 자원(resources) 활용의 위기

한국 교회는 어떤 시민 단체와 기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교회 내의 인적, 물적 자원을 통전적으로 활용할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신학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만인 제사장직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교직자 중심주의와 일부 중직자 중심의 개교회주의가 고착화 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신앙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큰 꿈을 쉽게 이야기하면서도 공동체 안에서 협력과 하나 됨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내부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수습하지 않고서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4) 연대와 소통의 위기

오늘의 위기는 사회변화를 선도할 만큼의 실력을 두텁게 쌓지 못한 신앙인들의 얄팍함에도 중요한 원인이 있다. 실제로 “사회변화는 문화를 생산하는 중심부에 위치한 기구들 안에서 공동의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엘리트들의 초밀한 연결망을 통한, 핵심 심층부로부터의 변혁으로부터 시작되곤 한다.” 주변에서 핵심으로 이르는 변혁도 필요하지만 사회변혁은 문화의 핵심부에 대한 설득과 연대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변혁을 추동할 만한 전문적인 능력과 사회적 연대가 빈약한 상태로는 사회적 영향력 발휘, 즉 사회변혁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특별히 인문사회학의 부흥시대를 맞이하여 한국기독교는 인문교양의 능력을 고양하고, 일반은총의 영역에 대한 지식을 갖춤으로써 소통과 연대의 능력을 갖춤에 성공적이지 못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통과 연대는 사회에 대한 지식을 요청하지만 그보다 앞서 전제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확립하는 일이다. 예컨대 기독교회는 권력(power)에 대한 잘못된 사회이론의 무비판적 수용을 경계하여야 한다. 예수께서 이방인의 관행이라고 하였던 정복과 지배로 상징되는 콘스탄틴 식의 권력관을 수용한 적지 않은 신앙인들은 정치적인 권력 게임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예컨대 신앙적 배경과 동기를 가지고 정치에 참여한 이들을 당선시키고, 특정한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정책을 입안하면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앙인들은 세상적인 힘과 정치적 구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결국 세상을 바꾸고자 정치에 참여한 신앙인들이 바로 그 세상을 닮아가 버린, 모순적인 현실을 낳은 것이다.

결국 확고하지 못한 기독교적 정체성, 즉 십자가와 부활의 신학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미숙하고 왜곡된 신앙, 기복적 성향은 뿌리가 깊으나 십자가와 섬김에는 얄팍한 신앙과 건전한 신학의 부족,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 권력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왜곡으로 인한 사회적 과제 선정의 미숙과 상대적으로 우수한 인재와 풍부한 재원의 활용 부족, 결과적인 연대와 소통의 부족함이 오늘 한국 교회가 위기를 자초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볼 때 우리가 교회의 기능적 차원의 분석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교회만큼 사회봉사를 열심히 하고 있는 종교들과 기관이 많지 않다. 사회적 공헌이 적지 않다는 역사적 평가도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은 교회에 대하여 유난히 비판적이다. 정치적인 권력과 유착된 집단으로 교회가 매도당하기도 한다. 대중 미디어들은 여느 종교보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나 시민사회와의 소통능력을 갖추지 못한 소수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과 기관의 대표자들에 의해 한국 교회의 전체 실상이 왜곡되고 있다. 이는 매우 치명적이다. 이러한 원활한 소통의 부재는 결국 주류 여론들의 잘못된 시각을 양산한다. 언론과 지성인 집단, 청년들 사이에서 기독교에 대한 냉소적 비판 기류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는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저하로 이어져 반선교적 문화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 <사진제공:한목협>

2. 공공신학적 관점에서의 한국 교회 과제

그러나 오늘의 위기(危機)는 문자 그대로 위험한 기회를 뜻하기도 한다. 즉 교회와 신앙의 왜곡과 부족한 신앙과 화석화된 신앙은 복음적 신앙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회복의 기회이자 하나님의 부르심이기도 하다. 또한 교회와 신앙의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에 대한 함몰로 인한 위기는 신앙의 사사화(privatization) 극복을 통한 신앙의 공공성 회복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나라 참여를 위한 만인제사장적 청지기직 회복으로의 부르심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공공신학적 관점에서 교회의 교회됨을 모색할 수 있다.

1) 신학적 토대강화-신앙의 공공성 및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의 확립

유례없는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의 복음적 정체성 확립을 위한 신학적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신학적 토대 강화는 우리 신앙을 성경적 토대 위에 확고히 서도록 지속적으로 도전하려는 노력을 뜻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오직 말씀 위에 우리의 신앙과 삶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충성을 뜻하며,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사적인 영역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야할 공적인 영역까지 끌고 갈 수 있도록, 복음적 신앙과 신앙의 공공성을 함께 담보하는 공공신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관심과 실천적인 노력이 신학자와 신학교, 목회자들뿐 아니라 모든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2) 교회의 인적/물적 자원의 전략적 활용을 위한 공공신학적 토대 강화와 실천 강화

한국 교회는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의 이해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인문-사회-자연과학과의 대화를 강화하여 나가야 한다. 이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속한 일반 은총의 영역이다. 이와 함께 기독신앙인으로서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영역에서 활약하는 학자들의 제사장적 청지기 역할을 도전하고 지원하며, 학제간의 대화와 연구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교회가 활용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의 전략적 활용은, 하나님 나라 중심의 교회관과 선교관의 확립, 만인제사장직과 청지기 직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이해를 중심으로 하는 신학적 토대 위에서 더욱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런 하나님 나라 중심 신학의 바탕위에서 21세기 사회문화의 특징인 네트워킹을 겸손한 태도로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역교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실천을 공유하는 교회 및 기관들과 에큐메니컬 연대를 이어가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우수한 자원들을 활용해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3)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소통과 연대

교회는 시민사회를 협력자로 인식해 이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며 선교친화적인 사회 문화 형성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민사회는 여론 선도 집단인 동시에, 탁월한 전문가와 실천가들로 구성된 단체다. 그리고 시민운동단체 안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의 상당수는 신앙적인 배경 하에 나름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이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다양한 창구 형성에 힘써야 한다. 다양한 영역에서 특성화된 전문성을 가진 시민단체와 구성원들을 매개하는 허브 역할을 하면서 보다 생산적이고 구체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독교적 배경을 지니고 시민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관들, 예컨대 기독경영연구원, 한반도평화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등의 전문연구기관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의 시민운동기관, 한국기독교언론포럼 등의 언론 전문기관들과의 긴밀한 연대는 더 중요하다.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시민사회 및 언론, 문화 단체와의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4) 목회적 과제

4-1)포스트모던 문화와의 만남 이후의 강조점 변화

(1) 관계성에 대한 강조


포스트 모던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들은 기존의 조직 교회를 영적 인도자로 보지 않는다. 예컨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로부터 영적 안내를 받기 보다는 영성에 관한 도서에 의존하는 이들이 많다. 반면 영적인 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중에 교회를 찾는 사람은 여섯 명중 한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 중 91%는 적어도 한 명의 기독신앙인들과 친밀한 관계이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매력적인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초청하기보다는 진정한 영향력을 가진 기독신앙인들을 양육하여 파송하는 전략이 더욱 필요하지 않겠는가? 제도화된 조직교회를 찾는 17%의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독신앙을 가진 친구들이 있는 91%의 사람들에게 접근함이 절실한 전략이 아닐까?

(2) 진정성과 경험에 대한 강조

한때는 탁월함이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이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관심은 진정성, 즉 실제의 삶에서 체험되는 진정성에 있다. 미디어에서도 체험적인 프로그램 들 즉 리얼러티 쇼가 대세인 이유이기도 하다.
요사이 극성을 부리는 이단의 발흥은 나름의 영적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영역에서만 목격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 영역에 있어서 익스트림 스포츠의 부상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기독교를 도서관으로부터 거리로 이끌어 내야 한다. 한때 어떤 교회에서는 영적 경험을 추구하려는 것을 정죄한 적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주의에 침잠된 영향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신비성에 대한 강조

오늘날 정치와 종교는 사회적 조소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기업과 교육, 법조계와 의료계 모두가 의심의 대상이다. 이것이 권위를 억압으로 간주하는 포스트 모던적 문화현상이다. 사실 포스트모던은 해결책에 연연하지 않는다. 신비감이 해답보다는 매력적이다. 목적지 보다는 여정이라는 개념이 더욱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개신교회는 신비성을 상실함이 가장 치명적 약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신비’가 사도 바울이 교회생활을 묘사할 때 가장 선호했던 단어 중 하나였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4-2) 교회론적 전환

(1) 매력적인 교회보다는 선교적 교회로의 전환


매력적 교회란 교회를 중심으로 사람들과 자원들이 구심적 성향을 가지는 교회를 말한다. 반면에 선교적 교회란 교회 밖으로 사람들과 자원들이 투입되는 원심적 성향을 가지는 교회를 말한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앉아서 기다리는 곳이 아니다. 그보다는 보내는 곳, 즉 사도적 전승을 가진 곳이다.

(2) 고비용 구조로부터의 전환

때로 우리는 교회구성원들이 더욱 능력을 갖추게 되면 자연스럽게 교회는 더욱 성장의 동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 능력과 아름다움을 갖춘 이들이 하나님의 사역에도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제는 오늘의 문화가 우리에게 영향을 준 결과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는 거리가 먼 전제가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들보다는 약한 자들 안에서 자신을 나타낸다고 하신다.

유기적 교회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조직적이며, 구도자에 민감한 교회거나 목적을 추구하는 교회가 아니다. 그보다 유기적 교회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뜻한다. 그리스도만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심지어 교회가 하는 사역들이나 설교자나 찬양이 교회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실 아직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영적인 관심, 즉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

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것은 매력적인 교회가 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요구된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대단히 많다. 매력적인 교회로 보이기 위하여 수많은 비용을 들여 연속된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은 참으로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 엄청난 예산은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교회 내부의 우리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매력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물과 예산과 큰 행사기획 등은 결국 교회를 개척하는 데에 결정적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목회를 계속하기에는 우리의 자원이 고갈되어 간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과거와 비교하여 오늘의 상황은 대형교회가 더 이상 늘어나는 추세가 아니다. 물론 상당한 수의 대형교회는 여전히 활발한 목회사역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교인들의 숫자는 오히려 정체내지는 감소하는 현상이다.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회문화와 가치가 전반적으로 더욱 하나님 나라의 그것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이다.

오늘날의 교회, 특별히 대형교회들은 과연 교회를 매력적으로 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들을 신자다운 신자되게 함에 더욱 힘을 쏟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물론 교회가 매력적이 된다는 것은 신자들을 신자답게 함에 목적을 두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교회 조직 자체를 유지하는 데에 너무 많은 힘을 쏟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사실 교회는 신앙인다운 이들, 즉 제자들에 의하여 출발된 것이다. 교회는 매우 중요하지만 구조나 건물이나 행사로서의 교회보다는 사람으로서의 교회의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교인들을 진정으로 구비시키는 교회로의 전환

건강한 교회의 가장 큰 장점이자 목표는 평범한 신앙인들을 하나님의 나라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비케 함에 있다. 이것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훈련된 전임 사역자들 중심의 사역형태와는 구별되는 목회유형이다. 우리의 일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소명의 장이다. 건강한 교회 사역자들의 우선적 임무는 다양한 교회 사역과 행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을 구비케 함에 있다. (마28:20) 우리 교회가 담당할 다양한 사역지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그런 교회가 많지 않은 이유는 교회가 교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교인들을 즐겁게 하려고만 애쓰고 있는 오늘의 교회 행사와 사역은 아닐까?

교인들을 만족시킴으로써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교회의 문제점은 결국 새로운 신앙인들이 장성한 신앙에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국 교회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건강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1) 새로운 신앙인들은 복음을 전달할 접촉 기회에서 제외된다. 예전에 신앙을 영접하기 전에 사귀었던 이들과 급속하게 멀어짐으로써 오히려 복음 전파의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2) 교회 역시 일터와의 접촉점과 상관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3) 결국 사회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론 : 공공신학적 관점에서 한국 교회의 우선 과제

한국 교회의 개혁을 말할 때 많이 이야기 되는 것이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다. 물론 교회가 사회변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변혁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세상에 알리기에 앞서 치열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상의 작은 일들에 먼저 충성하고, 사회와 세상에 대한 일관된 자세를 견지하며 교회가 할 수 있는 실천을 꾸준하게 지속하여야 한다.

물론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위해 창조되었다. 그러나 만약 교회가 너무 쉽게 ‘세상을 바꾸겠다’는 선언만 반복한다면, 자신을 세상의 유혹과 공격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다양한 통계와 평가를 통하여 살펴본 대로 오늘 한국 교회의 현실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교회다움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신앙인을 신앙인답게 양육하는 일에 충실함으로써 사회 변혁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의미 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은 교회구성원인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이 신앙인다워짐을 뜻한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워 나간다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주권, 청지기, 만인 제사장 신앙 등이 삶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회적 공동선(common good)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공공선이라는 사회변혁의 목표에 동참하게 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분리될 수 없듯이 교회의 교회다움과 사회적 역할 역시 분리될 수 없음은 매우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사회적 공동선을 위한 건설적 역할은 교회의 교회다움으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교회의 교회다움이란 무엇인가? 다양한 집단이 공존하는 한국사회 안에서 교회가 교회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즉 교회만의 정체성을 보존하되 동시에 사회적 공공선을 위해 다른 사회 기관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평신도 사역의 활성화와 시민 사회 안에서 교회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자각하게 된다. 소수의 목회자를 포함한 교회 지도층 인사들의 관점만으로는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교회가 할 수 있는 영역과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한국사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바로 교회가 한국사회 안에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다. 이것은 목회자들만이 포착할 수 있는 과제와 영역이 아니다.

교회의 교회다움은 신앙인의 신앙인다움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신앙인다움이란 세상 안에서 신앙인으로서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고 있는가에 따라 판명된다. 개인의 신앙을 사적인 영역에만 적용시키지 않고 공적인 자리에서 책임 있는 실천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회의 좋은 교인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적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도모하는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전제한 상태에서 신앙인을 신앙인답게 하기 위해 교회가 갖추어야 할 교회다움을 살펴야 할 것이다.

신앙인을 신앙인 되게,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교회가 안팎으로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직관하고,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품고, 오늘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신 소임, 즉 “신앙의 공공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교회”를 주장하는 바이다. 바로 이것이 21세기 초반 한국 교회의 과제이자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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