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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동성애는 죄인가, 병인가, 대안적 생활스타일인가? 본문

기독교 윤리

[기고]동성애는 죄인가, 병인가, 대안적 생활스타일인가?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8:05

상담심리학자가 본 동성매력장애 / 정동섭 박사(가족관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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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07  11: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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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는 이미 영화 등과 같은 문화의 형태로 우리 사회 깊숙히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상담심리학자가 본 동성매력장애: 동성애는 죄인가, 병인가, 대안적 생활스타일인가?
정동섭(가족관계연구소장: Ph.D.)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끌리겠다고 결정을 내린 적은 전혀 없다.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분명 다른 모든 사람들이 건달이라고 여기는 그런 종류의 사람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 성적 충동이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완전히 무력하다고 느꼈다. 나는 항상 남자에 관한 판타지를 꿈꾸어 왔다........거의 매일 자위했고 때로는 하루에 한번 이상이었다. 매번 여자보다는 남자에 관한 생각을 했다. 자위하는 동안 여자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이 일을 홀로 처리했다. 누구에게도 내 ‘성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거부당할까봐 무척 두려웠다. 7학년 때 모든 아이들이 나를 ‘동성연애자’라거나 ‘호모’라고 불렀고 그 때의 그 거부감을 기억한다. 당시 나에 관해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들이 진짜로 안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그리고 대학 시절 대부분 나는 비밀-내 고통-을 간직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다른 남자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동성애자가 아니었고 나는 비밀을 지켜야 했다. 우리는 3년 동안 룸메이트였지만 그는 졸업 직전까지 나에 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끔찍한 아픔은 별개로 하더라도, 이 상황에서 힘들었던 것은 내가 게이라는 성적 취향 이상의 인식이었다. 나는 내 존재가 저 깊은 곳에서부터 잘못 되었다고 느꼈던 것이다.”

“7살부터 기독교인이었던 나는 하나님께 내 동성애 성향을 없애주시기를 수없이 간구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성서는 감정적으로 성적으로 남자에게 끌리는 내 성향이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고 그 사실은 감수해내기 괴로웠다. 게이들의 장소로 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였다. 게이 책방에 갔고 게이 전용 전화선으로 전화를 했다. 이런 곳들은 만족시켜주겠다는, 충족시켜주겠다는 약속으로 충만했다. 나는 이중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캠퍼스에서는 성경공부를 이끌고 있었고 열심히 캠퍼스 봉사에 참여했으나 캠퍼스 밖의 나는 시내에 위치한 그 책방으로 가곤 했다. 그곳을 떠날 때는 항상 죄의식을 느꼈고 더럽다고 여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음번에 안간 것은 아니다. 충족할 수 있다는 기대는 정말로 강렬했다!”

“나는 신학교에서 교회음악을 전공하였다. 동료학생과 하숙집에서 함께 자고 온 적이 있는데 동성애적인 접촉을 한 것이 학교에 보고가 되어, 나는 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두각을 나타냈는데 2학년을 다니다가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말았다. 동성애 성향이 없는 친구에게 동성애접근을 했다가 발각되어 학교에서 쫓겨나고 만 것이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 멋진 사람들을 내 삶에 보내주셨고 그들은 내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이 친구들 중 일부는 나처럼 동성애 유혹으로 갈등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가 이 동성애라는 죄악에 대해 이겨내도록 우리에게 힘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내 갈등을 주의 깊게 듣고 가엾게 여긴 몇몇 사람들이 이 싸움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동성애 행위를 하고 싶어 하는 그 유혹이 언제 사라졌는지 또는 사라진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 자신이 무력하다는 느낌에 짓눌리지 않으며 이 유혹을 이겨낼 힘이 없다고 여기지 않는다. 내 정체성은 유혹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다.”

   
▲ 정동섭 박사(가족관계연구소 소장)
동성애자들의 고백이다. 나는 1983년 미국대사관 직원으로 필라델피아를 여행하다가 기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옆 자리에 동성애자라고 스스를 밝힌 청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것이 동성매력장애자와의 충격적인 첫 대면이었다. 그후 1986년 나는 미국유학 중에 내가 사랑하던 침례신학대학교 음악과 학생이 동생애행각이 발각되어 퇴학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로 지금까지 나는 그 학생이 만난 적이 없다.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가 가끔 궁금해진다. 2000년쯤 내가 아직 침신대 상담심리학 교수로 있을 때, 40대의 가장이 어떤 지인의 소개로 상담을 했는데, 그는 두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이중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동성애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그 내담자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몇 달 전 미국에 계신 여자 권사님이 자기 아들이 동성애인데 부모가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자문을 구하는 장거리 전화를 해온 적이 있었다.

2015년 여름 미국 대법원에서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사건이 터졌고, 국내에서는 동성애자들의 퀴어축제가 벌어져 기독교계가 대규모 반대시위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오늘날 동성애(동성애착장애)보다 더 많은 정서적 반응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도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동성애를 정죄하고 희롱하는 쪽에 있고, 다른 이들은 동성애를 대안적 생활양식일 뿐이라고 동성애를 옹호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거절과 오해받는 것이 두려워서 동성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어떤 이는 스스로에게도) 시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기회에 나는 가정사역자와 상담심리학자의 입장에서 동성애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동성애란 무엇인가? 동성애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는 동성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나는 사회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질문에 답을 차아보려고 한다. 나의 글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영성과 윤리도덕적 판단, 그리고 심리학자로서의 사고가 반영되어 있음을 밝혀둔다.

<성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적 존재로 창조하셨고 섹스는 좋은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고 성기로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육체를 가지게끔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성적 존재인 인간에 대해 “매우 좋다”고 말씀하셨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지시하셨다. 그 지시는 분명 벌거벗음과 성교를 포함하고 있었다.

인간의 성은 우리의 기본적 정체감의 일부다. 우리는 남자 아니면 여자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창 1:26-27).

성은 삶의 모든 부분에 스며들어 있으며 인간관계의 부드러운 느낌으로부터 오르가즘을 자극하고 감각적인 사랑을 하는 일까지 그 범주가 다양하다. 성욕은 친밀함을 향한 충동이며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는 깊은 개인적 관계의 표현이다(Lewis Smedes,1976). 성기 결합은 행복감과 황홀경, 그리고 천국의 전 단계가 될 수 있는 강력한 결합의 경험이다(Gary Collins, 2008).

동성간의 사랑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동성애 자체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헬라철학자들도 동성애에 참여한 기록이 있고, 히브리인들에게 동성애를 정죄하는 가르침이 있는 것을 보면 구약시대에도 동성애가 있었다. 로마제국에도 이런 행위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를 이교도의 죄 중에 열거하였다.

성별 정체감(gender identity)은 일차적으로 영아기와 유아기에 형성된다. 그리고 이 정체감은 우리가 흔히 생리적으로 결정된 성적 정체감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생리적으로 우리의 유전자와 호로몬은 우리의 외부적 성적 정체감, 즉 우리 몸의 모습을 결정한다. 반면에 우리의 초기 인생경험과 같은 사회적 및 심리적 요인들은 우리의 성별 정체감, 즉 우리의 성적 자기에 대한 내면적 그림을 결정한다.

우리의 성적 정체(sexual identity)는 가끔 성별 정체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외적으로 보이는 것과 내면적으로 다르게 느끼며 자신의 외모를 바꾸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이성의 옷을 즐겨 입는 복장도착자(transvestites) 또는 호르몬 주사나 수술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바꾸기 원하는 성전환자들(transsexuals: transgender)이 있다.

우리 주변 특히 가족 안에서 동성매력장애가 드러나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 현상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우리 아들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임을 알지만 완전히 반항하고 있어요.”
“목사나 친구들이 우리와 우리 딸을 정죄할까봐 알리리가 두려워요.”
“교회에서 늘 상 듣는 이야기는 동성애자에 대한 부정적인 것들 뿐이에요.”

동성애란 무엇인가?

인간의 성적 존재로서의 전인적인 차원을 가리킬 때는 성성(性性 또는 성애, sexualit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생리적 성을 말할 때는 섹스’(성: sex), 개인이 태어난 이후에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인 환경에 의하여 학습되어진 후천적인 성을 말할 때는 성별(性別: gender)라는 말을 사용한다. ‘성적 경향’(sexual orientation, 性的 傾向 또는 지향)이라는 용어는 한 개인이 누구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가 하는 방향성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즉 성적 경향이란 남성이나 여성, 혹은 남성과 여성 양쪽에게 로맨틱한 감정이나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지속적인 양식을 뜻한다.

넓게 정의해, 동성애는 어느 한 사람의 성에 대해 관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이다. 비록 동성애는 성적 사고, 느낌, 판타지, 그리고 동일 성 상대자에게 공공연한 성적 행동을 하는 것을 포함하지만, 이 표현은 일반적으로 사춘기전의 아이들, 호기심으로 같은 성을 가진 사람과 짧은 육욕적 경험을 가진 개개인(일반적으로 젊은이들), 감옥이나 같은 성만 있는 고립된 환경에서 반대 성이 없으므로 일시적으로 동성애를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같은 성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성적 매혹을 느끼는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 심리 연구가 마크 야하우스(Mark Yarhouse)는 이해와 상담으로 가는 데는 세 층의 접근 방식이 있다고 제시한다.

첫 번째 층은 동성에게 매혹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두 번째 층은 좀 더 적고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의 매혹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이 사람들은 동성애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들이 동성의 사람들에게 거의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동성 섹스 경험을 하면 성적으로 거의 충족될 것 같다고 느끼지만, 동성애 경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동성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다른 사람과 동성 성행위를 하는 일도 없다. 동성애 경향이 반드시 동성애적인 행위반응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세 번째 층은 게이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로 “나는 게이야.”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자기 확인은 이미 말한 다른 두 층의 사람들보다 성인 초기에 나타나는 경향이 더 잦다. 이 사람들은 자신을 게이 혹은 레즈비언으로 여기고 동성애 행동에 참여하는 듯 보인다. 동성애 행동이란 동성의 다른 사람과 성적으로 자극하는 행동을 하는데 최소한 가끔 참여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모든 수준, 혹은 층에는 (보통 게이라 불리는) 남성과 (보통 레즈비언이라 불리는) 여성이 있다. 이들은 연령, 직업, 그리고 사회경제적 수준을 구분하지 않으며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고 교회에서 적극적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반대 성에게 우선적으로 매력을 느끼거나 오직 반대 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처럼,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직업상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비록 일부는 섹스 파트너를 찾는 게이 바에서 혹은 그 밖에서 ‘항해’하지만(에이즈 위협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은 섹스라면 다른 성을 가진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결혼하거나 존경받으면서 산다. 비록 일부는 반대되는 믿음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지만 전형적인 동성애 방식이라던가 개인 타입이라는 것은 없다.

일부는 그들의 성적 선호도에 대해 개방적이지만 어떤 이들은 아무도 모르도록 감춘다. 많은 이들이 외롭고 불안하다고 느끼는 한편, 이 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거나 사회적으로 무능력하고 이성애인 사람들보다 더욱 외롭거나 영원히 ‘불행한 게이’라고는 추정할 수 없다. 사실 인간이란 존재는 동성애와 이성애,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고 조차 추정할 수 없다.

킨제이 연구자들은 7점이 최고인 범위를 제시하는데 여기서 0점은 오직 이성애만 추구하는 사람이고 3점은 중간, 6점은 오직 동성애적인 경향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킨제이의 방식 혹은 결론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포함해 그 뒤를 잇는 연구자들은 0점 혹은 6점인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킨제이 팀의 의견에 동의해왔다.

이후 동성애는 종종 무언가 죄스러운 것, 비정상적이며 왜곡되어 있고 불법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대부분의 이성애 사람들은 동성애를 무시했고(교회 구성원들이 포함된다), 정신과 의사들은 동성애를 성적 일탈, 혹은 진단 가능한 장애로 보았으며 동성애 경향을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비밀로- 감추었다.

상황이 언제 변하기 시작했는지, 그 시기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60년 전 섹스 연구가인 알프레드 킨제이가 동성애를 널리 알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몇 년 후, 정부의 지원을 받은 동성애 연구서가 영국을 뒤 흔들었고 오래잖아 동성애는 대서양 양쪽에서 정부와 언론 논쟁의 토픽이 되었다. 게이와 레즈비언은 긍정을 나타내고 그리고 더 부정적인 표현을 대체한, 적극적 행동주의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게이는 1950년대, 레즈비언은 1970년대) 사용되기 시작했다. 세계 인구의 10퍼센트가 동성애임을 보여주는 과학 자료가 있다는 사실은 널리 용인되고 있다. 1993년, 어느 과학 논문이 이 수치를 더욱 높여 레즈비언과 게이 남성은 ‘전 인구의 10에서 15퍼센트’를 구성한다고 언급했으나 킨제이 보고서의 연구에서조차 그렇게 높은 수치는 언급되지 않았다.

1948년도 책에서 킨제이와 동료들은 미국 인구의 4퍼센트가 동성애라고 평가했고 남성 인구의 37퍼센트가 적어도 한 번은 동성애인 행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백인 남성의 약 10퍼센트가 16살에서 55살 사이에 최소한 3년간 전적으로 동성애에 ‘다소’ 포함되었다고 덧붙였다. 후에 연구자들은 킨제이 보고서는 편향된 실례를 사용했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강간과 남색으로 수감된 성 범죄자들을 상대로 한 인터뷰를 근거로 일부 결론을 내렸다. 수많은 남성들이 전적인 동성애자임이 발견되었으나 이 남성들은 여성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수감되어 있었다. 이 연구의 편향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더욱 신뢰성 있는 연구들이 그 비율이 훨씬 낫다고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퍼센트라는 수치는 지속되어 왔다. 아마 전 인구의 2내지 3퍼센트가 동성애일 수는 있으나 일부 연구는 훨씬 더 적은 비율의 남성이 자신이 전적으로 동성애자라고 여기고 있다고 제시한다. 이 숫자들은 계속되고 있고 게이 권리 운동의 부상과 게이 권리 법안통과가 더 많은 사람들을 동성애로 이끌어 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여전히 일부 기독교인들은 동성애를 무시하려고 애쓰고 있을 것이다. 더욱 흔한 일은 많은 사람들이 동성 매혹을 경험한 사람들에 관해 둔감한 평을 하고 잘못된 정보를 만드는 일이다. 이들과 정 반대인 사람들은 기독교인 동성애를 합법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평생의 성적 경향으로 그리고 삶의 방식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다. 동성애에 관한 이들의 관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우리 사랑에 합당하도록 성적 경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고 예수님이 하신대로 기꺼이 사랑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여간 이 모든 논쟁의 와중에 많은 신자들이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동성애라는 말은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는가? 동성애가 부각되고 있는 사회환경은 기독교 성윤리의 발전에 엄청한 도전이 되고 있다. 동성애는 죄인가, 아니면 새로운 대안적 삶의 스타일인가? 동성애는 하나의 행동(behavior)인가, 하나의 경향(orientation)인가?

동성애를 동성매력장애(same sex attraction disorder)라고 부르기도 한다. 같은 동성에 매력을 느끼고 끌리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는 동성애자로 태어나는 것인가? 동성애는 눈동자의 색깔과 같이 유전되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가족구성이나 환경적 영향에 의해 생겨나는 것인가? 동성애는 하나의 병인가? 동성애는 병리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정상적인 성애의 한 변수에 불과한 것인가? 완전히 동성애적인 사람이 전적으로 이성애자가 될 수 있는가? 현대 정신의학은 이런 질문에 어떤 빛을 비춰주고 있는가?

동성애자는 그런 식으로 태어나는 것인가? 아직까지 어떤 과학적 증거도 이 결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쌍둥이 연구에서 유전적 요인이 어떤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암시적 증거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압도적인 증거는 초기의 부모나 또래 반응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 동성애의 발달에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분야의 임상적 연구 대부분은 동성애자들이 그렇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초기의 경험과 (많은 경우) 후기 생애경험의 결과로 그런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Armand Nicholi, 1993).

앞으로 동성애자들은 더 흔해질 것이다. 인구의 3-5%가 동성애자라고 한다. 통계적으로 말하자면 30명이 모여 있을 때 한 사람 정도는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동안에는 억압하고 숨기고 살았기 때문에 잘 안 보였는데, 이제는 너그러운 사회 분위기 때문에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심지어 우리의 가족 중에 생길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아는 미국에 사는 집사님의 아들이 동성애자로 밝혀져 큰 고통 중에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몰라 자문을 구해왔다. 앞으로 자녀나 손주들 중에 그런 경우가 생기면 우리들도 죽음을 생각하게 될 정도로 심각한 고민을 겪게 될 것이다.

2015년 여름 우리는 일주일 사이에 두 개의 큰 사건을 마주하게 되었다. 미국 버지니아연회에서 행한 동성애에 관한 투표가 찬성으로 결론이 났고, 연방대법원에서 5 대 4로 동성 결혼 합헌 결정이 난 것이다. 과거에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했던 것처럼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세상의 흐름에 따라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동성애를 어떻게 이해하고 우리 주변의 동성애자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

성경과 동성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은 이성애가 건전한 성생활이라고 의도하셨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이 사실은 남성과 여성의 성기의 모양으로도 추론할 수 있으며 아담과 이브가 함께 번성하라고 명령하신 창조 이야기로부터 주장할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여 이성애를 누리는 것이다. 성경은 동성애에 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있으며 오랜 기간의 동성애 경향과 오늘날 흔해진 동성 의무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언급은 신구약에 겨우 7번 언급되어 있고 매번 그 언급은 비교적 짧다. 이들 단락에서 동성애는 전혀 용납되지 않거나 묵인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죄악보다 더 나쁜 것으로 꼽히는 것도 아니다.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관점은 어떤 것인가? 간음이나 음행의 경우처럼, 구약과 신약은 분명히 동성애를 금하고 있다. 성경은 창조주가 성적 연합은 남녀간에 이뤄지기를 의도하셨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구절들의 문맥을 살펴보면, 동성애는 창세기에 기록된 성의 목적과 분명히 배치된다. 성은 번성하고 재생산하라는 명령과 함께 언급되고 있다. 성애에 대한 전반적인 의미를 말하면서, 성경은 동성애 행위를 구체적으로 금하는 말씀을 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 말씀은 모두 일곱 개다.

• 창세기 19:5 [소돔과 고모라]: "…우리가 그 남자들과 상관 좀 해야 하겠소."

• 레위기 18:22 [율법]: "너는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안 된다."

• 레위기 20:13 [율법]: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 사사기 19:22 [기브아]: "그 남자를 끌어내시오. 우리가 그 사람하고 관계를 좀 해야겠소."

• 로마서 1:26-27 [바울]: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자들은 남자와의 바른 관계를 바르지 못한 관계로 바꾸고, 또한 남자들도 이와 같이, 여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서로 욕정에 불탔으며,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잘못에 마땅한 대가를 스스로 받았습니다."

• 고린도전서 6:9-10 [바울]: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개역개정).

• 디모데전서 1:9-10 [바울]: "율법이 제정된 것은, 의로운 사람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자와 … 남색하는 자와…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훈에 배치되는 일 때문임을 우리는 압니다."

역사적 증거에 의하면, 과거에도 지금처럼 두 사람 사이에 합의된 동성애가 있었다. 바울 사도는 성적 방종과 성폭행만이 아니라 일대일의 합의된 동성애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끄러운 정욕에 내버려 두심으로 인해 일어난 왜곡 혹은 타락의 현상 중 하나라고, 바울은 정의한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또한 "예수님은 동성애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고 말한다. 겉으로는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결혼에 대해 예수님은 아주 분명하게 정의하셨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분에게 와서 모세의 율법 규정에 따라 이혼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이 계명을 써서 너희에게 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막 10:5-8)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예수님은 그 외에 다른 형태의 결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셨다. "예수께서 동성애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동성애에 대해 묵인하신 셈이다"라는 주장은 억지다. 반면, "예수께서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서 보셨으니 동성애를 부정하신 셈이다"라는 주장은 논리적인 유추다.

이와 같은 근거에서 많은 이들이 다음과 같이 결론 짓는다. 동성애는 죄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살은 죄라고 결론짓는다. 정신병적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 자신의 의지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 등 여러 경우가 있다. 자살한 사람들의 사정이 모두 다르듯, 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다. 동성애자들 중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바울 사도의 말대로 부끄러운 정욕에 빠져서 상대를 바꾸어 가며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타락한 동성애자들'이다. 이런 동성애는 정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동성애도 있다. 어릴 때부터 동성에 대한 끌림이 있어서 그로 인해 부단히 싸워 온 사람들의 경우다. 그것이 그 사람의 DNA에 심겨 있는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발생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있다.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든, 어느 사회든지 인구의 3-5% 정도가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거의 고쳐지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들을 '타고난 동성애자들'이라고 부른다.

'타고난 동성애자들'에게는 독신으로 살아가든지 아니면 동성의 파트너를 찾아 살든지, 두 가지의 대안밖에 없다. 스스로 결단하여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였던 헨리 나우웬은 여섯 살 때부터 자신에게 동성애적 경향이 있음을 알았고 평생토록 그 경향과 싸웠다. 그는 다른 동성애자들에게 자신처럼 '거룩한 독신'(holy celibacy)을 선택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받은 바 소명이 있어서 스스로 독신을 선택한 것은 칭찬할 수 있어도,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대개 '타락한 동성애자들'과 '타고난 동성애자들'을 구분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는 모두 같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 자주 "동성애의 실체를 고발한다"는 식의 글이 떠나니는데, 그것을 읽어 보면 대개 '타락한 동성애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읽으면 그들에 대한 혐오감과 거부감이 증폭된다. 그러한 시각으로 '타고난 동성애자들'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성에 끌리는 '타고난 동성애자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겠다. 고쳐지지 않는 동성애 경향과 싸워 온 그들의 '내면의 전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그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해 보시기 바란다. 어느 교우에게서 들은 말이다. 자신이 아는 동성애 친구에게서 동성애라는 한 가지 문제만을 제외하면 이성애자인 자신보다 훨씬 더 믿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람을 교리적으로만 단죄할 수 없듯이, '타고난 동성애자들'을 교리만으로 정죄하고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윤리학자 스탠리 그렌츠(Stanely Grenz, 1990)는 경향성으로서의 동성애는 정죄할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최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일정한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 동성애는 “불완전한 발달 상태와 충족되지 않은 욕구 상태에 있는 미숙한 자들”로서 정죄할 대상이 아니고, 다른 타락한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필요가 있는 대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성애는 병인가?

동성애는 하나의 병(illness)인가? 정신의학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가? 일단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에 대한 진단통계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 Manual of Mental Disorders)를 보면, 동성애가 하나의 장애, 질병으로 열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자아비(非)친화성 동성애” 항목 아래 열거되어 있음을 본다.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서, 편람은 동성애가 당사자가 자기의 동성애에 대해 불행하게 느낄 때에만 질병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혼돈스럽고 수수께끼같은 상황이 주어졌다. 만일 당신이 동성애자인데, 그런 식으로 사는 게 싫으면 당신은 병자이며, 당신이 동성애자인데 그런 삶을 즐긴다면, 당신은 건강하다는 것이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이것이 터무니 없는 허튼소리라고 생각한다. 편람의 개정판이 DSM-III에서 동성애라는 용어는 완전히 삭제되어 사라졌다.

1973년 12월 16일 전국게이전담반(National Gay Task Force)과 미국정신의학회(APA)는 공동으로 동성애는 더 이상 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자신의 동성애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만 병으로 간주한다는 것이었다. 수백명의 회원이 이 변화에 놀라움을 표현하였고, 수백명이 변화에 항의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이 문제는 모든 APA 회원들에게 투표에 붙여졌다. 총선거는 회원 58%가 참가한 가운데 작은 다수에 의해 패배하였다. 투표가 있기 전에, 게이전담반이 초안을 잡은 편지가 모든 회원에게 배달되었는데, 그 편지는 APA 회장에 출마한 세 명의 의사들이 서명하였다.

편지는 변화에 반대하는 회원은 동성애자들의 인권에 반대하는 셈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정신과의사들은 인권에 대해 강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회원은 변화를 지지하는 쪽으로 투표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결정이 많은 이들이 짐작하는 대로 어떤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정신과의사들은 병을 투표에 의해 없애버린다는 생각을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병을 투표로 없애버릴 수 있다면, 모든 병을 투표로 없애버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의사들은 또한 만일 당신이 동성애로 인해 불편해 한다면 병으로 보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면 건강한 것이라는 관념도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정신질환자 가운데 많은 이들은 자기의 병에 대해 병식이 없기 때문이다. 조울증적 정신증의 조증단계에 있는 사람은 매우 심한 정신증 증상이 있어도 자기 상태로 인해 들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의 니콜라이(Nicholi, 1993) 박사는 말한다. “나는 어떤 사람도 동성애가 정상이라고 믿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임상경험에 의하면, 어떤 동성애자도, 자신의 동성애를 수용하든 거절하든, 자기가 정상이라고 느끼거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 앞에 있을 때마다 식은 땀이 나는 남자나, 남자와 같은 침대안에 있을 때 통제못할 설사를 경험하는 여자는 자기의 상태에 무엇인가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일정 기간 동안 동성애자를 치료해본 적이 있는 의사라면 어느 누구도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p.349).

완전히 동성애자인 사람이 완전한 이성애자로 변화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바로 답할 수 있다. 변화는 심리치료와 다른 치료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학적 및 과학적 증거가 많이 축적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치료방법 중에는 종교적인 자조집단 운동(self-help group movements)이 있다. "한 번 동성애면 언제나 동성애일 수밖에 없다“(Once a homosexual, always a homosexual)는 말은 타당성이 없는 말로 밝혀지고 있다.

동성애의 원인

수많은 과학적 연구가 있으나 하나의 결론만이 분명해 보인다. 즉 동성애에는 분명히 밝혀진 단 하나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누구도 왜 어떤 사람이 동성애 경향을 갖게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동성애 원인을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진다. 심리적/환경적 요인은 동성애를 유발하는 과거 경험과 초기의 관계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생리적/유전적 요인은 동성애로 가는 경향을 구성하는 화학적, 호르몬, 혹은 다른 육체적 영향을 찾는다. 동성애가 유전인가? 환경적 학습의 결과인가? 양쪽 관점은 모두 연구가 뒷받침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 두 범주를 하나로 결합하는 사람들도 있고 세 번째로 영적인 원인이라는 광범위한 범주를 추가하는 이들도 있다. 이 모든 일은 동성 매력, 정체성, 그리고 육욕적 행위의 원인을 밝혀내려는 우리의 노력을 복잡하게 할 수 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오랫동안 동성애의 원인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많은 연구는 신경학적, 유전적, 그리고 생리적인 원인으로 옮아갔다. 이렇게 전환하게 된 데는 최소한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심리학 이론과 연구의 실패다. 심리학은 동성애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과학적 방법이 보다 정확하고 세련된 것이 되었고 이 새로운 기술이 밝혀 낼 수도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더욱 흥미가 있게 되었다.

세 번째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할 듯싶은 이 이유는 게이와 레즈비언 그룹 활동가들의 강력한 영향이다. 이들은 차별 철폐를 주장하고 동성애의 원인이 환경적 혹은 도덕적인 것이라고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반대한다. 이들 활동가 중 일부는 정치가, 직업 상담자, 그리고 언론 대표들과 밀착해서 그들의 행동지침을 촉진한다. 동성애가 생리적이며 타고난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발견된다면, 그렇다면 이들 활동가들의 지침은 지지를 얻게 되고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도덕적 혹은 성경적 주장은 입지가 약해지며는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을 이유는 아무 것도 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타고난 성적 경향을 변화시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종적 모습을 변화시키는 만큼이나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뒤이을 것이다.

연구와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동성애는 사람들이 미묘한 과정을 거쳐 선택하는 무엇이 아니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어느 땐가 모든 사람은 그 혹은 그녀가 여성 혹은 남성에게 먼저 성적으로 이끌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성향이 동성의 다른 누군가를 향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 이 일이 생겼는가가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부모-자식 관계>

정신 분석학 이론에서 동성애에 관해 가장 완전하고 널리 용인된 관점의 일부가 나왔다. 동성애는 성적 발달이 중지되었으므로 생겨났다는 프로이트의 관점에 근거해 정신분석학 저술가들은 동성애 남성은 보통 약하고 수동적이며 종종 아버지가 거리감이 있거나 무능한 아버지/독단적이고 소유적이며 통제적인 어머니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다고 결론을 내려왔다.

이 어머니는 교묘하게 아들이 수동적이며 그녀에게 헌신하도록 가르친다. 아들에게는 따를만한 강한 남성 모델이 없으며 결국 그가 소녀들과 관련 있는 동료들보다 유능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결과 아들은 자신의 남성성에 확신을 잃고 여성과의 친밀한 교제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한 가정의 딸들은 아버지를 불친절하고 거부하는 존재로 인식하며 따라서 소녀들은 남성과 연관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들은 여성들과 더 잘 연결된다.

더 많은 체계적 연구는 정신분석 관점에 혼합된 지지를 보내왔다. 캐나다에서 나온 한 흥미로운 연구는 자신들이 동성애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남성 캐톨릭 학생들과 이성애자인 학생들을 비교했다. 이성애자 급우들과 비교했을 때 동성애자 학생들은 그들의 아버지와의 친밀도가 현저히 낮았다.

사고를 자극하는, 그리고 아마도 더욱 믿을만한 변화인 이 관점은 엘리자베스 R. 모벌리(Elizabeth R. Moberly)라는 기독교인 저자가 제시했다. 그녀의 연구는 동성애는 반대편 성 부모와의 관계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표현한다. 동성애는 같은 성을 가진 부모와 연결된 결점(deficit)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정상적인 발전에서, 아이는 같은 성 부모와의 ‘결합함으로써 그 부모를 사랑하고, 의지하며, 동일시’할 필요가 있다. 이 관계가 없거나 망쳐진다면, 젊은이는 무의식적으로 그 결합을 회복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동성애가 되는 사람은 ‘부모-자식 관계에서 초기의 결점을 보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같은 성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는 계속되는 욕구는 어린 시절, 같은 성의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했으므로....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결핍을 회복하고, 채워지지 못한 필요를 채우는, 그리고 성공적으로 동성애를 다루는 한 가지 방법은 ‘동성을 가진 사람과 건전한 비(非) 성적 관계를 갖는 것이다. ’ 이 관점에 의하면 동성애 내담자들은 동성 관계 필요에 초점을 맞추어 돕는 동성, 이성애자 상담자가 돌보는 것이 가장 좋다.
성격 발달에 중요한 것은 ‘동일화’이다. 보고 흉내내면서 배우는 것, 이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동일화를 통해서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되고 인격이 성장해 가는 것이다. 남자 다움에 대해 배워야 남자가 되는 것이고, 여자다움에 대해 배워여 여자가 되는 것이다. 남자애는 아버지를 보고 남성으로 가고, 여자애들은 어머니를 보고 여성으로 가는 것이 정상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것이 안 되면 동성애가 생기고 성주체성에 장애가 오는 것이다(이무석, 2014)

많은 동성애자들은 부모 자식 관계에서 혼란을 겪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같은 가족 내의 아이들이 모두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비슷한 부모 자식 관계가 있다 해도 그렇지 않다. 이런 일이 생기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각 부모는 아이들 각자와 독특한 관계를 갖는다. 같은 가족 내에서도 편애와 사랑에 근거한 행동은 한 아이는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한편, 다른 아이는 정반대로 느낄 수 있으며 그 느낌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자식의 불확실한 역할로 인해 일부 상담자들은 동성애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어린 시절의 다른 경험을 찾아낸다.

<다른 가족 관계와 경험>

각기 다른 저자들이 동성애는 다음의 결과라고 제시해왔다.

▪ 어머니가 다른 여성들을 두려워하거나 불신하면서 아들들에게 그렇다고 가르칠 때.

▪ 어머니가 남성들을 두려워하거나 불신하면서 딸들에게 그렇다고 가르칠 때.

▪ 너무 많은 여성들이(어머니들, 자매들, 이모나 숙모들) 한 아들을 둘러싸고 있을 때, 그러나 아들은 성인 남성과 접촉이 제한되어 있어 소녀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도록 배울때.

▪ 딸을 원했으나 아들을 갖게 되어 미묘하게 그 아들이 소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키웠을 때. 아들과 딸이 바뀌었을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 생겨난다. 양 쪽 다 아이는 성적 정체성과 경향에 관해 대단한 혼란을 느낀다.

▪ 아들이 아버지에게 무시당하거나 거부당했을 때, 그래서 자신이 남성으로 부적절하다 고 느끼며 남성이 여성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확신하지 못할 때.

▪ 딸이 어머니에게 거부당했을 때, 그래서 여성으로 부적절하다고 느끼고 남성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을 때.

▪ 한쪽 혹은 양쪽 부모 모두가 성에 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때, 그래서 그 아 이는 성에 관해 왜곡된 관점을 갖게 되고 그 혹은 그녀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적응으 로 갈등할 때.

▪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지나치게 응석을 받아주는 바람에 아이가 그 부모와 과도하게
애착을 느껴 갈라놓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래서 그 어떤 배우자도 반대 성 부모와 비교할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을 때.

아마 이런 목록으로 몇 페이지고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의 뿌리가 복잡하며 종종 가족환경으로 인해 나타난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때로 가족은 성적 경향에 정신적인 면, 생물적인 면 모두 영향을 끼친다. 증거를 든다면, 한 실례로, 적은 비율이지만 게이 남성중 일부는 형제들 중 막내 혹은 거의 막내인 사람이 동성애 경향이 발달하는 경우가 있다. 이 일은 어떤 유전적 영향의 결과일까 혹은 동생이 같은 성 경향을 설명하는 위의 형제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운 것일까?

<기타 초기 경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동성애 설명을 찾고 있다면 기타 설명을 수없이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설명은 초기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 많다.

▪ 어떤 사람들은 후에 성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상처가 되는 성경험을 갖고 있다.

▪ 다양한 이유로, 일부 사람들은 반대 성을 두려워한다. 지속되는 공포는 다른 성을 가진 사람과 잦은 접촉이 없어서, 다른 성의 사람에게 거부당해서, 혹은 다른 성을 가진 누 군가와 당황스러운 경험을 함으로 인해 생겨날 수도 있다.

▪ 때때로, 아이나 청소년은 같은 성의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곤란을 느끼거나 부적당하고 다르다고 느낄 수 있다. 아마 어린 소년이 탈의실에서 페니스가 작아서 혹은 다른 아 이들만큼 운동을 잘하지 못해서 놀림 받고 당황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의 어린이들은 자신이 여성 혹은 남성으로서 부적절하거나 불편하다고 느끼고 반대편 성이 되고 싶어 한다.

이 원인들 중 그 어느 것도 동성애 경향으로 이끌어 갈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그러나 같은 성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라거나 산 사람들은 어떨까? 소년학교와 소녀학교, 신학교, 그리고 수도원, 감옥, 군대 그리고 비슷한 다른 환경이 동성애 매력을 고무하거나 조장 할까? 국가적 조사와 도시, 교회 그리고 시골 환경에서의 동성애 보급률은 환경이 동성 매혹과 행동을 자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왔다.

어느 사회건 어린이는 여성 혹은 남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배운다. 문화적으로 용인된 여성 혹은 남성의 역할을 배울 기회가 없다면, 혹은 사회가 역할을 모호하게 정의해왔다면 어린이의 행동과 자세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어린이들은 반대 성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혹은 무엇을 예상해야하는지 알지 못하고 성인기에 도달할 수 있다. 소수에게, 특히 이 젊은이들이 이미 자신 안에서 동성 선호 경향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동성애로 후퇴하는 것이 보다 더 편안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과학적 그리고 의학적 관점으로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다.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일부 사람들은 동성 매혹을 경험하는지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자의적인 선택>

일부 인기 있는 책들은 동성애는 미묘한 선택의 결과라고 제시해왔다. 이 관점은 동성애란 의지로 포기할 수 있으며 자의로 자신의 삶을 정화할 수 있다는 선택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 흔하다. 동성애가 고의적인 선택이라고 하는 이 관점은 기독교인 전문 상담자를 포함해 노련한 전문가들의 생각이 아니며, 동성애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생각도 아니다. 고의,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일은 있다 해도 드물다.

성인이 되어가면서 일부 사람들은 미묘한 선택을 통해서가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끌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이 깨달음은 대단히 혼란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자신에게도 그 사실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종종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동성애라는 유전적 소인을 가지고 태어났음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리곤 한다. 비록 우리가 보아왔듯이 현재 이런 결론은 연구에 의해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동성애와 이성애 경향은 둘 다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이미 얻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매혹의 느낌은 잘못 된 것이 아니다. 같은 성이건 다른 성이건 끌린다는 느낌은 사랑과 인정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성적 매혹에 대한 한 사람의 행동이 항상 사회적 혹은 성경적으로 적절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같거나 다른 성을 지닌 누군가와 성적 행동을 함으로써 쾌감을 얻을 때마다 그 성적 행위는 다음번에 더욱 매혹적으로 되어간다. 그 행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성적 행위를 계속하는가의 여부이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지나가는 성적 만남은 그 만남이 같은 성이라 할지라도 특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따라서 그 만남은 되풀이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배경과 경향이 취약한 사람이라면 한 번의 성적 경험은 다음의 한번으로 또 이끌고 그리고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동성애 행동 (동성애 판타지로 자극받은 자위를 포함해)은 동성애 경향을 더욱 크게 하며, 그 경향은 다시 행동을 되풀이하게 한다. 물론 이성애 경향을 지닌 사람이 반대 성의 사람과 성적 행위를 하기로 선택했을 때 역시 비슷한 주기가 시작될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이 이성애 사이클이 결혼 내에서 일어난다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육체적 행위를 포함한 결혼 외의 관계에서의 사이클은 죄악이다.

신학자인 리차드 J. 포스터(Richard J. Foster)는 동성애라는 이슈는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성적 경향이 동성애라고 확실히 밝힌 사람들은 오해받고, 전형화 되고, 악용당하며, 거부당한다고 느끼는 일이 잦다. 동성애에 관해 분명히 성경의 기준에 대치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교회생활에서 동성애를 합법화 하려는 교파 때문에 배신당했다고 느낀다.”고 썼다. 여기에는 “그들 자신의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 성적 충동으로 인해 갈가리 찢긴 듯 느끼며 혹시 자신이 잠재적인 동성애자가 아닐까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가장 고통 받을 것이다.

그들은 교회가 확실한 소리를 내지 않으므로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오른쪽에서 그들은 동성애에 관한 시끄러운 비난을 듣는다. 비록 그들이 성경적 정절을 위한 관심을 알고 있으나 그들은 건방지고, 알지 못하는, 위선적인 선언으로 상처받아 왔다. 왼쪽에서 그들은 동성애에 관한 열정적인 포용을 듣는다. 비록 그들은 박해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어린 관심을 감사하기는 하지만, 편의를 위해 성경을 더 조정하는 방식을 보고 놀란다.” 포스터는 여기에다가 ‘우리의 동정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 동성애에 관한 문화적 그리고 교회적 혼돈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추가한다.

동성애와 상담

오늘날 동성 매력 장애(same sex attraction disorder: 동성애)를 둘러싼 질문에 대해 너무나 많은 해답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해답과 함께 회복된 사랑에 대한 소망과 심지어 성적 취향의 변화도 온다. 현재 반대의 메시지를 주는 문화에도 불구하고 80년 이상의 과학적 연구는 SSA를 겪는 남녀들은 상처와 결함 때문에 심리성적 발달의 초기 단계에 멈춰 있다. 그들의 상처를 해결하고 사랑과 결속에 대한 미충족된 필요를 건강한 관계에서 충족되었다면 치유와 변화가 가능하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양성애자나 동성애자에 관한 기준과 관점 등이, 즉 당신 자신의 태도가 이미 상담을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당신이 게이, 레즈비언 혹은 양성애자를 두려워한다면, 그들을 농담거리로 삼는다면, 그들을 비난한다면, 그들에 관한 정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혹은 동성애와 그 원인의 복잡함에 관해 익숙하지 않다면, 그렇다면 동성에게 이끌리는 개개인을 이해하고 돕기가 더 어렵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과 죄에 유혹당하는 자를 사랑하셨다.

그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우리는 그들의 태도, 행동 혹은 그들의 성적 선호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관련되고자 하는 모델을 갖고 있다. 만일 우리가 동성애자들 혹은 동성애 경향을 가진 사람들을 감싸고자 하는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하나님께 그 부족한 연민과 감수성을 구해야 한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을 향한 우리 자신의 태도를 검사하고 동성애의 다양성을 이해하도록 추구해야 하며 부정적 태도를 지속하는 한, 가 혹은 변하고 싶지 않는 한, 동성애 경향이 있는 사람들 상담을 피해야 한다.

대부분의 상담자들은 동성애 문제로 갈등하는 사람들을 언젠가는 보게 된다. 이 문제에는 동성애 경향과 유혹의 갈등, 가족과의 불화, 동성애를 지지하는 다른 사람을 찾거나 신뢰할 수 없음 그리고 외로움, 자존심과의 싸움, 반(反) 게이 태도 혹은 희롱, 정신 건강 관심사, 혹은 동성애적 경향을 정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의 여부 등을 포함한다. 상담자들은 이 문제로 압도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 특히 예전에 동성애자들과 거의 접촉이 없었거나 상담자가 신화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게이 운동과 거의 모든 직업적 출판물은 성적 경향은 변하지 않을 수 있으며 변화를 가져오려는 시도가 불가능한 만큼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변화는 동성애자와 상담자에게 절대 쉽지 않다. 내담자가 실패하는 율은 높고 예전에 게이였던 목회자가 내놓은 정열적인 보고서는 과도하게 낙관적일지도 모르며 알찬 조사보다 증언과 사례 기록에 더 많이 근거하고 있다. 변화에 관한 연구를 상세하게 검토하고 그 결론에서 널리 존경 받는 두 명의 상담자는 그들이 “만일 변화가 동성애를 이성애 육욕의 경향으로 성적 경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면, 어떤 동기를 가진 누구건 변화 가능하다는 뜻으로 보이는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인의 의견, 낙관적이고 보편적인 이 일반화의견에 찬동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논쟁의 일부는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가에 관한 것이다. 앞부분에서 우리는 킨제이의 7점 범위를 이야기했고 여기서 0점은 완전한 이성애를 6점은 완전한 동성애를 나타냈다. 아마도 누구건 이 양극단에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만일 변화가 이성애를 가리키는 범위의 끝으로 가는 것이라면, 그러는 과정에서 1점 혹은 그 이상의 점수를 얻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변화는 아주 가능한 듯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스탠튼 존즈와 마크 야하우스는 다음처럼 덧붙인다. “동성애 경향의 변화는 어떤 이에게는 어떤 자연스러운 수단에 의해서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동성애가 변할 수 없다는 입장은 성공적인 변화의 보고라는 견지에서 의심스러워 보인다.” 여기에는 존경 받는 몇몇 상담자-연구자가 발견해낸 것을 포함하고 있다.

동성애 경향과 동성애 행위의 변화는 다음이 존재할 때 더욱 가능성 있다. 존재하면 할수록 변화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 모든 조건이 만난다 해도 일부 사람들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밝혀져야 한다. 우리는 분명하게 이 영역에서 어느 예언자가 가장 믿을 만한지를 아직 모른다. 하여간 다음과 같은 경우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 내담자가 정직하게 자신의 동성애를 인정한다.
▪ 내담자가 변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 동성애를 실현해 본 적이 없거나 제한받아왔다.
▪ 다른 사람과의 동성애 관계가 깊지 않다.
▪ 내담자가 유혹하는 동성애 동료와의 접촉을 기꺼이 깨뜨리려고 한다.
▪ 내담자가 게이 인터넷 사이트, 게이 음란물, 혹은 동성애 행동을 권하는 다른 자극물 들을 피하려고 결심한다.
▪ 성 정체성 이슈는 관련되어 있지 않다. (즉, 그 사람이 진정으로 여성인지 혹은 남성인 지의 여부에 관한 내부 갈등은 없다.)
▪ 마약과 알코올은 쉽게 유혹에 굴복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런 물건들을 기꺼이 피하고자 한다.
▪ 내담자는 동성애 친구와 접촉과는 별개로 사랑과 용납을 경험한다.
▪ 내담자는 상담자 혹은 다른 동성의 사람과 성적이 아닌, 친근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 전체적으로 보면 종교적으로 헌신하고 있고 긍정적이다.
▪ 내담자가 자신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헌신하고 죄를 피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위에 말한 것들을 염두에 두고서 상담자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도울 수 있다.

1. 내담자가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결정한다.

누군가 도움을 구하러 왔을 때 그 혹은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모든 동성애적 경향의 제거인가, 게이 혹은 레즈비언 행동을 그만두려는 것인가, 계속되는 동성애 행동을 제재하려는 것인가, 동성애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동성 연인과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일부 내담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말로 알지 못한다.

당신과 함께 이야기함에 따라 진정한 문제는 그들이 처음 주장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해져간다. 때로 내담자는 변하고자 하는 진정한 욕망이나 동기가 없다. 단지 변화를 돕고자 하는 배우자, 청소년 지도자, 혹은 부모의 강요로 왔을 뿐이다. 질문하고 그 내담자의 대답을 논의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내담자의 목적과 상담자의 상담에 대한 가치관 혹은 믿음과 어긋날 때 이 차이는 논의되어야 하며, 때로 다른 상담자 추천이 가장 좋은 대안이다.

당신의 자녀가 동성매력장애자로 드러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⑴ 당신의 자녀는 상처를 받았으며, 동성 부모와 동성 또래들과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필요로 한다.
⑵ 요점은 동성애자냐 이성애자냐가 아니다; 본인의 참된 성적 정체성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⑶ 동성 매력 장애는 발달 장애이며, 본질적으로 섹스와 상관이 없다.
⑷ 동성 매력 장애는 이성 부모나 다른 이성들과 건강하지 못한 애착관계와 흔히 관계가 있다.

2. 사실적인 희망을 가르치라. 동성 매혹을 겪어본 사람을 상담하기란 쉽지 않다.

동성애 행위는 멈출 수 있고 하나님께서 완전히 용서하실 수 있는 반면, 동성애 경향은 없애기가 훨씬 더 어렵다. 때때로 이성애 경향으로 변하려 들지 않을 것이나 그 혹은 그녀가 동성애 행위를 없앤, 승리하는, 의미 깊은 삶을 살도록 도울 수는 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동성애 남성과 여성의 성적 경향을 바꾸기 위해 존재한다. 종종 이들 목회자들은 변화의 기록이 담긴 인상 깊은 책과 사례를 펴내지만 이들 그룹이 그 영향에 동의하는 일은 드물다. 장외 관찰자는 동성애자가 변하지 못한 사례를 많이 알고 있고 그들이 변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후에 다시 동성애 행위로 돌아갔음을 알고 있다. 한 연구는 변화가 고정적이라는 증거를 발견하려고 했으나 겨우 11개의 출판된 조사 보고를 찾아낼 수 있을 뿐이었다.

성공률은 각각이지만 동성애 경향이 이성애 경향으로 바뀐다는 사례가 있는 것이다. 특히 종교 믿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하다. 이런 불확실함 속에서 상담자는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처음부터 내담자에게 그들이 부닥치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 변화는 가능하며 일부 동성애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변했고 이성애를 우선으로 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열망했지만 최상의 노력, 욕구, 기도, 그리고 결정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 일부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 성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성적 행위의 조절은 가능하다. 동성애 경향으로 갈등하는 사 람들은 선택에 따라 성적으로 적극적이 되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독신으로 살 수도 있다.
▪ 성적 경향은 복잡하게 선택하거나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윤리적 선택은 할 수 있다.
▪ 전문 서적에는 언급되는 일이 드물지만 동성애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배 우자들과 결혼해 성생활을 하고 결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비록 변화는 어렵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있다. 특히 그가 진지하게 변하고자 할 경우, 그러나 당신은 내담자에게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 이 가능성을 계속 상기시켜야 한다. 죄악인 동성애 행동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멈출 수 있다. 타고난 동성애 경향은 변할 수 있으나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성적 경향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으며 완성하는 삶을 살수도 있다.

3. 지식 공유

내담자들은 동성애에 관해 몇몇 터무니없는 미신을 믿고 있을 수 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이러한 미신을 경계하고 이 잘못된 개념을 동성애와 일반적인 인간의 성생활에 관한 정확한 정보로 바꿀 기회를 찾으라. 예를 들어 동성애 경향인 사람이 모두 무능력하거나 정신적으로 앓거나 왜곡되어 있고 하나님에게 거부당하거나 사회에서 역할 수행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그 동성애자를 격려하는 것이 된다. 때때로 동성애에 관한 성경 말씀, 특히 세 가지 층의 구분 - 같은 성 매력, 동성애 경향, 동성애자의 정체-을 알려줄 수 있고 이 모든 것이 동성애 행동과 어떻게 다른지 알려줄 수 있다.

4. 그 사람을 사랑하고 용납함을 보이라.
 
목회상담자 게리 콜린스는 한 예배당에서 용기 있고 통찰력 있는 강의를 한 신학교 제자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그는 자신의 동성애 경향과 게이 사회에서 그의 목회에 관해 이야기했다.

오늘 밤, 그리고 새벽 3시에 나와 함께 이 시카고에 널려 있는 게이바 중의 하나로 갑시다. 여러분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들 일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사랑받고 싶어 울부짖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우리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이 사랑을 찾기 위해 종종 뒤틀리고 죄로 가득한 표현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야 할 굶주림, 마음의 외침, 공허함이 있으며, 여러분의 마음에도 내 마음에도 그러한 것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인 친구들이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책자를 휘두르는 전도사가 아니라 연민으로 친구에게 귀 기울이는 친구 말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동성애자라는 사실로 갈등하는 사람,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간에, 그 사람은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그 혹은 그녀는 가족에게서 병자 취급 받아서, 왜곡된 환경 때문에, 혹은 우리들 누구에게나 영향을 끼치는 기본적인 죄로 인해 상처받았습니다. 희생자가 되는 것 이상으로, 동성애자는 죄의 희생자가 되어 왔습니다. 그는 그가 물려받거나 선택한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지는 나이가 되기 얼마 전, 알게 된 동성애 경향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종종 마지막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동성애 섹스를 하게 되는 그 사람은 사랑을 추구해왔고 그 사랑은 관능으로 더럽혀졌습니다. 그러면 왜 그 혹은 그녀가 기독교인 친구를 필요로 할까요?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있으며 속죄, 정화, 하나님의 사랑이 구현되는 치유력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온 세상에는 예수님의 이 사랑을 보고, 느끼고, 접촉하고,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그리고 우리가 그의 도구라는 사실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이 화자에 따르면 적극적인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성(性)과는 관련 없이 양성의 돌보는 사람들과 연결됨으로 인해 대단히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민감한 대다수의 믿는 이들과 함께 하면 이러한 지지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교회와 기독교인 개인들은 번갈아 동성애 사람들과 더욱 연결되기를 원하고, 대화를 나누고 용납과 이해를 더욱 많이 보여주어야 한다. 언젠가 어느 번성하는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교회 옆에는 게이바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 알고 있었고 어느 날 아침 목사가 동성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많은 게이바 단골손님들이 교회로 왔다. 목사는 성경 메시지를 흐리지 않았고 그들도 그의 결론에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웃들은 의견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존경심을 보였고 우정이 생겨났다.

우리가 누군가의 동성애 우정이나 동성애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며, 평범한 한 개인이 지지받고 용납 받아왔던 사람들로부터 멀어질 때처럼 이들도 똑같이 진정한 슬픔의 과정을 겪는다. 동성애를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지원 공동체가 없다면, 이들은 옛 생활 스타일로 쉽게 후퇴해버릴 수도 있다.

모벌리식 접근방식에 의하면 같은 성의 상담자와 가진 친밀하고 비성적(非性的)인 관계가 동성애자를 돕는 기본이 된다. 같은 성의 타인이 주는 사랑과 용납을 경험하면, 특히 그 관계를 기도로 지원하면 치유가 거의 가능하게 된다.

5. 행위 변화를 격려하라.

사랑과 용납이 있다 해도 다른 사람과 동성애 행위를 계속하는 사람에게 변화는 오지 않는다. 이런 행위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면 특히 그만두기 어렵다. 변하고자 하는 복잡한 결심이후에 내담자는 재발을 경험하고 때로는 변화가 바람직하다는 그러한 저항은 곧장, 인내심을 가지고, 친절하고 확고한 방식으로 상의해야 한다.

행위가 변하도록 돕는 방법 하나는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사람들, 출판물, 그리고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외로워질 수도 있고 상담이 주장하는 생활스타일 변화에 이를 수도 있다. 예수님은 용서하시며 성령님은 항상 유혹에 저항하고 죄악 행위를 저버리도록 우리를 도우신다는 사실을 내담자에게 상기시키라. 이 모든 일은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격려하고 인간적 접촉을 한다면 훨씬 쉬워질 수 있다.

내담자의 생활스타일 모두를 논의하는 것도 가치 있을 수 있다. 성은 삶의 일부지만 그러나 예배, 일, 가족, 기분전환, 시간 관리, 운동, 휴식도 삶의 일부다. 오직 성적 만족을 통해 삶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며, 상담이 성만을 고려한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내담자가 성을 제외한 삶의 다른 부분, 예수님과의 관계, 교회와의 연관, 직장 혹은 기분 전환 활동 등등의 관련, 이런 부분에서 그 자신의 정체성과 만족을 찾지 못하는 한 압력이 생기면 다시 동성애 관계로 미끄러지는 경향이 있다. 보다 균형 잡힌 삶은 상식 특히 수많은 자잘하고 덧없는 동성애 감정과 행동의 치료다.

6. 상담이 복잡해지고 시간 소모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라.

동성애는 복잡한 문제이며 종종 뿌리가 깊어 치료하기 어렵다. 특히 상담자가 이러한 그룹 사람들을 상담한 경험이 적거나 훈련을 적게 받았다면 더욱 그렇다. 당신이 시작하고 싶어 하는 지점과 내담자가 원하는 지점 사이에 전혀 연관이 없다면 진전은 없다. 모든 상담이 그렇듯이 동성애자들의 상담에도 기복이 있다. 다음과 같은 기복이 일어날 수 있다.

▪ 실패 공포, 특히 피할 수 없는 재발 혹은 후퇴가 일어나는 경우. 내담자는 그런 일이 누구에게나 흔하고 상담자가 미리 예상하고 있는 점이라는 사실을 알고 안심할 필요가 있다.
▪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후퇴하는 사람은 공포를 느낀 다.
▪ 변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친숙한 것들에게로 돌아가려고 원한다. 이 일은 종종 친 숙한 것들이 더 편안하고 따라서 변화를 원하기는 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생겨난다.
▪ 내담자로 하여금 옛날 행위로 돌아가라고 이끄는 유혹 때문에 불안이 생겨난다. 이 순 간에는 다른 사람의 지원과 책임감이 중요하다.
▪ 정점. 당분간 더 이상 진전이 없는 듯 보이므로 용기를 잃는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다. 종종 하나의 문제가 나아지면 다른 문제가 갑자기 나타난다. 이런 일은 다룰 수 있다고 내담자를 안심시키라.
▪ 새로운 감정의 나타남. 일부 내담자에게 이런 일은 두려운 일일 수 있다. 그 감정을 알 도록, 왜 그 감정이 그 단계에서 나타났는지 그리고 정직하게 부딪치도록 내담자를 격려하라.

이런 일들을 써놓은 것은 당신의 용기를 꺾으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상담하는 일이 복잡하다는 경고이며 일부 경우에는 다른 사람, 아마도 더 경험 많은 이에게 소개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기독교 치유 사역>

교회 내에는 동성매력장애를 다루는 사역들의 수많은 그룹과 조직이 있다. 교회는 동성애자들에게 ⑴수용의 분위기와 ⑵지원의 분위기를 제공하여야 한다.

동성매력장애(SSA)에 대한 우리 해결책은 사랑과 이해이다. 모든 동성 매력 장애는 두 가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1) 치유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상처, 그리고 (2) 사랑과 용납에 대한 충족되지 못한 필요. 그 것뿐이다.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당신의 자녀가 진정한 성별 정체성을 되찾고 그녀의 이성애적 잠재력을 만족시키도록 치유 받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프로그램을 실천하려 노력하면 성공한다.

예를 들어 엑소더스 인터내셔널(Exodus International)은 사람들이 성적 경향을 바꾸도록 돕는 종교적 성향의 그룹 백 개 이상을 포괄하는 조직이다. 많은 그룹이 신문에 광고를 내고 변화한 사람들의 사례를 싣는다. 이들 일화를 담은 기사는 주목을 받으나 전문 상담자는 그 기사들을 깎아내린다.

사례란 거의 모든 종류의 행동 변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좀 더 종교적인 연구가 행해졌고 변화가 일어나지만 결과는 확정적이 아니다. 동성애 성향을 바꿀 수 있는 성공비율은 변하고자 하는 동기 여부에 따라 1/3에서 2/3로 본다. 이들 그룹의 일부는 그들이 동성애 경향 혹은 동성 매혹에서 극단의 변이를 무시하는 관점(그가 동성애자이거나 이성애자이거나 둘 중 하나)으로 혹은 한쪽 관점에서 일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동성애에 관한 결론

기독교인을 포함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성 매혹과 동성애 행동에 끌리는 유혹과 씨름하고 있는지 추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거절당하거나 혹은 오해받는 것이 두려워 이 사람들은 그들의 경향을 인정하기를 주저한다. 종종 그들은 죄의식과 자기 비난에 사로잡혀 홀로 씨름하며 자신의 성적 사고 혹은 행동을 용서하거나 설명해줄 합리적 구실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교회는 이와 같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안전한 장소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의식 있는 상담자에게 게이와 레즈비언을 상담하는 일이 다른 유형의 상담과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일은 복음의 힘을 응용해 상담환경 내에서의 삶으로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역사상 지금처럼 동성애에 관한 관심이 널리 퍼져 있으며 동성애에 대해 열려 있는 시대는 없었다. 예전에는 교회 구성원과 기독 상담자가 동성 매혹과 동성애 경향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성애는 기독교 성윤리에 도전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생활스타일과 관계 없이 동성애자들을 하나님의 긍휼과 관심과 사랑의 대상으로 수용하고 인정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하나님의 신적 설계와 창조 의도의 관점에서 보면, 동성매력 장애는 불행하고 결핍된 상황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성적 행동으로 표현될 때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 동성관계가 비록 이성간의 결혼에 대한 대안으로 용인될 수는 없지만, 복음의 기쁜 소식은 동성경향의 사라들도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도 그리스도의 교제권 안에서 금욕을 실천하는 독신자로서 보람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독신생활로 부름은 받지 않은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주장하는 가운데 성적 지향의 변화를 이루어 이성적 결혼 안에서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성적 지향의 그리스도인이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성성을 살아내라는 부르심은 오늘과 같은 허용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어려운 도전이 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자원은 부르심의 어려움 보다는 크며, 창조질서와 의도에 순종하는 것은 더 큰 기쁨으로 가는 길이다.

참고도서

게리 콜린스. [뉴 크리스천 카운슬링]. 두란노, 2008.
이무석. [성격, 아는 만큼 자유로워진다]. 두란노, 2014.
Armand Nicholi. "Human Sexuality: A Psychiatric and Biblical Perspective," God and Culture (ed. by D.A.Carson and John Woodbridge.) William Eerdmans, 1993.
Les Parrott III. Helping the Struggling Adolescent. Zondervan, 2000.
Lewis Smedes. Sex for Christians. William Eerdmans, 1976.
Rodney Hunter (eds). Dictionary of Pastoral Care and Counseling. Abingdon, 1990.
Richard Cohen. Gay Children, Straight Parents. IVP, 2007.
Stanley Grenz. Sexual Ethics: A Biblical Perspective. Word, 1990.

* 각주는 내용의 원활한 게재를 위해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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