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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쪼갠 빵, 경계ㆍ대립 종식과 새로운 공동체 선언하다 본문

성경과 신학

예수가 쪼갠 빵, 경계ㆍ대립 종식과 새로운 공동체 선언하다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8:16

한국신약학회, 제16회 콜로키움서 협성대 이민규 박사 발표

데오스앤로고스  |  thelogos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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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12  16: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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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무리들과 식사를 나누며 빵을 쪼갤때, 빵-메타포는 종교와 사회적 경계를 뛰어 넘어, 적대 관계의 종식을 선언하고, 새로운 계약 관계를 선언하며, 모든 이방 민족과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며 세워진 대안적 공동체를 표출한다.”

“더 나아가 예수가 가나안 여인에게 쪼개진 빵(부스러기)을 허락할 때, 빵-메타포는 민족, 종교, 이념, 성, 계급 등의 경계를 허물고, 땅 끝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생명 공급의 영향력과 그 나라의 확장을 선언한다.”

마태복음 14장과 15장에서는 5천 명과 4천 명의 무리를 먹이신 두 기적의 이야기와 빵 부스러기라도 원했던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 사건들에는 ‘빵-메타포’(metaphor)의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민규 박사(협성대)는 “마태복음의 빵-메타포는 이스라엘 민족 고유의 역사와 정체성과 더불어 마태 공동체의 정체성과 이념적 비전이 표출된다”며 “특별히 예수의 빵을 쪼개는 메타포적 행위를 통해 마태는 모든 종교-사회적 적대와 경계를 뛰어넘어 예수를 중심으로 새롭게 연대하는 대안적 공동체의 실현과 새로운 정체성의 형성을 묘사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신약학회(회장:윤철원 교수, 서울신대)가 지난 9월 12일(토) 오전 10시 신촌성결교회에서 ‘제16회 콜로키움’을 개최한 가운데 이민규 박사는 발제자로 참여해 ‘인지 메타포(Cognitive Metaphor) 이론을 통해 본 마태복음의 빵-메타포와 그 의미 연구:마태복음 14~15장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민규 박사의 발표 내용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쪼갰던 빵이 지닌 상징적 의미와 마태가 자신의 공동체를 향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박사가 발표한 주된 내용을 정리했다.

# 히브리 문서에 나타난 빵/식사의 개념

유대인들의 음식과 식사는 먹고 마시는 문제의 차원을 넘어 민족적-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확증하는 매개이며, 각 공동체의 경계를 구분하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 또한 음식에 대한 율법과 종교적 의식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초로 한 종교적 신념과 그에 상응하는 이념적 비전을 나타낸다.

특히 제2성전기 문서를 통해 드러난 음식 규범이나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종교와 문화적 경계를 확증함과 동시에 포로기 이후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공동체의 연대의식을 제고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예를 든다면 다니엘의 이야기에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빌론의 궁전에서 제공된 음식을 거부하고, 물과 야채만 먹으며 자신들을 더럽혀지는 것으로부터 보호한다(단 1:8~16). 여기서 적절하지 못한 음식이나 이교도의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더렵혀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만이 아니라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런 측면에서 공동만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공통된 의무와 규례를 지키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개인과 공동체의 이념적 정체성을 동일시하고 확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대교 전통에서 공동식사나 종교의식의 만찬은 다른 그룹으로부터 특정 공동체를 구별짓는 ‘경계의 구분’으로서의 기능을 했다.

   
▲ 이민규 박사(협성대)
# 빵을 쪼개는 행위의 사회적 의미


성서에서 빵을 쪼개는 상징적 행위는 환대를 의미하며, 손님을 대접하는 주인의 행위로서 타자와 식사를 나눌 때 친교의 시작을 알린다. 또한 빵을 쪼개는 행위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적대의 종식, 계약의 체결, 그리고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첫째, ‘빵을 쪼개는 일’은 식사를 함께 한다는 의미의 상징이다. 특별히 적대 관계에 있던 타자와 식탁을 함께 나누며 모든 적대와 대립의 관계를 종식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기본적으로 빵을 나누는 일은 상대에게 푸짐한 환대를 베푸는 것이며, 모든 적대와 경계를 허물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친근함을 연출하는 것이다.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이 브엘세바의 우물에 대한 소유권을 아비멜렉과 협상한 후, 잔치를 벌여 아비멜렉과 만찬을 했다는 것은 적대적 관계 종식의 선언이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둘째, 자신의 음식/빵을 타자와 나누는 일은 새로운 계약이 체결됐다는 것이다. 빵을 쪼개고 식사를 함께 나눔으로 다른 진영의 사람들과 자신들을 동일한 규율과 계약 안에 연대함을 상징한다. 이삭이 준비한 만찬은 화해에 대한 서약이며 맹세인 것이다(창 26:28).

야곱과 라반이 음식을 나누고 계약을 맺은 것(창 31:46~54),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들이 준비한 빵과 음식을 보고 평화의 조약을 맺은 것(수 9:15) 등이 그 예다. 빵을 나누고 타자의 환대와 공급에 참여하는 것은 두 진영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계약과 조약이 성립됐음을 상징한다.

셋째, 빵을 쪼개고 음식을 나누는 일은 실제 공동체의 형성을 표현한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체성의 형성은 출애굽과 광야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계약적 관계에 기인한다.

광야에서 함께 나눈 공동식사, 유월절 만찬, 만나와 메추라기, 특별히 출애굽을 상징하는 무교병과 하늘로부터 내려온 빵인 만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종교적-민족적 정체성에 근본이 되는 상징이다. 더 나아가 이 음식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형성되고 존재한다.

사실 무교병과 유월절 만찬을 나누며 빵을 쪼개는 일은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의 능력과 완전한 돌보심과 생명의 공급, 그리고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의 관계를 기념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스라엘 공동체와 그 정체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특별한 사회적 기억은 그것을 기념하는 의식화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특별히 음식은 과거에 대한 회상을 불러일으키며 공통된 사회적 기억을 통해 공동체의 연대와 정체성 고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유대교 전통에 있어서 특별한 음식과 제의적 만찬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계약적 관계를 기억하고, 기념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유월절 만찬의 무교병이나 양(Lamb)은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을 회상케 하며, 동일한 역사적 지식과 개념으로 공동체의 연대를 강화한다.

여기서 음식은 사회 공동의 기억과 인지 개념을 담아내는 수단이 되며,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사회적 관계, 정체성과 이념적 비전을 표현하는 상징이 된다.

# 무리를 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두 기적에 나타난 빵-메타포

빵/물고기와 이야기의 배경은 광야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신적 공급, 백성을 해방시키는 능력, 그리고 하나님과의 계약적 관계를 메타포적 개념으로 연결시킨다. 이 개념들은 이스라엘 백성ㄷ들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그들의 공동체적 정체성을 형성케 했던 중요한 매개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태복음의 예수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광야의 무리들을 위하여 생명을 주는 음식을 공급하고, 질병의 치유를 통해 해방과 회복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빵을 쪼개고 나누는 예수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고, 그의 가르침을 통한 새로운 정체성이 세워짐을 드러낸다.

예수가 빵과 물고기를 들고 하늘을 보며 축복기도를 드리고, 빵을 쪼개어 무리들에게 나누어줬다는 것, 식사와 빵을 나누는 행위 자체가 상징적으로 생명의 근원을 공급하고 인간과 관계 맺는 하나님의 통치와 권위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함께 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찬에 참여한 무리들은 예수를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로 연대하며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된다. 여기서 예수는 식탁의 주인이자, 공동체/가족의 가장이 되며, 축복하고 빵을 쪼갬으로 공식적인 식사가 시작된다. 그 순간 그 식탁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치유 안에서 새롭게 형성된 정체성을 확증하며, 예수와 함께 빵을 나눔으로 가족이면서도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빵을 쪼개는 행위로서의 메타포는 적대관계의 종식, 계약의 성립,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의미를 표출한다.

첫째, 광야에 모인 무리들 앞에서 빵을 쪼개는 예수의 행위는 새롭게 형성된 공동체의 모든 적대와 대립의 경계를 허무는 메타포적 상징이다. 마태복음의 이야기 흐름에 나오는 군중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병자들과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이다. 주류사회나 공동체로부터 소외되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약자 계층을 향한 보이지 않는 소외와 적대가 있었으며, 계층과 사회적 위치를 나누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예수는 바로 그 무리들을 향하여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드러낸다.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질병을 치료한다. 그들과 함께 할 만찬을 손수 마련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빵을 쪼갠다.

예수와 더불어 기존에 존재하던 반목과 적대의 종식이 선언된 것이다. 새롭게 새워진 공동체의 확증임과 동시에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포함됨을 선포하는 행위다.

둘째, 빵을 쪼개는 예수의 행위는 무리들과 새로운 계약이 맺어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빵을 쪼개는 행위의 메타포는 예수가 유대교의 전통과 사회적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계약을 맺고 있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 문화와 전통에서 공동식사는 사실적 동족(혈연) 관계나 아주 밀접한 인간관계의 확증으로 인식됐으며, 새로운 계약적 관계 성립의 구성요소이기도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빵을 쪼개는 예수의 행위와 광야의 만찬은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과 새로운 계약적 관계가 성립됐음을 선포하는 메타포적 상징이다.

셋째, 빵을 쪼개는 메타포적 행위는 공동체의 성립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공동의 이데올로기적 비전의 확증과 구성원의 참여를 표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메타포적 의미에서 떼어진 빵을 받아먹는다는 것은 예수의 권위를 인정하며,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상징이다.

다시 말해 무리들의 입장에서 쪼개진 빵을 먹고, 만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기초한 공동의 가치관과 이념, 그리고 그의 예언적 비전으로서의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다.

넷째, 예수의 빵을 쪼개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예수를 중심으로 실제 공동체의 형성을 상징한다. 빵을 쪼개고 나눔을 통해 마태복음의 저자는 모든 적대의 종식을 선언하며, 새로운 관계 안에서 예수의 예언적 비전을 따라 형성된 마태 공동체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예수의 빵을 쪼개 나눈 메타포적 행위는 궁극적으로 조각처럼 부서져 있는 공동체의 회복을 상징하는 것이다. 특별히 예수의 새로운 언약, 이념적 비전, 그리고 온전한 돌보심과 생명의 공급에 의해 다시 형성된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의 회복을 표출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속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든 적대적 관계와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계약을 맺으며,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며, 이스라엘의 궁극적 회복을 확증하고 선언하는 것이다.

특히 무리를 먹이신 두 번째 이야기(마 15:29~39)에서의 무리는 주로 이방인이다. 빵-메타포가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확장된 것이다.

예수는 “걷지 못하는 사람과 지체를 잃은 사람과 눈먼 사람과 말 못하는 사람과 그 밖의 아픈 사람들”(마 15:30)을 포함해 이방인들을 위해 빵을 쪼개고 음식을 나누었다. 다시 말해 예수가 두 번째 군중들과 빵을 쪼개고 나눌 때, 모든 소외된 자들과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다스림과 공급하심, 그리고 그의 공동체 안으로 초대된 것이다.

마태복음의 예수는 이방을 향한 모든 적대를 종식하고, 유대 공동체 내에 존재했던 종교-사회적 경계까지 허문 것이다. 더 나아가 마태복음의 예수는 이방인들과 더불어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예수의 빵을 쪼개는 메타포는 단순히 하나님의 나라와 현존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방인과 소외된 자들을 끌어안으며 새로운 계약의 관계를 맺는 예언적 비전을 실현하는 것이다.
빵을 쪼개는 메타포를 통해 마태의 예수는 하나님의 공급하심 아래서 새롭게 연대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마태복음의 첫 번째 이야기는 예수의 빵을 쪼갬과 나눔을 통해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선언하고,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 모든 종교-사회의 경계를 허물고, 편견을 뛰어넘어 예수의 예언적 비전을 드러내며, 온 이방 세계를 향한 공동체적 경계를 확장한다.

특히 예수가 빵을 쪼개고 함께 음식을 나눌 때, 이 만찬은 동정에 의한 음식의 공급이 아니라 모든 종교-사회-계층적 장애와 경계를 뛰어넘어 흩어진 민족을 하나님의 다스림과 새로운 계약의 관계 안으로 다시 모으며, 예수의 사역 안에서 이스라엘의 종말적 희망과 예언적 비전이 이미 실현됐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 가나안 여인과 빵 메타포

갈릴리 지역 중심으로 유대민족을 위해 사역했던 예수가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 이후, 민족의 경계를 넘어 이방 지역으로 향한다. 두로와 시돈은 이방지역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된다. 에수는 두로와 시돈으로 넘어가 가나안 여인을 만난다.

가나안 여인과 예수의 만남은 민족, 종교, 전통, 그리고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사건이다.

여인과의 이야기 중심에서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여인의 요청에 예수는 계속해서 거절하다가 급기야 여인을 ‘개’에 비유하며 요청을 거절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 15:26).

예수와 이방인인 가나안 여인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적대적 장벽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마태는 예수와 가나안 여인과의 부정적인 대화에서도 빵-메타포를 사용한다.

예수의 부정적인 말에 여인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 먹습니다.”(마 15:27)라고 말한다. 여기서 여인은 예수의 빵-메타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인물로 그려지며, 지혜롭게 답변한다.

독자들에게 부스러기는 첫 번째 무리를 먹이신 이야기에서 충분히 만족을 누리고 남은 열 두 광주리를 연상케 한다. 그 풍성함으로 인해 ‘개’로 불리어진 가나안 여인과 이방인에게도 충분히 여유가 있을 것임을 상상케 한다.

여인은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생명의 근원이 되는 자원이 온 세상을 덮을 만큼 풍성함을 설명하며, 그 구원의 행위를 결정한 권위가 예수에게 있음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여인이 원하는 대로 그 청을 들어주기로 결정한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마 15:28).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여인이 제안하고, 예수를 설득했던 그 내용대로 이루어질 것을 허락한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이스라엘의 자녀들과 쪼개고 나누었던 빵이 이방인들에게까지 전달되는 결정적 순간이다. 타자와 이 빵을 나눌 때, 빵-메타포는 공동체 안으로 그 타자를 받아들이는 상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가 여인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개들이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을 때, 빵을 쪼개고 나누는 대상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넘어 이방인들에게 확장된다.

즉,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는 빵-메타포를 통해 모든 이방인들과 종교-사회적 경계의 밖에서 소외된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온전하신 다스림과 돌보심 아래 하나의 공동체로 세워지는 종말적 비전을 확증하는 것이다.

결국 마태복음의 이야기는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를 기점으로 이방인 무리들을 먹인 두 번째 빵 이야기로 전개된다. 궁극적으로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사역이 기존에 존재하던 종교-사회적, 계급적 장애와 경계를 뛰어넘어 온 이방 나라들과 더불어 새로운 계약과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음을 선언하며, 이방인을 향한 마지막 명령으로 마태공동체의 이념적 비전과 정체성, 그리고 신학적 담론을 전개한다(마 28:19~21).

즉, 마태복음에서의 빵의 메타포적 개념은 동정의 마음에서 무리에게 공급되어 배를 채우는 음식, 혹은 예수의 기적 행위의 도구가 아니라 예수를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된 마태공동체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종말론적 비전과 이념적 이상을 함의하고 있는 메타포다.

예수가 무리들과 식사를 나누며 빵을 쪼갤 때, 빵-메타포는 종교-사회적 경계를 뛰어넘어, 적대 관계의 종식을 선언하고, 새로운 계약 관계를 선언하며, 모든 이방 민족과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며 세워진 대안적 공동체를 표출한다.

더 나아가 예수가 가나안 여인에게 쪼개진 빵(부스러기)를 허락할 때, 빵-메타포는 민족, 종교, 이념, 성, 계급 등의 경계를 허물고, 땅 끝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생명 공급의 영향력과 그 나라의 확장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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