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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성경은 어떻게 말할까? … 현대의 동성애 접근과는 달라 본문

교회와 사회

동성애, 성경은 어떻게 말할까? … 현대의 동성애 접근과는 달라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8:24

한국성서대 이민규 박사,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ㆍ현대기독연구원의 ‘동성애 특별포럼’서 발표

데오스앤로고스  |  thelogos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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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0  13: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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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와 현대기독연구원은 지난 11월 7일(토) 오전 10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강의실에서 ‘한국 교회,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를 주제로 동성애 특별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동성애와 관련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반응과 태도에 관한 분석을 비롯해 기독교윤리적, 성경적, 목회적, 의료과학적, 인권&법률적 시각에서 동성애 문제를 다뤘다. 이 가운데 ‘성경은 동성애를 어떻게 말하는가?’를 주제로 발표한 한국성서대학교 이민규 교수(신약학)의 발표문을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주>

“성경은 현대 사회에 익숙한 성 정체성이나 성 지향성에 대한 이해나 의학적 지식을 갖고 동성애를 다루지 않는다. … 그러나 동성애 성행위는 죄다. 그런데 회개할 수 없는 죄는 아니다. 또한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역시 동성 성행위 못지않은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동성애를 죄라고 할 때 우리는 이성애자들의 성적 문란함을 대하는 태도와 다른 이중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된다.”

   
 

# 동성애 이슈를 다룰 때의 문제점

첫째, 오늘날 기독교 공동체에서 동성애 논쟁은 학술적인 차원을 넘어 보수와 진보 이데올로기의 감정싸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화는 오직 열린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지만 현재 동성애 문제는 제대로 대화가 안되고 있다.

둘째, 성경은 현대 동성애 논쟁이 원하는 자세한 정보들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의 작은 정보와 모호함으로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주장을 끄집어내는 경향이 있다. 정말 때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다.

동일한 본문을 읽으면서도 한 쪽은 성경이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하고, 또 다른 쪽은 동성애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당시 역사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적인 동성애에 관한 문화를 연구하다보면 오늘날의 동성애 문화와 상호 겹치는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동성애 성향, 성적 취향,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동성 간의 아름다운 사랑 등 현대의 동성애 주제들은 성경에서 구체적인 예를 찾기가 쉽지 않다.

넷째, 성서해석에서 중립은 없다. 개관이라는 것도 해석자의 주관적 객관임을 인정해야 한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흐름은 늘 성경해석에 영향을 끼쳐왔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 시대의 문화, 개인의 경험과 입장을 갖고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인식하 때 오히려 한계를 잘 파악할 수 있고, 관점의 실수를 최대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 동성애 용어, 성경에 나오나?

성경에는 ‘동성애’란 용어가 나오지 않는다. 모든 시대에 동성애자들은 존재했겠지만 고대사회에는 동성애(homosexuality), 이성애(heterosexuality)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성애란 어휘는 1869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된 팜플릿에 처음 나온다. 양성애(bisexuality), 성적 성향(sexual orientation)과 함께 이런 용어들의 구체적인 정립들은 모두 현대심리학과 사회학의 분석으로 탄생하거나 주목받은 것들이다.

오늘날 동성애는 사전적으로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으로 같은 성별을 지닌 사람들 간의 감정적, 성적 끌림, 또는 성적 행위’를 뜻한다. 성경에 분명히 나타난 동성애는 구체적으로 동성 간의 성행위 부분일 것이다.

로마서 1장의 ‘욕망’이란 용어는 동성애를 포함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이지는 않다. 물론 퀴어신학이나 친동성애적 주장을 하는 이들은 다윗과 요나단, 나오미와 룻, 백부장과 그의 종, 예수와 사랑하는 제자 등과 같이 동성 간의 친밀감이 연상되는 내용에서 동성애적인 감정적 끌림과 성적 성향을 읽어내는 경향이 있지만 학계에서 전반적인 동의를 얻지 못한다.

성경에는 동성 간의 감정적 성적 끌림을 묘사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동성 간의 성행위와 관련된 일곱 개의 본문이 나온다(창세기 19장, 사사기 19장, 레위기 18:22; 20:12, 로마서 1:24~27, 고린도전서 6:9, 디모데전서 1:10, 특히 유다서 1:7절은 천사 강간인가, 동성 강간인가의 해석에 따라 동성애 관련 본문에 포함될 수도,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 구약에서의 동성애


창세기 19장과 사사기 19장은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고 자신들의 욕정을 채우고자 동성 강간으로 욕보이려고 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상관한다”(히브리어: 야다)는 말은 성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고대근동의 표현 방식이다.

특히 롯이 손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돔인들에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을 대신 줄테니 마음대로 하라고 제안하는 것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는 황당하고 충격적일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여기에 대한 평가를 말하지 않는다.

소돔인들은 롯의 제안을 거부하고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고, 천사는 그들의 눈을 멀게 해 그들의 악행을 막는다. 그리고 소돔은 유황불로 멸망을 당한다.

여기서 퀴어신학자인 헬미니악은 소돔의 죄를 동성애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그네에 대한 잔인한 학대로 본다. 당시 사회에서 남성 간 항문성교의 의미는 굴욕, 모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서는 소돔의 죄를 구체적인 동성애로 지목하지 않는다(렘 23;14).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이 나쁜 본을 보여서 영적 간음인 우상숭배와 거짓과 악을 행하는 백성의 회개를 막고 있다고 비난한다(렘 23:16~17, 24:13).

에스겔도 소돔의 죄를 지적할 때, 동성애를 포함하지 않는다(겔 16:49~50). 에스겔은 소돔이 멸망당한 죄로 교만, 탐심, 풍요에도 가난한 자를 돕지 않는 것으로 지적한다. 여기에는 분명 소돔이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은 것이 포함될 것이다.

신약에서도 소돔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상징으로 표현되지만 그들의 죄로 동성애나 성욕이 언급되지는 않는다(마 10:15, 눅 10:12, 마 11:23~24). 특히 마태복음 10장의 문맥에서 소돔이 불 심판을 받은 죄는 나그네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사자를 영접하지 않은 것이다.

이사야서 1:9를 인용하는 로마서 9:29에서도 동성애가 지적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헬미니악이 소돔의 죄로 ‘동성애가 아니고’가 아니라 ‘동성애가 포함된’ 나그네 학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물론 동성애의 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동성애가 죄에서 배제됐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강간 행위는 분명히 죄지만 이 또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당시 사회적으로 극악무도한 죄로 인식된 행동이라는 설명이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창세기부터 성경은 하나님이 서로를 위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점과 건강한 성적 욕구가 이성 간의 결혼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창세기 19장을 읽을 때 동성애가 용납된 행위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다.

창 19장의 타락한 소돔 안의 죄악은 두 가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손님의 권리와 엄격한 보호를 보장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둘째는 그들이 시도하려던 남성을 향한 강간은 상대를 가장 치욕적으로 굴복시키려던 잔혹한 학대의 의도다.

레위기 18:22, 20:12는 동성 간의 성관계를 가증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본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당시 역사적으로는 성창(holy prostitution)이 있었다. 바벨론의 풍요의 신을 섬기던 제의에는 남창과 여창이 모두 등장한다. 성경이 금하는 이런 이방 풍습에 의해 이스라엘인들이 참여한 증거들이 있다(신 23:18, 왕상 14:24, 왕하 23:7). 이런 문맥에서 볼 때, 레위기의 동성애 금지는 우상숭배와 관련된 종교적 남창에 관한 내용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종교적인 입장에서만 해석하면 안된다. 레위기 18장에서 다루는 간음, 근친상간, 수간 등은 당연히 종교적인 이유에서만 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에서 동성애를 금지했다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가능한 일”은 종교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일 모두에 사용되는 표현이다. 여기서 가증한 일이 순수하게 성적인 것이 아닌 종교적인 내용이라고 말할 증거는 없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차원 모두로 본다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어긋난 성교행위에 관한 문제는 우상숭배라는 변질한 모습과 연결돼 있다.

‘다윗과 요나단’(삼하 1:26)의 관계를 동성애로 보기도 하지만 이것은 어떤 색의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다. 전통적인 우정의 관계냐, 아니면 동성애의 관계냐는 그러한 당시 역사적 문맥에서 봐야 한다. 보수적인 가부장 사회에 살던 유대인들은 이 내용을 동성애로 본 적이 없다.

사실 구약은 매우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고대 문화이며 현대사회보다 남녀 간의 연애나 성적 취향 등에 관한 관심이 적다. 따라서 동성애 성향이나 동성애 문제를 자세하게 다루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동성애 문제는 구약에서 주로 우상숭배 차원의 이방 문화인 남창의 유입과 관련돼 있다. 물론 그렇다고 동성애가 결코 허락됐던 적은 없다.

# 신약에서의 동성애

신약의 성윤리 기준은 구약보다 더 강화됐다. 이는 마태복음(6:27~29)에 나타난 예수님의 계명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에서 성도들 간의 음행은 있을 수 없는 일로 간주하며, 아버지의 계모와 성관계를 한 자를 출교시키라고 명령하고 있다(고전 5:1).

복음서의 경우 동성애에 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다룰 수 없다. 퀴어신학자 제닝스는 요한복음에서 예수와 사랑하는 제자가 동성애 관계였을 것으로 주장한다.

예수에게 안겨있는 모습에서 가슴에 누워있는 육체적 친밀함에서 평범한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니라 육체적 관계를 나누는 동성관계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요 13:21~26). 물론 품에 안긴다는 말이 꼭 성적인 내용은 아니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을 때, 이것은 성관계가 아니다(눅 16:23).

따라서 요한복음에서도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의 품에 안긴 것이 동성애일 필요는 당연이 없다. 퀴어신학자인 제닝스는 그래서 늘 동성애를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성경 읽기는 찬성인지, 반대인지 기발하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먼저 성경은 결혼 이외의 문맥에서 음란한 동기와 성관계에 관해서는 부정적이다. 물론 퀴어신학자들의 주장에서도 배울 점은 있다. 복음서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호모포비아가 문제라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매춘은 율법적으로 범죄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 즉, 예수님은 우선 매춘을 멈춰야 만나주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동성애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복음서에 없다는 것이다.

바울서신에서 동성 간의 성 행위는 할례나 정결법과 달리 일관성 있게 금지된 죄악이다. 고린도전서 6:9는 “불의한 자들”이라 말한다. 디모데전서 1:10은 하나님께 용납하지 않은 죄악으로 명시한다.

로마서 1:24~27은 동성애에 관한 정보가 가장 많이 나온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동성애에 관한 그의 입장을 서술하기 위해 쓰여진 글은 아니다. 따라서 로마서 본문에서 동성애에 관한 교리적인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는 한계가 있다.

바울은 여기에서 제어되지 못하는 성적 욕망과 동성 간의 성관계가 하나님에게 등을 돌린 개인의 잘못으로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임한 보편적 타락의 작용으로 설명한다.

바울은 본문에서 남성의 동성 성관계뿐만 아니라 여성 동성 성관계도 언급한다. 하나님은 타락한 마음을 내버려 두셔서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도록 했다. 동성 관계도 그 중의 하나이며, 분명한 죄다. 그러나 바울은 동성 성관계가 심판의 원인으로 설명하지 않고, 죄에 대한 보응으로 본다. 동성애는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난 모습이다(27절).

바울은 동성 성행위를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발견되는 일상 죄와 같은 반열에 둔다. 동성애는 전반적인 인간의 타락에 관련된 문제지 특별한 범죄행위는 아니다. 로마서 2:29~31절이 바울이 이해하고 있는 동성애다.

# 그렇다면 우리는 동성애를 어떻게 봐야 할까?

창세기 19장의 소돔 사건, 나그네 동성 성폭행 시도 이야기를 현대적인 동성애에 관한 교훈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본문은 자신들의 욕정을 채우고자 친절을 베풀고, 도움을 주어야 할 나그네를 강간함으로 그에게 모멸과 굴욕감을 주고자 한 극악무도하고 비열한 행위를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강간이 아니었다면 죄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성윤리에 매우 엄격한 고대 유대문화에서 혼인 이외의 모든 성관계는 죄다. 창 19장은 창 1~2장의 서로의 성적인 결합을 위해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성윤리를 바탕으로 읽어야 한다.

레위기에서 왜곡되고 일그러진 종교적 성창에 관한 금지는 결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우상숭배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남창 현상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남자와 여자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의 성적 관계를 인정하시는 창조질서가 일그러진 방식이다.

성경은 동성애 성향, 성적 취향, 고의성이 있는 동성애, 선천적으로 타고난 동성애, 음란한 동성애, 사랑을 기초로 한 동성애, 부부의 인연을 맺는 동성애 등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동성관계에 관한 포괄적인 바울의 표현들은 성폭행적 동성애와 쾌락만을 위한 성행위를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순수한 사랑을 기초로 한 동성애는 찬성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성경의 동성애는 동성 간의 성행위에 관한 언급이지만 산상수훈의 전반적인 원칙에 따라 행위에는 동기가 있다. 따라서 동성 간의 성행위 동기가 되는 동성애 성향, 동성애 성적 취향 역시 괜찮은 것이 아닌 다스려야 할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동성애 결혼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동성 간의 결혼은 성경이 허락하지 않는다. 기독교인 동성애자에게 가능한 선택은 독신의 삶이다. 그렇다고 독신이 오직 동성애자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현대 사회에 익숙한 성 정체성이나 성 지향성에 대한 이해나 의학적 지식을 갖고 동성애를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은 동성애를 육체적 혹은 정신적 질병의 차원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또한 로마서는 동성애자가 창조 질서 왜곡의 결과로 나타난 피해자인지, 부끄러운 욕망의 노예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로마서에서 다루는 동성애자는 부끄러운 욕망의 노예로, 그런 동성애는 창조질서에 반하는 비자연적인 사랑이다. 로마서는 동성애자를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개인의 선택 결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타락한 인류의 보편적 현상 중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 동성애는 타락한 세상에 나타난 결과이지,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인지, 도시나 국가를 멸망시킬 심판의 원인으로 지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성애 성행위는 죄다. 그런데 회개할 수 없는 죄는 아니다. 또한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역시 동성 성행위 못지않은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동성애자들을 죄인이라고 할 때, 교회가 죄인을 예수님의 방식으로 환영하며 품지 못한 것도 회개해야 한다.

성경은 성과 관련해 수많은 죄를 가르친다. 그런데 우리 중 다수는 그 중 동성애에만 유독 눈에 쌍심지를 켜고 비난을 한다. 포르노, 매매춘 등 우리는 성인 남녀의 교제에서 순결을 고집하는 것이 몹시 비현실적이라고 보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현대인의 성의식은 매우 개방적이다. 혼인을 한 사람 중에도 불륜행위를 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기독교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성에 관해서는 말과 삶의 간격이 커 지나치게 위선적이라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동성애를 죄라고 할 때, 우리는 이성애자들의 성적 문란함을 대하는 태도와 다른 이중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된다.

성경해석은 늘 시대의 풍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고 명령한다. 동성애가 만연했던 이방 문화의 온갖 성 문제가 교회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초대교회는 엄격한 성윤리를 추구했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본받고 따라야 할 성경의 명령이다.

한편, 이날 동성애 특별포럼에서는 이민규 교수의 발표 이외에도 △동성애 현상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반응과 태도(정원희 연구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기독교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동성애 현상(송인규 박사, 전 합신대 교수) △성소수자와 함께 하는 목회적 관점:우리는 동일한 악마와 싸우는 존재들이다(민감종훈 신부, 성공회 길찾는교회) △의료과학 측면에서 동성애 문제점(길원평 교수, 부산대)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적, 법적 접근(김지혜 교수, 강릉원주대) 등이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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