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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과 15장에서 배우는 교회정치의 5가지 자세 본문

목회와 신학

사도행전 6장과 15장에서 배우는 교회정치의 5가지 자세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8:27

이상원 교수, 교갱협 목회윤리세미나 발표 / 2015년 11월 24일 기사

 

(사) 교회갱신협의회(이하 교갱협)가 지난 11월 20일(금) 오후 1시 서현교회(담임:김경원 목사)에서 ‘목회자의 성격장애와 목회윤리’를 주제로 ‘교회갱신과 목회윤리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총신대 이관직 교수는 목회자가 갖고 있는 인격이 인간관계 속에서 목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진단하며 처방했다. 또한 총신대 이상원 교수는 교회정치에 임하는 목회자들의 윤리적 자세를 강조했다. 두 발제자의 주된 주장을 주최 측의 발표문 제공으로 두 차례에 나눠 정리해 싣는다. 아래는 이상원 교수가 발표한 내용이다.<편집자 주>

 

 

열 명 단위의 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십 부장이, 오십 명 단위의 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오십 부장이, 백 명 단위의 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백부장이, 천 명 단위의 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천부장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조정 업무는 70인 공의회가 처리했습니다. 이들에게는 권력투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다만 하나님의 율법을 규범적 표준으로 하여 갈등을 조정하여 이스라엘을 화합을 이루는 공동체로 만드는 일에 헌신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의 정치 관념이 권력투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정치가 갈등조정이라는 실무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만 규정되었다는 말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치인식이 당대의 다른 이방왕국에서는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선진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신약 시대에 등장한 공동체는 교회인데, 교회는 국가라는 의미의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특성은 없어지고 종교적인 예배공동체의 특성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정치적 공동체의 성격을 벗어 버린 이유는 정치적 장벽을 포함한 모든 인위적인 장벽을 넘어서는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정치적 특성을 벗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정치집단은 아니지만 교회가 공동생활을 하는 집단인 한 정치적 특성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 갈등은 해소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른 바 교회정치가 필요하게 됩니다. 갈등조정을 의미하는 샤파트는 신약시대의 교회정치에서도 정치의 핵심적인 특성으로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샤파트를 의미하는 교회정치가 신약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었다는 사실은 두 가지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하나는 지역교회정치의 사례이고 다른 하나는 박형룡이 말한 바 광대회의 곧, 노회, 대회, 총회 차원의 정치의 사례입니다.

전자는 사도행전6장에 있는 일곱 집사를 세운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예루살렘 총회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에서 사도들은 매우 탁월한 정치적 민감성과 통찰력을 가지고 자칫하면 교회를 둘로 쪼개버릴 수 있는 갈등을 조정하여 화합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도들은 탁월하게 교회정치를 수행하면서도 오직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고자 하는 열정과 교회 성도들을 섬기는 마음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권력투쟁이나 권력에 뒤따르는 경제적 이권 등에 대한 관심은 아예 없었다는 점입니다.

먼저 사도행전 6장이 보도하고 있는 구제사건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두 부류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한 부류는 히브리파 출신 유대인들이었고, 다른 한 부류는 헬라파 출신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팔레스타인 출신의 가난한 자들이 많았던 데다가 당시 극심한 기근 때문에 생계 자체가 어려운 자들이 많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일부 부유한 성도들이 재산을 출연하여 공동기금을 조성하고, 이 기금을 이용하여 성도들의 식사를 마련하여 대접했습니다.

식사를 주도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전원 히브리파 출신이었는데, 헬라파 출신의 과부들이 식사에서 빠지는 일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사도단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작은 여우가 포도원을 허무는 것처럼 이 문제를 방치했다가 예루살렘 교회가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로 분열되면 예루살렘 교회는 심대한 타격을 입을 뿐만 아니라 복음전파 자체가 어려워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위험을 감지한 사도단은 이 문제를 은밀하게 처리하지 않고 교회 성도들을 모아 놓고 공개적으로 다루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문제를 인지한 상황에서 사도단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사도단은 사도단이 전원 히브리파 유대인들로만 구성된 것에서 문제가 비롯되었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사도의 직분을 헬라파와 균등하게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의 직분의 특성상 이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고, 공생애3년을 예수님과 함께 했어야 하고, 부활의 증인이라야 하는데, 헬라파 출신 유대인들 중에는 이 조건에 맞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도단은 이 점에 대하여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카드를 내어 놓았습니다. 그 카드는 교회재정을 관리하는 권한을 전폭적으로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우선 문제가 재정사용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재정에 관련하여 조치를 취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사도단은 사실상의 교회운영의 실권이라고 할 수 있는 재정권을 흔쾌하게 넘긴 것입니다. 사도단은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에게는 재정 관리권을 넘겼습니다.

재정 관리를 맡기기 위하여 선출된 일곱 집사들은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 조치는 첫째로, 사심이 없이 오직 교회의 갈등을 해결하여 교회의 하나됨을 손상시키지 않아야겠다는 사도들의 헌신을 보여 주었고, 둘째, 갈등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파악한 후에 공정하면서도 현실에 딱 맞는 설득력을 지닌 정책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정치적 감각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도단의 제안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전체를 납득시켜 깔끔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냈습니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총회사건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바울이 일차 선교여행을 떠난 사이에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한 교회였던 시리아의 안디옥교회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유대교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던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 가운데 개종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서 모세의 율법이 평가 절하되는 것에 대하여 우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예루살렘의 사도단과의 상의도 없이 시리아 안디옥교회에 와서 사도단이 파송한 것처럼 행세하면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폈고, 이 때문에 일부 성도들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시리아 안디옥교회에서 바울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바울 혼자 힘으로 잠재울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문제가 지닌 교회 정치적이고 선교전략적인 의미를 간파했습니다. 만일 이 문제를 바울 혼자 해결하고 안디옥교회 선에서 마무리해 버리면 바울이 주도하는 이방교회들과 사도 단이 주도하는 유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서로 다른 구원관을 가르치면서 서로 대립한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게 되고, 이런 오해는 결국은 이방교회와 유대교회의 거대한 분열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선교초기에 이 같은 분열이 일어나면 선교고 뭐고 물 건너 가 버립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 사안을 예루살렘 교회와 협의하여 공개적으로 처리해야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바울은 바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 사안을 예루살렘 사도단과 교회 앞에 공개적으로 의제로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소집된 회의에서는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예루살렘의 사도단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첫째로, 베드로가 나서서 할례를 받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바울의 입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천명했습니다. 둘째로, 야고보가 나서서 할례를 제외한 다른 율법조항들–우상제물이나 목매어 죽은 고기나 피가 빠지지 않는 고기를 먹는 일과 음행(주로 근친상간)-에 대해서는 유연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야고보는 이방인 출신 신자들에게 유대인 신자들을 배려하여 이런 행위들을 절제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이 요구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그다지 무리한 요구는 아닙니다. 유대인 출신 신자들은 자신들이 수십 년 이상 신봉해 온 유대교의 강력한 구원론체계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것을 포기하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출신 신자들은 별로 포기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방인 출신 신자들이 이런 율법조항들을,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상의 건덕의 차원에서 절제하는 정도의 양보를 해도 무리한 요구는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것이 야고보의 논지입니다. 사실상 이방인 출신 신자들이 절제해야 하는 조항들은 절제해도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들입니다.

먹는 일에 있어서 이 정도의 양보를 하고 유대인 신자들이라는 동료들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유대인 출신 신자들은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걸지 않고, 이방인 출신 신자들은 유대인 출신 신자들이 꺼림칙해 하는 행위들을 생활 속에서 절제함으로써 양측이 한걸음씩 양보를 한다면 구원의 진리도 훼손시키지 않고 생활도 조금 더 성결하게 증진시킬 수 있고 동시에 교회의 하나 됨도 깨지 않을 수 있는 탁월한 조치였습니다. 이 조치는 사도 단이 얼마나 세심하고 정확한 교회 정치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이 조치는 까다로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전폭적인 동의를 얻어냈을 뿐만 아니라 안디옥교회를 비롯한 이방교회들을 일거에 안정시키면서 향후에 교회가 한 마음으로 이방인 선교에 매진할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사도행전6장의 구제사건과 사도행전15장의 예루살렘 총회사건은 진정한 교회정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탁월한 롤 모델입니다.

이제 구약의 샤파트 개념과 사도행전의 모델들을 참고하면서 참된 교회정치가 어떤 것인가를 몇 가지 항목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공동체가 형성되면 정치는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모든 공동체는 정치적 공동체이며, 공동체의 정치적 특성은 좁은 의미의 정치인 권력투쟁과 넓은 의미의 정치인 갈등조정을 통한 사회의 화합과 안정이라는 두 개념의 역동적인 관계 안에서 규정됩니다.

독재정권이나 절대군주정치 그리고 조직폭력배의 공동체에는 권력투쟁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며 갈등조정은 극히 미약한 정도로밖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정치나 통상적인 사회공동체에서는 권력투쟁과 갈등조정이 대체로 균형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통례입니다. 그러면 교회정치는 어떤가? 교회정치에서는 권력투쟁은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위축되고 갈등조정을 통하여 공동체의 하나 됨을 실현하는 넓은 의미의 정치가 사실상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교회정치는 세상정치와는 차별화됩니다.

모세의 신정적인 공동체에서는 권력투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권력투쟁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이방왕권을 부러워하여 왕을 세워달라고 떼를 썼을 때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정치권력을 얻게 되면 우편과 좌편의 보직을 달라는 요청을 한 야고보와 요한의 자리청탁을 받으시고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2-44)고 답변하심으로써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를 거부하셨습니다. 사도단이 행한 교회정치의 사례에서는 권력투쟁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늘날 교단정치의 핵심직책을 둘러싸고 전개되어 온 권력투쟁은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관행이며, 일반정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후진적인 정치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단정치에서는 권력투쟁이 있어서는 안 되며, 권력투쟁 제로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최근의 사태에 대하여 우리 총회의 총대들 상당수는 무거운 영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직책을 맡고자 하는 자가 신앙과 인격에 있어서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자명한 사실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권과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직책을 맡도록 허용해준 결정은 심각한 죄를 범하는 것이며, 예루살렘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전락시켰던 것처럼 거룩한 교회회의를 난잡한 정치판으로 오염시키는 것이며, 성실하고 헌신적인 마음가짐으로 총회와 교단을 섬겨온 많은 관계자들을 모독하는 것이며, 열악한 농어촌 교회에서 묵묵히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있는 수많은 교단의 목회자들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교회정치가 권력투쟁에 몰두하면 무신론자가 되든지 아니면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이 없이 생활하는 실천적인 무신론자들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머릿속에 새겨 두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진행되는 제사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 업무를 전적으로 관장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사두개인들이었는데, 사두개인들은 좁은 의미의 정치와 국제정세에 밝은 부류였지만 신앙적으로는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 무신론자들이 종교의 가장 핵심적인 제사를 관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모순되고 아이러니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권력의 맛에 중독되고, 권력에 뒤따라오는 경제적인 이권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 성령의 외면을 받고 실천적인 무신론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둘째로, 교단정치가 좁은 의미에 정치에 집중하면 교단 안에 반드시 파벌이 형성되고 교단이 사실상의 분열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한국장로교회사를 보면 기장과의 분열, 통합과의 분열 등의 경우를 제외한 보수진영의 교단분열은 모두 교단 안의 교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의 산물이었습니다. 교단이 분열한 후에 교세가 너무 약화되고 사회적인 눈총이 워낙 따가워진 나머지 이전에는 교단분열로 치달을 사안이 지금은 교단분열로 치닫지는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 교단 안에서 계속되는 권력투쟁은 교단 안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분위기를 황폐화시켜 버리고 교단 전체 안에 영적인 무기력증을 확산시킵니다. 지역별로, 아니면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밀실협의를 하듯이 교단정치를 하는 모습은 성경이 말하는 바람직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모습은 아닙니다.

셋째로, 권력투쟁으로서의 교회정치는 무신론적이고 마귀적인 행태이지만 갈등조정으로서의 교회정치는 교회나 교단의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성령이 하시는 중요한 일임을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갈등조정을 의미하는 교회정치의 핵심은 회의 운영인데, 회의 운영을 지혜롭게 잘 해내는 것은 교회와 교단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은 성도들이나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시간입니다. 반면에 회의는 구성원들이 가진 각기 다른 의견들을 개진하는 시간이므로 구성원들의 마음이 갈라질 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예배와 설교와 기도를 통하여 성도들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로 모았다 해도, 회의 시간에 다양하게 제시되는 의견들을 듣고 다양한 의견들 안에 있는 공통분모를 바르게 간파해내어 이 공통분모를 틀로 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해내는 능력–이것이 바로 넓은 의미의 정치의 핵심기술인데–을 탁월하게 발휘하지 못하면 교회 공동체는 깨지고 맙니다. 교단의 경우는 지 교회 보다 회의의 비중이 월등히 더 많기 때문에 회의를 지혜롭게 끌고 가지 못하면 교단의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능력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는 물론 인간에 대한 이해도 깊어야 하고 사회적 상식도 넓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훌륭한 인품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교단 안에서 목회도 훌륭하게 잘 수행하고 말씀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고 기도도 깊이 하며 인품도 잘 갖추어진 목회자들이 어느 정도의 시간적이고 심리적인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소명감을 가지고 교단의 운영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자리에 적극적으로 진입하여 교단의 중요한 직책들을 맡아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단의 일은 지교회의 일들보다 훨씬 더 힘들지만 지 교회들이나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에 교단 안에서도 가장 탁월한 영성과 인품과 지 교회를 잘 섬기는 목회자들이 담당해야 합니다. 이런 목회자들이 교단의 중심부에 의도적으로라도 들어가서 경제적인 이익이나 기타 이권을 초월한 사심 없는 모습으로 희생적으로 교단을 섬기는 전통을 지금부터라도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전통을 암묵적인 합의로 만들어 감으로써 지 교회 목회에 실패한 자들이 권력과 경제적 이권을 찾아서 부나비처럼 찾아 왔다가 교단을 섬기는 일에는 자기희생과 섬김만이 있다는 것을 보고 스스로 발길을 돌리고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교단의 일이 너무 힘들고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교단 일을 맡으려고 하지 않고, 그래서 명망이 있는 분들을 반강제적으로 떠밀어서 일을 맡기는 전통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넷째로, 교회와 교단의 교회정치 사안들은 모두 공개된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이 사안들을 수행하는 것을 뒷받침하는 재정구조도 모두 공개된 상태에서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총회산하 중요기관들의 인사문제를 비롯하여 중요한 교단관련 사안들을 대외비이기나 한 것처럼 교단의 소수의 인사들이 밀실에 모여서 비밀리에 논의를 하고 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바로 이 비밀 합의에서 모든 비리와 문제들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 언제 공개되어도 떳떳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처리해야 바른 처리가 됩니다. 공개할 수 없는 처리방식은 대부분 문제가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교회나 교단의 재정구조도 언제 공개되어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떳떳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루어야 문제가 없습니다.

다섯째로, 교단 안에서 비윤리적인 관행들이 일어날 때마다 이 관행들을 지속적으로 질책하는 비판의 소리가 중단되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묵묵히 헌신하는 다수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회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소리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조치들이 시의 적절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어느 날 폭발할지 알 수 없는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제정 러시아에서 공산주의혁명이 폭발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를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정 러시아 말기에 이르면 전 국민의 1%도 안 되는 왕족을 중심으로 한 귀족층이 전국의 국부의 99%를 장악하여 누리고 있었습니다. 99%의 국민들은 사실상 거지나 다름없었으나, 오늘날 성피터스버그(구 레닌그라드)에 있는 겨울궁전과 여름궁전이 보여주는 것처럼 귀족들은 어마어마한 사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러시아 정교는 귀족들의 부패한 관행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비판을 하지 못했으며, 곤궁에 처한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볼셰비키 혁명이 시작되자 99%의 국민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하여 혁명군편에 섬으로써 단기간에 제정이 붕괴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동안 교회와 교단이 보여 준 파렴치한 비윤리적인 행위들–재정비리, 교권비리, 성추행, 표절시비–로 인하여 교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우리 사회의 국민들 마음속에 차곡차곡 누적되어 왔고, 아마도 최근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태는 돌이킬 수 있는 반환점을 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할 정도입니다. 아직은 사회 전체가 큰 동요는 없으나 앞으로 어느 시점에 어떤 탁월한 논리로 무장한 좌파사상의 틀이 등장하여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으면 이 불신과 분노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때 교회는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타를 맞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웨슬레가 영국에서 했던 역할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웨슬레가 활동하던 당시의 영국도 제정 러시아 시대와 같았습니다. 1% 정도밖에는 안 되는 왕실을 중심으로 한 귀족계층이 국부의 95% 이상을 독점했고, 99%의 국민들은 5%밖에 안 되는 국부를 가지고 극빈생활을 했습니다. 이때 웨슬레가 등장하여 복음으로 절망 속에 사로잡힌 서민들을 위로하면서 이들을 돕기 위한 사회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것이 서민들의 분노한 마음을 진정시켰고, 그 결과 마르크스로 하여금 처절한 가난을 겪으면서 자본론을 쓰게 한 본거지였지만 공산주의 혁명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교회와 교단 안에서 일어나는 비윤리적 행동들과 불의한 일들에 대한 관심과 비판을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우리가 가진 복음으로써 교단 안의 약자들을 위로하고 아우르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교회와 교단에 대하여 누적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불신과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필사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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